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E
교외 지역에서 밥을 먹고나서 까페를 어디 갈까 찾고있었어요. 프랜차이즈는 패스, 리뷰 수가 적거나 평점이 낮은 곳도 제외. 세 군데쯤 추려본 뒤, 수제 파이가 맛있고 친절하다는 후기가 있는 곳으로 결정했어요. 지나치게 옛 감성의 까페 아닌가 싶었지만, 서울에선 이제 흔한 깔끔하고 어딘가 센스있어 보이는 까페를 기대하진 않았던 터라 선택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도착했더니 보이는 민트색 아치에 주황색으로 적힌 ‘ROSE’라는 오래된 글씨. '망했다.'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친구는 아치를 지나쳐, 핫핑크로 칠해진 벽 옆에 색이 바랜 연두색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카페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이쪽으로 연락 달라며 주문대 한쪽에는 핸드폰 번호가 적혀있었어요. 전화를 걸자, 바로 옆에 있던 빈 테이블 위에서 진동소리가 울리더라고요. 그래서 큰 소리로 인기척을 냈더니 그제야 한 아주머니가 나왔고 안경을 쓴 그분은 어머니뻘로 보였어요. 커피와 호두파이를 주문하고 나서 제가 친구에게 작은 목소리로 진열대의 파이를 보며 속삭였습니다. "저거.. 오래된 거 아니겠지?"
주문하고 자리로 가며 쓱 둘러봤을 때는 여러 가지가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거처럼 보였어요. 샹들리에에 검은색 가죽 의자와 연둣빛 나무 테이블, 앤티크 시계, 여기저기 있는 자그마한 도자기 인형들, 한가운데 떡하니 놓인 빨간 테이블과 그 주변을 감싸는 형형색색의 꽃들까지.. 하지만 찬찬히 둘러볼수록 그 공간에 고스란히 배인 주인아주머니의 애정이 느껴졌고, 모든 것들이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것처럼 느껴졌어요. 카페는 생긴지 오래돼 보였는데, 그동안 깔끔하게 가꾸고, 소품 하나하나 모아가며 공간을 만들어나갔을 아주머니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 공간을 둘러보고 있자니 호두파이가 오래된 건 아닐까 걱정했던 제 자신이 좀 부끄러워졌어요.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테이블에 놓인 호두파이는 정갈하게 정사각형 조각들로 잘려 있었고, 접시 모퉁이에는 하얀 휘핑크림이 곁들여져 있었어요. 따뜻하게 데워진 호두파이 한 조각을 맛보는 순간, 친구와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전등보다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내부를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어요. 창가를 따라 놓인 식물들은 정원과 실내의 경계를 허물 듯 자리 잡고 있었고, 빈티지 테이블과 의자에선 포근한 나무 향이 났습니다. 서울의 카페는 대체적으로 계획된 공간 구성에 심플하고 미니멀한 인테리어, 유명 브랜드의 조명, 깔끔한 디자인의 의자와 테이블을 갖추고 있기 마련인데요. 서울에선 절대 찾을 수 없을 이 카페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어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을 그곳에서 머물렀습니다.
후! 회사
이번 주에 회사에서 열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부드럽게 다른 단어로 포장해볼까 했는데, ‘열받았었다’ 말고는 생각이 안 나네요. 이게 뭐 좋은 얘기도 아니고 쓸까 말까 고민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열받는 감정! 이번 주에 이런 감정을 느꼈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는 마음으로 써보려고요. 제가 열받았던 포인트는 이거였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조심스레 대하려 하는데, 어떻게 이 사람은 나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사이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우리 사이엔 어떤 히스토리도 없는데 대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하는 거지?’ 처음엔 당황과 당혹이었어요. 그런데 이 일이 조금 더 지속되니까 그때부터는 열받는 감정으로 변해버리더라고요.
와 너무 답답해서 제 지인 중 누구에게라도 얘기하고 싶었지만.. 이런 자잘한 회사 내에서의 이야기를 회사 밖의 누구에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짧게 얘기해 보려 해도, 상황 설명을 하자면 그 인물이 누구며 어떤 팀이며부터 시작해서, 구구절절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아무리 설명해도 같은 회사가 아닌 한 듣는 사람은 이해하기 상당히 까다롭지요.. 그렇다고 또 이 답답한 나의 감정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상대방은 이 부정적인 감정을 온전히 받아서 들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또한 알기에 말을 줄이게 되더라고요.
내면의 코어가 단단해서 그 누가 뭐라 해도 의연한 사람. 그게 바로 나였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이 되기는커녕 그런 ‘척’하는 것만도 저에게는 참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척하면 다 티 나는거 같아요😂) 제가 만약, 어떤 일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부드럽고 가볍게 미소 짓는 표정을 항시 유지하며, 생각은 깊고 마음은 넓으며, 과묵하되 한 마디의 촌철살인으로 어떠한 까다로운 상황도 멋있게 한 큐에 정리해버리는 그런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금요일 퇴근과 함께 싹 잊혀졌던 일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일 월요일을 생각하니까 스멀스멀 올라오네요. 이번 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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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하이라이트 기능이 있다면 좋겠어요 요 문장 전체에 긋고 싶거든요! 그리고 척하면 다 티 나는거 같아요😂 제가 만약, 어떤 일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부드럽고 가볍게 미소 짓는 표정을 항시 유지하며, 생각은 깊고 마음은 넓으며, 과묵하되 한 마디의 촌철살인으로 어떠한 까다로운 상황도 멋있게 한 큐에 정리해버리는 그런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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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의연한 사람. 생각만으로 정말 부럽고도 멋진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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