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어납니다.
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챙겨야 할 일이 많아집니다.
회사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미덕이고
가족을 챙기는 것은 의무이며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유익이고
내가 하는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그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깊이는 깊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싱크홀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깊고 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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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셨던 햇살은 아득해지고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대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이 모든 일들이 어떤 유익이 있는지도 모르겠는 시간 말입니다.
왠지 모를 조급함에 쫓기고
알 수 없는 책임감에 짓눌렸습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아지고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자유로웠던 것도 같은데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는 그런 것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이따금, 참고 참다 여행 한 번에 다 풀어버리고
좋은 식당을 예약해 좋은 식사를 하며 풀어버리면 좋을 텐데,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집이 더욱 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좋은 식당에서의 경험은 스토리 유효시간과 길이가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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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돌이켜보면 언젠가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그것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지금 내 상황이 된 이유가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안개로 흐린 날의 횡단보도 건너편 어떤 아이처럼,
형태는 있으나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함이 이따금 찾아오곤 합니다.
그렇게 길을 잃고, 방향을 잃고, 다시 익숙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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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돌려 차근차근 뒤로 돌아가다 보면
그곳에 가족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때에도 늘 짐처럼 느껴졌던 무엇이 있었습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반드시
머리로 상상을 하곤 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머리로 그렸고
그 모습은 생생하고 선명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들어서면 저는 늘
가족의 빚을 갚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갔습니다.
다양한 모습의 제가 있었고
크고 작은 바램이 있었습니다.
상상하는 저의 모습이 자주 달라지기도 했고
어떤 모습은 한 달 내내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모습들은 반드시
우리 가족의 빚을 갚는 것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때 제 마음의 짐은 사실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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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의 예상이나 생각과 다르게
저의 10대 시절은 한없이 끔찍했습니다.
만약 누군가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 하더라도
저는 아마 그 시절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0대 시절이 끔찍한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 중심에는 빚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정답이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겐 그 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그래서 10대의 저는
미래의 모습을 마음껏 상상하고
다양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상상하면서도
가족의 빚을 갚는 그 장면을 반드시 집어넣곤 했습니다.
그리고 빚을 갚는 나이는 대략 30대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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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저는 한국 나이로 31살이 되었습니다.
5월, 생일이 지나면 이제는 만으로도 30살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빚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말한 적 없는 것이지만
이것은 제 마음에 사실 큰 짐이 됩니다.
이것보다 좌절감이나 실패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실 없습니다.
그래도 이때쯤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마지노선 앞에 선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이 점점 다가오는 이 시기는 제게
깊은 우울감과 슬픔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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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운이 좋게도 대학 시절을 용돈 없이 보냈습니다.
운이 좋게도 장학금을 받았고,
알바를 할 수 있었고,
그 돈으로 기숙사비며 생활비를 해결했었습니다.
이것은 부모님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자립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사실 말입니다.
스스로 번 돈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들어가고.
전셋집을 얻어 살아가는 이런 모습은
꽤나 자랑스러운 모습인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랑스러운 모습으로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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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가족의 빚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아주 오랜 시간 마음에 퇴적되어 화석처럼 되었고
어느새 저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빚을 해결하고
거의 평생을 돈으로 걱정하셔야만 했던 부모님께
이제는 그럴 필요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제 모든 꿈의 시작점이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늘 저의 차를 사는 것보다 먼저
부모님의 차를 사드리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진녹색 중고 엑센트 같은 건 빨리 치워버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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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게도
저는 후회보다는 개선을,
미련보다는 해결을 좋아합니다.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그 시절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제 자랑이며 그 시절 역시 좋은 거름이 됩니다.
이것은 정신 승리나 왜곡은 아닙니다.
부모님 밑에서 자란 것을 후회한 적 없고
부모님이 주신 정신적 유산을 저는 간직하고 있으며
삶에 대한 태도와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식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겪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아프고, 끔찍하고, 슬픈 것이지만
이것들이 저를 다르게 만들어 주었고
그 다름은 어쩌면 유일함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만이 가지고 있는 감각 같은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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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제 마음에 깊게 베인 상처나 아픔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던 꿈 역시 동일합니다.
저는 여전히 가족의 빚을 해결하고 싶어하고
부모님의 차를 바꿔드리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이 욕망이 선한지 악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욕망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추한 것인지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고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도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최소한 이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모나고 거친 마음이지만,
번잡하고 어둡지만
저에게는 이것이 최소한의 사랑,
제가 가진 사랑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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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제게 전부는 아니지만
저를 이루는 근간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이 저라는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제가 가진 욕망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은 모나고 거칠어서,
좀처럼 다정할 줄을 모릅니다.
목표를 이루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매몰되어
그 외의 것들은 잊어버리고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는 인간이기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동시에 다정함을 갖추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다정함이란 사랑의 마음이
정렬되고 정돈되었을 때 나오는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어쩌면 저는 평생 다정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목적과 목표를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목적과 목표는 점점 커지고 구체화됩니다.
10대 시절의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일들이
점점 선명해지고 명료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은 제게 아직 없습니다.
여전히 그 사실은 저를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목표와 목적에 타협은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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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정함으로. 끝을 맺기 위해 나아가려 합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에 때가 있고, 모든 것이 이르러 올 시기가 있지요.
저는 남들보다 빠르게 어른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누려야 했을 다정함을 가질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나이가 들어 다정함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정함의 시기를 보냈기에
다정함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독립심과 자립심과 같은
소위 어른스러움이라 말하는 것을 배우는 시기 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무엇이 더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저 사람이 처한 환경과 상황이 다를 뿐이겠지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사랑, 우리를 숨 쉬게 하는 사랑입니다.
각자가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모양이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말로 표현해 보려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려 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시도와 노력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우리의 사랑을 부풀게 만듭니다.
사랑으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정함으로. 끝맺는 아름다운 삶을 보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픔이 있겠지요,
슬픔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정함으로. 나아갑시다.
매일매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불완전하고 모난 하루라 할지라도
다시 아름다움으로, 다시 사랑으로, 다시 다정함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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