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본성은 쓸모없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고 보니 제 전공인 순수미술(fine arts) 단어의 어원이 final과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름다움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 저의 가장 큰 욕구 중 하나는 아름다운 그 무엇인가를 보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고 그 경험을 나누고 살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뭘 시작할 때는 하다 보니 잘해서 돈이 된 거지, 돈 벌려고 시작한 일은 거의 없더라고요. 돈 벌려고 한 유일한 일은 200만 원이 안 되는 월급 통장에 갑자기 충격받아 시작한 ‘글쓰기 연습’이었습니다. 그때가 2017년이네요(혹시 그때 썼던 글이 궁금하시면 요기로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3년 전에 큰마음을 먹고 혼자 프랑스로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계기는 이랬습니다. 어느 날 잠자리에 들려는데 남편이 “한 달 뒤에 죽는다면 뭐 할래?” 하고 물었고, 그때 “여행 갈래.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프랑스도 못 가보고 죽을 수는 없어!“라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마침 회사를 그만두고 번아웃이 오던 때였고, 돈도 조금 모아둔 터라 태어나 처음으로 직접 항공권과 호텔을 결제했습니다(그 전까지는 누군가 예약해 주면 그냥 따라가기만 했습니다).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딱 느낀 건 '아, 눈에 거슬리는 게 하나도 없네'였습니다. 공항의 부드러운 곡선이 살아 있는 비대칭형 소파부터, 앵무조개의 곡선을 닮은 호텔 문고리까지. 알고 보니 프랑스는 도로에 면한 창문에 빨래를 널 수 없다는 조항이 있는 나라더군요. 창문턱에는 빨래 대신 예쁜 꽃이 심어진 화분이 놓여 있고, 도로에 큰 쓰레기통은 대문 안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고 놀랍고 행복한 경험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그 이야기를 해도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공감에 대한 욕구가 제 마음 한 켠에 있었어요.
그리고 마침, 오늘 그 감각을 느꼈습니다. 저녁에 함께 졸업한 선배한테 행사가 있다고 전화가 왔어요. 결혼 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무척 반갑더군요. 그 선배는 프랑스를 여러 번 방문한 경험이 있었는데(혈육이 프랑스에 거주함), 제가 그 이야기를 꺼내자 제 ‘눈이 편안했던 경험’을 진심으로 너무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맞아, 그리고 전봇대도 없지. 잠실에 집 살 돈 있으면 파리에 하나 사. 가격 비슷해”라고 하더군요. 물론 우리 둘 다 잠실에 집을 살 돈은 ‘아직’ 없어서, 그저 웃으며 넘겼습니다.
오래 전의 나와 많이 친했던 사람은 마치 살아있는 오랜 일기장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화로 선배가 졸업 후 몇 번 만났을 때의 느낌과 지금의 제 상황을 비교해 들려주었는데, 아주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너 졸업하고 히피처럼 살거나 아주 열심히 살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로 걱정은 안되었어.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 별로 걱정 안되는 사람. 항상 너는 그 당시 트렌드를 살피고 네 삶에 적용하고 있었어. 헤나가 유행할 때는 그걸 하고(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 했었음), 홍대 카페에 초크아트 간판이 엄청 많을 때는 초크아트 배우고. 겉으로는 헤매는 것 같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거라고 생각했어. 지금 정말 너답게 살고 있구나."
둘 다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그 얘기를 나눴는데, 참 신기했습니다. 평소에는 고양이처럼 늘어져 있다가도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미친 듯이 열심히 하는 점이요. 늘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지 못하고 끝까지 몰아붙이다가 결국 번아웃이 오곤 합니다. 선배가 말하길, “우리 같은 사람은 자기 마음에 안 들어도 세상에 내보내면 다른 사람들은 ‘우와!’ 하니까, 적당한 선에서 시간 안에 끝내야 해”라고 하더군요. 사실 그게 잘 안 되지만요.
이런 사적이고 왜 하는지 모르겠는 얘기를 왜 이렇게 길게 하냐고요? 제 채널 성장의 본질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여럿 있구나’라는 공감을 전하는 것. 사람들은 그 ‘이해받는 느낌’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구독’ 버튼을 누르게 되더군요. 그게 소위 말하는 ‘퍼스널 브랜딩’의 시작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벌써 ‘라이프 리뉴얼 글쓰기 클래스’ 2기의 중반을 달리고 있는데, 많은 수강생분들이 바로 이 퍼스널 브랜딩을 궁금해하시더라고요. 결국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점을 찾고, 나와 공감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저는 늘 저와 같은 감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공감이 생각보다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도 알게 되었고요. 어쩌면 제가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는 이유도 결국은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나 모티베이션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보람 있잖아요(영상 링크).
요즘은 1:1 세션을 통해 ‘라이프 리뉴얼 글쓰기’ 수강생분들을 만나면서 과거의 제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한때는 헤매는 것 같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걸 찾았고, 지금도 그 길 위를 걸어가는 중 입니다. 그래서 수강생분들의 막연한 고민과 어려움이 낯설지 않아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치 서로의 일기장을 잠시 펼쳐 보는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작은 이정표가 된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이런 경험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요. 드디어 빛나는 구독자님들이 7,179명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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