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플랜 마쿠스트 ep.18 세 편의 시

구독자님에게 보내는 열여덟번째 편지

2024.02.28 | 조회 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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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멘트없는 심야 음악 방송처럼. 코드쿤스트가 작곡한 노래 Let U in을 듣다가 흑인 가수가 부르는 듯한 피쳐링 음색에 반해서 Colde를 알게 되었다. 단번에 좋아졌다. 단편영화 같은 아름다운 영상의 뮤직비디오와 세 편의 시가 깊이 있게 동조한다.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내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중에서

 

 
 

그저께 보낸 메일
오늘은 어제의 다음 날
어제는 예스터데이
비틀스 노래 속에 날마다 되살아나는
어제는 오늘의 바로 전날
독일어로 gestern/게스테른
그저께는 어제의 바로 전날
vorgestern/포어게스테른
영어로는 좀 길지만
the day before yesterday
그 긴 날 저녁때도 원고를 고쳐 쓰고
와인 한잔 마셨던가
가물거리는 그저께 기억
수첩을 꺼내 보지 않으면 누구를
만났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네
손을 뻗치면 곧장 닿을 듯 가까운
어제의 하루 전날
안타깝게도 되돌릴 수 없네
그저께 보낸 메일

김광규 시집 「그저께 보낸 메일」 중에서

 

 
 

세상의 액면
39층에서 내려다본 이승의 액면.
뚜렷한 금이 사라졌다가는 이어지고,
거리를 가득 메운 세상의 수많은 모자들.
모자에 감춰진 금서들과
개 같은 여름의 추억들.
거칠기만 한 모서리들.
굴뚝 속에서 날아오르는 깨달음의 새들.
하나 둘 하나 둘,
일기를 쓰는 그날 저녁의 근육들.
야근조의 눈에 반사된 십자가.
숯이 되어버린 길 잃은 양들. 버스를 가득 채운 근심스러운 성자들.
폐수와 나란히 흐르는 생生.
전동차 속에 처박힌 외투들, 그리고
비슷한 무게의 이데올로기.
봉인되지 않는 회색 유골함. 출간되지 못한 서책들.
이승이라는 신전.
빨랫줄에 내걸린 무희들.

허연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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