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나는 세 번째 등골뼈에 살았어

🎼  Ruru 「Chewing Gum」, 2022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벌써 수요일이 돌아왔어요. 시간이 왜 이리 빠른지요!

이제 제법 수요일 오후에 편지를 다 쓰는 패턴이 되돌아오고 있어요. 늦은 밤까지 미루거나 도망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이번 주부터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출퇴근이 정해진 직장인과 함께 살다 보니,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이면 침대 속에서 휴대폰만 보다가 새벽을 홀랑 다 쓰곤 했거든요. 동거인과 같은 시간에 잠들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야 제가 좀 더 멀쩡한 정신으로 오후를 살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하여 아주 조금은 아침에 가까워진 저녁형 인간. 한 주 이렇게 살았습니다.

🚙 6월 셋째 주의 일 : 해맞이글방

책방 한탸에서 함께 하던 일기 쓰기 모임이 끝나고, 꼭 해야 하는 마감만 겨우 해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계약을 한 원고가 있고, 분량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인데, 마감은 한참 지나버려서. 언제나 반쯤은 초조한 마음으로 지내는데요. 올 여름에는 반드시, 집중해서 글 쓰는 시간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터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정나무 작가님이 이끄는 '해맞이글방'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제가 사는 곳과 가장 가까운 역 이름이 '거제해맞이'예요. 글방의 이름이 '해맞이글방'인 이유도 동네 이름 때문이겠죠? 부산의 작은 동네와 일출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허무하게도 해를 맞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더라고요. '해'맞이마을의 원형은 '홰'맞이마을이라고 하는데요. 부산진시장에서 장을 보고 다시 이 동네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험해서, 장꾼들이 무사히 거제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마중을 나왔기 때문이라고 해요. 지난 일년동안 이 동네에 살면서, 해맞이라는 이름에 온갖 상상을 덧붙이곤 했었는데 말이죠.

해맞이글방에 가는 첫 날, 왜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어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고 올라도 글방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하니 이미 많은 분들이 모여 있었어요. 첫 시간답게 어색하고, 정적도 흐르곤 했지만요. 앞으로 다가올 일곱 번의 마감마다, 횃불을 들고 쓰고 싶은 일과 마음을 환하게 밝히고 싶어요.

📍 6월 셋째 주의 장소와 책 : 통도사

지난 주말에는 통도사에 다녀왔어요. 원래 6월 초에 가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급하게 취소했었거든요. 경남 양산에 있는 한국 3대 사찰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요. 집에서 차를 몰고 가면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이어서 부담이 없었지요. 토요일 한낮에 달려간 절엔 이미 입구부터 북적거렸어요. 입장도 쉽지 않으려나 생각했지만, 절 곳곳에 주차 공간이 무척 많아서 무척 편하더라고요.

삼삼한 간을 한 산채비빔밥 한 그릇을 남김없이 비우고 통도사를 걷기 시작했어요. 화사한 색색의 양산을 들고 이동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것이 분명한 아이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연인들. 이런 무리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여드는 장소가 주는 편안한 분위기가 좋았어요. 유행도, 화려함도 없지만 느린 속도와 파란 하늘과, 나이 많은 나무가 있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끔 필요하더라고요.

통도사에는 여러 암자가 있는데, 그중에 유명하다는 서운암에 들렀다 가기로 했어요. 끝없이 펼쳐진 장독대와, 하늘과 맞닿은 듯 보이는 장경각의 전망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암자로 가는 도중, 오솔길을 걷던 짧은 시간이에요. 이름도 없는 그 좁고 작은 길을 걷는 시간동안, 주변의 살구나무에서는 다 익은 살구가 퍽, 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어요. 노랗고 부드러워 보이는 살구가 아까워서 저도 모르게 바닥에 앉아 열매의 반을 쪼개고 씨를 꺼내 한 입 베어 물었어요. 마침 뜨거운 해를 맞으며 길을 헤매느라 말수가 적어진 차였거든요. 달콤한 살구 한 알로 웃음도 나고 힘도 나던 여름 산책이었습니다.

📚 6월 셋째 주의 책 : 앨리슨 벡델 『초인적 힘의 비밀』 움직씨, 2021

책방을 운영하는 동안 여러 문화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선생님이 함께 읽자고 이야기 한 이번 주의 책. 스포츠에 관한 책을 읽자는 제안이었는데요. 저는 운동은 (의무감으로) 좋아하(려고 노력하)지만 스포츠는 아무래도 좋아했던 적이 없어서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첫 책으로 보여주신 앨리슨 벡델의 책을 너무 즐겁게 읽어서 걱정 같은 건 순식간에 날아갔어요.

알라딘 책 소개 페이지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요가를 알려주는 그래픽 노블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실은 운동이나 스포츠에 집중된 책이라기보다는 1960년대 생인 작가가 60대의 나이가 되기까지 거쳐온 삶의 이야기 전반이 담겨있습니다. 가족, 그림 작업과 관계, 영향을 받은 작가, 그리고 단련해 온 몸에 관한 내용이요. 

60여년동안 탐구한 몸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인생의 이야기였어요. 우울과 불안(특히, 작업 후에 오는 창작 산후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과 체력을 다지는 모습을 한 장씩 넘기다보면, 잘 살아보기 위해 고군분투한 한 인간에 대한 존경심이 피어오르기도 하고요. 회한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에서는 인간적인 애정이 생겨났어요.

내일 줌에서 만나 여러 선생님들과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다들 어떻게 읽으셨을지 벌써 궁금해져요! 

편지를 다 적어 놓고, 오늘은 지난 주에 알렸던 기타 수업을 들으러 가요. 수안역 앞 복잡한 거리에서 내비게이션을 보고도 두 번이나 틀렸는데요. 좀체 적응되지 않는 부산 길을 헤치고, 잘 다녀오겠습니다. ☺

구독자 님의 오늘 밤도 좋아하는 그 무엇과 함께하시길 빌어요! 

2022.06.22.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