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는 정말 바빴습니다.
운영 중인 카페 커뮤트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와
사업의 방향성, 그리고 사명을 재점검하고
변화를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어느 날 밤은 빠르게 지나갔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새벽 3시에 가까웠습니다.
즐겁기도 했고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고 싶은 마음과 정체된 발걸음을 동시에 느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순풍을 맞은 듯 매끄럽게,
미끄러지듯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세상에 의미 있는 일과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신념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갈아 넣겠다는 결심으로 보낸
지난 몇 주는 제게 값지고 자부심에 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저는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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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짠 구조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고
이 결함은 근원적이면서도 전반적인 것이었습니다.
저의 아이디어와 구조는 분명 그럴듯했습니다.
그 아이디어와 구조를 들은 사람들은 공감했고
긍정하기도 했고,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모든 것이
제가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하기에는
모자란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타협’
끔찍하지만 동시에 달콤한 이 단어는
여전히 저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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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의 시간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구조와 아이디어는 한순간에 폐기되었습니다.
언젠가, 어느 때에 사용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의미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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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렸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늘 아프고, 절망스럽고, 씁쓸합니다.
상실감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처음 마주하게 되면
눈을 감고 싶어집니다.
변명을 대고 싶어지고, 그 틀림에도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 한 가지는
나의 주장과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틀린 건 틀린 것일 뿐입니다.
잘못을 바로잡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잘못을 옹호하고 변호한다고
잘못이 괜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법정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할지 몰라도
사업의 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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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감은 무력감이 됩니다.
무력감은 허망함이 됩니다.
허망함은 용기를 잃고
주저앉게 만듭니다.
하지만 지금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지금 나의 문제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문제는 더 큰 문제가 되어 드러나게 됩니다.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외면한 시간 동안 문제는
세력을 키우고 거대해져서
나의 삶을 덮쳐버리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상실감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훌륭한 방식입니다.
만약 제가 스스로 짠 구조를 의심하지 않고
문제를 발견했더라도 무시하고 나아갔다면
지금 당장의 마음이 조금 편했을지 모릅니다.
상실감은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구조의 문제는 사업의 실패로 귀결됩니다.
구조의 문제를 무시한 채 하는 모든 노력은
실패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패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미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모든 단서를 무시했고,
그 앞에서 눈 감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편하자고 실패를 위해 노력하는
멍청한 일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는 멈추기로 했습니다.
멈추고, 문제를 다시 파고들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입니다.
내 마음 좀 편하자고
‘이 정도면 괜찮다’거나
‘일단 해보자’는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그 모든 실패를 위한 노력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제가 바라는 성과와 성취를 위한
바른 노력에만 힘을 쏟기로 한 것입니다.
이러한 말들은 인기가 없습니다.
이러한 길은 감정적으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길은 재미가 없습니다.
나아가기 보다 점검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속된 실패의 아픔을 겪었던 저는
지루함과 지난함이
빌어먹을 실패의 고통보다 낫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제는 성취를 위한 긴 시간을 들이기로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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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감은 늘 아프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상실감 안에 기쁨의 씨앗이 있습니다.
상실감이 없는 일이라면 그것은 아마
내가 성취해도 큰 의미가 없는 일이거나
실패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일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원하는 목표와 성취를 위해선
반복적으로 상실하고, 절망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기쁨의 씨앗을 맛보게 되지요.
완벽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저는 이제는 조금 압니다.
상실감은 사실 기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상실감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수준과 목표를 낮추지 않았으며
내가 나아가는 길에 대한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실감은
‘타협 없음’의 근거로서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시시해지지 않고,
나에게 진실하며
그에 따라 타협하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실감이 찾아옵니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상실감은
해결을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마음을 아프게 할지언정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혹, 지금 상실감을 느끼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부디 스스로를 축하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타협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시시해지지 않기로 결심한
자신을 칭찬해 주어도 괜찮습니다.
길에 선 이상,
타협은 없습니다.
끝까지 진실한 자신만의 길을
이어나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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