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손님을 기다리며
두 시간 뒤면 한국과 뉴욕에서 출발한 친구 두 명이 오스틴 공항에 도착해요. 1년에 10명이라니, 꽤 근사한 스코어 같아요.
저는 섬세하고 사려 깊지 못한 대신 시원하고 무던한 성격이라 친구들과 큰 갈등 없이 오래 가는 편이에요. 초·중·고·대학교 친구들부터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까지 친한 그룹도 다양하고요. 그러다 보니 10번째 손님 뒤로도 몇 명 더 예약(?)이 잡혀 있어요.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할 거 없는 오스틴에 이렇게까지 놀러 오는 친구가 많다고요?"라며 신기해하더라고요. 그러게요. 저도 가끔 놀라요. 인복은 타고나는 걸까요?
만나는 사람만 만나는 일상
자랑아닌 자랑은 여기까지. 이제 현자타임 좀 가져볼게요. 고백하자면 지난 한 달 동안, 아니 지난 1년 내내 같은 사람들만 만나고 있어요. 미국에서 마음을 나눌 몇몇 사람이 생겼지만,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가 쉽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한 얼굴들만 보게 되더라고요.
문제는 이 사람들이 한 그룹이라는 점이에요. 조촐한 홈파티를 열고 싶어도, 초대 못 받은 사람이 서운해할까 봐 인원을 무리해서 늘리거나,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싶어도 눈치 보게 되는 일이 많아요. “에이, 누가 그런 거 서운해해?” 싶겠지만… 정말 서운해하더라고요.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거에요…………)
너와 나의 온도차
사실 더 큰 문제는 서로간의 속도와 온도가 다르다는 점이에요. 상대방과 나의 속도와 온도차가 클수록 불편함도 커지더라고요.
“난 너랑 더 친해지고 싶은데, 넌 생각보다 친해지는데 오래걸리는 타입같아.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000도 따라 다니고 싶어” 이 말을 듣고 “그런가? 하하…” 어색하게 웃었지만, 솔직한 속마음은 이거였어요.
‘전 그냥 이 정도 거리가 딱 좋은데요…?‘
원치않는 관심과 호의를 받아도 무조건 감사합니다 해야 하는 걸까요? 이런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죄책감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뭐라고…” 싶은 감정들. 게다가 이 작은 커뮤니티에서는 사람을 선택적으로 만나기도 어려워서,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어쩔 수 없이 가깝게 어울려야 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절 좋아할수록 더더욱이요. 구구절절 더 쓰고 싶지만, 이러다 상대의 단점을 나열하며 내 불편함을 정당화할 것 같아 여기서 줄일게요. 그러면 나까지 싫어질 것 같거든요.
‘출입자 명부’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
“미국 생활 어때? 힘든 건 없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 얘기를 반복하는 걸 보면, 아마 이것 말고는 별 탈 없이 지낸 것 같아요. 감사할 일이죠. 며칠 전 면님의 뉴스레터에서 “나라는 인간을 방문하고 간 사람들을 기록하는 ‘출입자 명부’” 를 보고 문득 생각했어요. 지금 내 출입자 명부에는 어떤 이름들이 적혀 있나? 만난 후 기분은 뭐라고 적어야 할까…? 지금까지 들어온 사람들도, 앞으로 들어올 사람들도… 알맞은 속도로, 편안한 거리에서, 함께 걸어가면 좋겠어요. 🙃 일단 이번 주는 애정하는 친구들과 즐거운 일주일을 보내볼게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간
오스틴 궁금해요.. 저도 언젠가..
의견을 남겨주세요
면
우와 오스틴.. 교과서에서나 보던 지명인데 그곳에 계신다니 너무나도 신기합니다! 속도라고 표현하셔서 든 생각이에요. 진님의 속도가 10km/h라고 친다면 다른 분은 100km/h, 30km/h 이런식루 처음부터 서로를 소개하면 훨씬 서로를 잘 이해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ㅋㅋ MBTI 처럼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동
제가 볼 땐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 친해지는 진님이라 그들은 대체 어떤 속도감인것인가 아득해져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챈
외국에서 살 때, 저도 좁은 인간관계가 아늑하면서도 갑갑하기도 했어요. 학창 시절과 사회생활을 하며 쌓인 인간관계의 다양한 레이어가 사라진 느낌ㅠㅠ 적당한 거리로 진님의 마음을 지킬 수 있길 바래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