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으면

🎼  Butter Bath 「Kurrajong Hotel」, 2022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전국에 비가 내리는 한 주네요. 비가 내리는 날에는 거의 밖에 나가질 않고 집에만 머물러요. 읽어도 읽어도 줄지 않는 두꺼운 책을 넘기거나, 공연히 서랍을 정리하거나, 버릴 겨울옷을 미리 꺼내면서요. 이런 주간에 방은 한층 깨끗해지죠. '미니멀리즘' 같은 단어를 유독 자주 검색하고요.

정돈된 삶이 업무 효율을 높여준다거나, 기분을 좋게 해준다고들 하는데. 저는 보아야 할 것들을 질서 없이 쌓아두고 정신없게 지내는 날들의 마음이 더 편안한 것 같아요. 이렇게 정리에 몰입하는 시기는 집중할 업무가 없다는 뜻이라서요. 조금은 지루하고요. 지루하면 자연스레 불안해지더라고요. 깔끔한 일상 같은 건 제게 있을 수 없는 걸까요.

글마저도 잘 나가지 않아서. 고속도로처럼 뻥 뚫린 책상 빼고는 모든 것이 적당히 막혀있습니다.

 🎥 6월 넷째 주의 일 : 유튜..브?

책방을 운영할 때, 손님들과 주변 사람들은 유튜브를 해보라고 권하곤 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토로할 때마다 듣던 말이라서. "로또 사!", "코인 해!"와 같은 말과 거의 비슷한 빈도로 다가오는 "유튜브 해!"라는 말이 너무 지겨웠어요. 시끄러운 속이 유튜브 계정을 만드는 일 하나로 단숨에 해결될 것처럼 생각되지도 않았고요. 한편으로 '유튜브는 아무나 하나?'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나를 보여줄 용기와 함께, 촬영과 편집에 들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부산에 내려오면서 저도 "유튜브 할래!"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됐어요. 2년 정도로 한정된 부산에서의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든 남겨보고 싶었거든요. 뉴스레터를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고요. 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고 난 후에도 쉽게 시작하지 못하던 중이었는데요. 최근에 드디어 묵혔던 영상 파일도 꺼내고, 자막도 달아보았습니다.

지난주에 알렸던 통도사 산책의 일부도 영상으로 남겨보았어요. 혹시 유튜브 보는 것을 좋아하신다면 링크 통해 구경해보시기를. 꾸준히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요. 당분간 움직일 때 카메라를 꼭 챙겨보려고요. 뭣보다도 책 읽을 때 카메라를 켜두면 딴짓에 빠지지 않고 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예상치 못한) 장점이 있더라고요! 구독자를 고려한 채널이 아닌, 제 일상과 독서 기록의 일부가 되겠지만. 그래도 용기내어 나눠봅니다! 😶‍🌫️

📚 6월 넷째 주의 장소와 책 : 친구의 집 & 김지선 『내밀 예찬』 한겨레출판, 2022

저와 비슷한 시기에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한 후, 갑자기 남편의 직장 때문에 대구로 내려오게 된 친구가 있어요. 저 또한 같은 이유로 부산에 내려오게 되어서, 둘은 변해버린 밥벌이의 사정과 낯선 동네, 그 외의 소소한 신상의 변화로 괴로울 때마다 서로의 고민을 나누곤 했어요. 1년 가까이 흐르고 나니 둘은 적당히 평화로워져서. 저는 부산, 그는 대구에 머물며 각자의 삶에 익숙해져 가는 날들인데요. 친구가 저와 제 동거인, 그리고 함께 알고 있는 다른 커플을 그의 집에 초대해주었어요. 주말의 고속도로를 뚫고 대구로 달려갔지요. 서울과 대구, 부산에서 온 여섯 명이 모여 떠드는 자리가 만들어졌어요.

마침 대구에 오가던 주말에, 김지선 작가의 에세이 『내밀 예찬』을 읽는 중이었는데요. 3부 중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라는 글을 공유해보려고 해요.

제목 그대로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라는 글은,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는 경우 지켜야 하는 작가 자신의 원칙을 말하고 있어요. 방문 전에 읽었다면 저도 김지선 작가의 원칙을 사수해보려 했을 텐데. 아쉽게도 다녀와서 읽게 되었지 뭔가요. 바람직한 방문자가 되기 위해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가운데 첫 번째는 "우리 동네에서 살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맛있는 사제 디저트를 사가는 것", 두 번째는 "하나마나하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떠나야 할 시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해요. 

저는 사제 디저트도 사 가지 못했고, 하나마나한 말 같은 건 되게 많이 했고, 떠나야 할 시간에 아쉽다면서 소리를 꽥꽥 지르는 진상 방문자였는데요. 설거지 폭탄만 던지고 나온 걸 반성하면서 김지선 작가의 글을 뒤늦게 꼭꼭 씹어먹었어요. 우리가 다른 이의 집에 방문할 때, 원칙을 품고 나서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복을 버터에 굽다가 불이 났어. 내가 물을 충분히 제거하지 않았나 봐. 주방에 불이 나니까 정신이 없더라니까. 음식을 준비하다 생긴 사소한 해프닝이라며 친구는 낄낄 웃었지만, 딱딱한 전복을 솔질하며 토요일 오후를 보냈을 그를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그는 귀여운 프릴이 달린 앞치마를 벗지도 못한 채 우리를 반겨주었어요.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할 때까지도 앞치마와 함께였고요.

밥 지을 때 넣어 먹으면 맛있다는 나물까지 챙겨주던 대구 최고의 호스트를 떠올리며, 책 속의 말을 다시 읽어봅니다. 실은 집에 초대되는 일과 무관하게, 좋은 사람과 만나는 자리라면 그곳이 어디든 새겨야 할 마음이 아닐까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나눌 수 없는 말들이 오간 밤은, 몸과 마음이 허한 어느 날의 형체 없는 식량이 될 테니까요. 마음속으로만 곱씹었을 뿐인데도 입속에 진한 전복 향이 돌지도 모르고요.

30일이 마지막 날인 달은 하루 정도 손해 보는 기분이에요. 벌써 내일이면 한 달이 끝나지만, 한 달과 함께 한 해의 상반기가 끝나는 날이기도 한데요.

아마도 제가 부산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이 있을 날들. 이 도시를 떠날 때 미련을 줄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일단 방에서 나오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는 건 잘 알지만...

조금은 활동적으로 지내자는 다짐과 함께, 6월의 마지막 편지를 보냅니다.

구독자 님은 하반기에 무얼 계획하시는 중인지도 궁금하네요!
반년을 잘 마무리하는 한 주 보내시기를. 그리고 7월 편지로 만나요-

2022.06.29.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