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플랜 마쿠스트 ep.16 타거나, 타지 않거나

구독자님에게 보내는 열여섯번째 편지

2024.02.25 | 조회 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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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쿠리 잡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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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흐른 지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다.
30년이 흐른 지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다.

내가 20대 때 주말마다 빠짐없이 챙겨보곤 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 프로그램 중 이휘재가 고정 출연하며 인기를 모은 "TV인생극장" 코너가 있었다. 전철 문 앞에 선 여자가 도착한 열차를 탔을 때와 타지 않았을 때 서로 다른 두 개의 인생이 펼쳐진다는 “슬라이딩 도어스” 영화와 유사한 포맷. "TV인생극장"을 보며, 수많은 선택과 결과들을 봤을텐데... 30년이 흐른 지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다.

"이런 상상은 한다"

 

내가 다녔던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밤 늦게 편집 일을 끝내고 회사 앞에서 스완을 만났을 때, 우연히 같은 방향이고 비슷한 지역의 동네라서 같은 택시를 탄 적이 있다. 얼굴은 아는 사이였지만 실은 그 순간이 거의 첫 만남이었다.

쑥스러운 마음에 난 앞 좌석에 스완은 뒷 좌석에 탔고, 별로 말도 섞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내릴 때 같은 동네 사람이니 나중에 맥주 한 잔 하자는 말을 건넸다.

그 때 같은 택시를 타지 않고 다른 택시를 탔거나 혹은 맥주 한 잔 하자는 말을 내가 건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봄이 오면 화분을 몇 개씩 샀는데 매번 죽이는 일도 없었겠지. 해외 여행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는데 스완을 따라(?) 여기저기 다니지도 않았겠지.

영화 <파이란>을 보며 침대에 누워 울다가 엄마한테 들켜 데이트나 하고 다니라고 혼나는 그런 일이 다반사였을지도.

 봄이 오면 화분을 몇 개씩 사지도... 스완을 따라(?) 여기저기 다니지도...
 봄이 오면 화분을 몇 개씩 사지도... 스완을 따라(?) 여기저기 다니지도...

어제 조카의 결혼식을 다녀오면서 우리는 결혼 할 때 이랬지… 이십 년도 더 된 옛 사진을 되돌아 봤다.

친구의 다섯 번째 결혼 때 라임 선물을 했더니 그렇게 화분을 잘 죽이던 친구가 그 라임 만은 싱싱하게 잘 키우고 결혼 생활도 행복하단다. 그래서 그건 순전히 라임을 선물한 내 덕분이라고 고백하는 짧은 소설이 있다.

모든 우연에 라임 같은 축복을!

갱년기를 앓는 이 순간에도 추억은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모든 우연에 라임 같은 축복을! ©홍성용(라인드로잉), 마쿠스트(컬러링)
모든 우연에 라임 같은 축복을! ©홍성용(라인드로잉), 마쿠스트(컬러링)

 


"마쿠스트가 추천해요!"

서태지와 아이들 - 너에게 (Audio)

1993.06.21 / 2집 하여가(何如歌)

프로포즈 때 애니메이션을 그려서 준 테이프 속 배경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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