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나는 더 강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데

🎼  PREP 「As It Was」, 2022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하루 이틀 사이에 기온이 떨어지는 게 느껴져요. 해가 짧아지는 것도요. 깊은 밤에는 모기와 때아닌 사투를 벌이는 중이고요. 저녁밥을 잘 지어먹습니다. 저녁 먹으려고 사는 사람처럼요. 집에 머무르는 것을 최대한 줄이다 보니 카페에 자주 가게 되네요. 휴대폰과 카메라 안에 커피 사진이 많아지는 요즘.

잘 지내셨나요? 저는 한 주 이렇게 보냈습니다.

🏡 10월 셋째 주의 장소 : 아홉산숲

주말은 집에 가만히 박혀 있기엔 아쉬운 날씨였어요. 토요일은 궁금했던 아홉산숲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개인이 소유하고 지켜온 숲이라 입장료가 있더라고요. 여러 사극에서 배우들이 날아다니며 칼싸움하던 대나무숲을 떠올려보신다면, 어떤 풍경일지 바로 그려지실 거예요. 원형 그대로 보존한 자연림이라고 하는데,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둘러보기에 불편하거나 어려운 점이 전혀 없었어요.

아홉산숲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숲 곳곳에 보이는, 읍소와 경고 사이의 그 무엇이었어요. 방문객들이 대나무에 끈질기게 이름이나 하트 같은 걸 새긴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모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누군가 이름을 새기고 나면 하루빨리 대나무를 베어버려야 한대요. 그래야 숲이 유지된다고요. 제발 그러지 말라는 안내 문구가 계속 보였어요. 아까운 대나무를 베어버리지 않게 도와달라는 호소문이요.

인간들은 대체 왜 이름을 못 써 안달인걸까, 생각하다 예전에 봤던 알쓸신잡 클립이 떠올랐지요. 오랜만에 한 번 더 찾아봤는데요. 김영하 작가의 해석이 가장 반짝이는 장면이지만, 이번에는 그 이름들(영희❤️철수)을 보며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부분이 더 재밌더라고요.

- 뮤지션 : "과연 헤어졌을까, 얘네는? 지금도 사귈까?"
- 과학자 : "낙서를 하는 행위가 사랑에 도움이 되나?"
- 정치인 : "그걸 왜 거기다가 쓰냐고!" 

내려오는 길에 '지름길'과 '완만한 길'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함께 간 단짝은 '지름길'을, 저는 '완만한 길'을 택했어요. 숏컷 대 젠틀의 양자택일 지점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 서로의 차이... 젠틀한 제가 양보하고 지름길로 내려갔습니다. 집에 돌아와 낮잠을 좀 잤고요.

📚 10월 셋째 주의 책 : 다와다 요코 『글자를 옮기는 사람』 워크룸프레스,  2021

지난 레터에서 소개했듯 책방 한탸를 하루 돌보았습니다. 그날 판 여러 권의 책 중에 유일하게 중복된 책이 다와다 요코의 소설이었는데요. 접점이 없는 두 명의 손님이 시간 차를 둔 채 작고 파란 책을 동시에 사갔다는 게 조금 재미있어서. 그리고 마침 비닐조차 뜯지 않은 채 깨끗하게 꽂힌 이 책이 집에 이미 있어서. 마음을 먹고 꺼내어 비닐도 벗기고 줄도 치며 읽어보았어요.

80여 페이지 가량의 짧은 소설 속 주인공은 번역가입니다. <성 게오르크 전설>이라는 기독교 설화를 번역하는 주인공은, 마감을 하루 남기고 겨우 일을 시작하는데요. 그가 하루동안 번역 일을 마감하는 과정이 어찌나 스펙터클하고 고통스러운데다 다채로운지! 카페에 앉아 한 권을 순식간에 읽어버렸어요.

저는 어쩐지 '거치적거리는 일'이라는 부분에 꽂혔습니다. 직업의, 예술의, 하고 싶은 일의, 의무의 방해꾼들. 소설에는 수많은 '게오르크 같은 것'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 주인공의 마감을 방해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느라 바빴는데요. 책을 다 덮고 나니 비로소 제 안과 밖에 도사리고 있는 게오르크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구독자 님의 게오르크는 누구이고, 무엇인지 궁금해요. 거치적거리는 것들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그만두게 될지 몰라도) 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지도요. 이 얇은 책을 두고 게오르크 부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졌어요.

🎥 10월 셋째 주의 일 : 유튜브

마음을 먹고 유튜브를 (다시) 시작... (했다, 접었다, 했다, 접었다 해서 민망하네요.🥲) 편집도 촬영도 능숙하지 않지만 어쨌든 다시 찍어보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밖에 나갈 때면 카메라를 챙기는 걸 잊지 않습니다. 콘텐츠가 어쩌고, 기획이 어쩌고, 차별화와 광고 수익이 어쩌고저쩌고... 주변의 아이디어 뱅크들이 유튜브에 관해 수 년간 많은 말을 던져주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찍고 담을 수 있는 건 평범한 하루하루가 전부인 것 같습니다.

흔들리는 카메라 초점, 매끄럽지 않은 생활 소음, 거친 숨소리, 어설픈 컷 편집과 어색한 몸짓의 주인공만 나오는 영상이지만. 심심해서 견딜 수 없는 어느 날에 생각나신다면 재미있게 보아주세요.

한 주가 빠르게 지나가요.

10월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10월과 작별할 준비가 되셨나요?
저는 아직 되지 않아 그런지. 셋째 주에 접어드는 10월에 적응조차 못한 건지. 침대에 누우면 잠이 잘 오지 않고, 온갖 기괴한 장면으로 가득한 꿈을 꾸며 지낸답니다.

구독자 님의 숙면을 빌며. 다음 주 10월 마지막 편지로 만나요! ☺️

2022.10.19.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