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한 작은 유튜브 채널이 있다. 5월 29일 오후 10:31 기준으로 ENTP입만동동 유튜브채널의 구독자수는 354명, 조회수는 14,154회이다. 이 조그만 채널은 매주 라이브를 한다. 신기하게도 꼭 한 명 이상이 라이브에 참석하고 채팅 참여까지 한다. 기적이다. 이 조그만 구멍가게에 손님이 매일 오다니.
1. '시작은 잘하는데 끝을 못내는' 전형적인 용두사미 인간으로써 뉴스레터를 시작하면 후회할 것을 알지만 시작한다. 인간은 죽을 것을 알면서 살고*, 연인들은 헤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시작하니까. 그리고 요즘 내가 대뇌는 것, '문어는 15,000개의 알을 낳지만 그 중에 성체가 되는 것을 2~3알 뿐이다' 자연은 선택적이다. 시작한 것을 모두 지킬 필요는 없어. 인간만이 시작한 것을 끝까지 하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
1)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인간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산다'는 대사가 나온다
2)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레질>에 자연의 배아는 선택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p. 275-277).
2. 이 뉴스레터는 전적으로 '최성운의 사고실험' 뉴스레터의 오마주이다. 영상으로는 다 담기지 않은 배운 점을 어딘가에 보이는 형태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허접한 인간인지를 알리고 싶었다. '자기계발'류의 콘텐츠를 하면 스스로 그럴 자격이 있나 끊임없이 자기를 의심하게 된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3. 어제 여덟 번째 라이브를 했다.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구독자 수 숫자 50명이 되자 마자 라이브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 저녁 8시에 유튜브 라이브를 한 지 2달이 거의 다 되었다. 매주 라이브의 OBS를 켤 때 마다, '오늘은 아무도 안 올 수도 있다'는 굳은 마음의 다짐을 하고 켠다. 시작하고 몇 분 지나서 첫 손님이 오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늘 한 분 이상은 오셨다(단골손님들 감사합니다💐). 더 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4. 어제 '라이브 찍은 것을 통으로 올려주세요'라는 요청을 받아서 라이브를 무편집으로 그대로 올렸다. 💝 구독자분들은 모르실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꽤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일이었다. 내 스피치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는 일이니까. 편집으로 늘 잘라냈던 입으로 숨 들이쉬기, '그니까'라는 말투, 쩝소리까지 그대로 노출되었다. 창피하다. 그나마 라이브 영상 조회수가 낮아 다행이다.
5. 이 작은 채널은 왜 50명부터 라이브를 시작했을까? 보통 유튜브 채널에서는 구독자수 1,000명 기념, 10,000명 기념으로 라이브를 하는데 말이다. 애플처럼 하고 싶었다. 애플은 새 제품이 나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작은 도시부터 한다. 도시가 점점 커지며 개선 사항은 반영되어 할수록 더 괜찮은 프레젠테이션이 된다. 그리고 나서 대도시에서 할 때는 완벽에 가까운 프레젠테이션이 된다.
6. 할 줄 아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은 차이가 있다. 나는 말을 아나운서처럼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말하기의 중요성을 예전부터 알아서 다른 사람의 말의 내용과 방식, 목소리의 공명같은 것을 유심히 보고 포착해왔다. 영상을 찍고 스스로 편집하면 내가 말을 얼마나 그지같이(차마 '거지'라는 표준어를 못쓰겠다) 하는지 다 보인다. 스스로를 트레이닝하고 싶었다.
7. 영어를 익히는데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1) 400개 정도의 기본적인 단어를 외우며 시작하기 2) 일단 단어를 외우지 않고 무작정 듣고 따라하면서 시작하기. 세상에서는 괜찮지 않은 나라도 사랑하라고 한다. 자기 자비가 중요하다면서 무조건 자신을 용서해주라고 한다. 나는 그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뭔가가 되고 싶었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지적 허영심이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고 첫 책을 냈다. 운이 좋았다. 그런데 과정을 공유하지 못했다. 쓰면서도 늘 이게 나올지 늘 자기의심에 시달렸다. 글이 안 써져서 울면서 달린 날이 많았다(달리기를 해서 두뇌 혈류량이 많아지면 머리가 잘 돌아간다).
8. 내가 구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의 근본은 이거다. 별거 없는 사람이 별걸 만드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이 지난한 과정, 이 작은 채널에서 매주 라이브를 하고 편집해서 올리는 것. 일단은 별거 없는 나 자신에게 시간과 노력을 베팅해야 한다.
9. 책이 나오기 6개월 전에 나는 회사원이었다.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도 회사업무를 하면서 틈틈히 책을 썼다. 이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회사를 관뒀다. 잘한 결정이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다. 나 자신에게 책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용돈)을 주고 싶었다.
10. 무명이라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예전에 KT&G상상마당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Q&A시간에 수강생 한 분이' 강사님이 유명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요지는 '만만해서 나도 따라할 수 있어 보인다'는 말이었다. 난 그 말이 참 듣기 좋았다.
11. 그래서 그 만만한 과정을 다 기록하고 싶다. 이 뉴스레터는 퇴고를 많이 거치지 않고 날것으로 올릴 예정이다. 구독자분의 이해를 바랍니다.🙏
12. 책상에 앉아 혹은 스마트폰으로 이 뉴스레터를 보실 분들의 현재의 기쁨과 미래의 뿌듯함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기원합니다. 댓글로 요청사항 있으면 적어주세요. 감사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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