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이네, 정말!
지난 수요일 저녁, 인천발 치앙마이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그날 끝내야 하는 일의 컨펌을 탑승 2분 전까지 기다리다 어찌저찌 마무리하고서요. 옆자리 분은 일행과 같이 앉겠다고 자리를 옮기셨는데요. 친절하게도 자리 넓게 쓰시라는 말씀까지 해주고 가셨답니다. 미리 사놓은 베이글과 물로 저가 항공 살아남기도 준비 완료였고요. 첫 번째 문제는 이륙과 동시에 찾아온 어마어마한 두통. 컨디션 안 좋은 날이면 기내 기압 변화에 랜덤한 통증이 발생하는데요, 어떨 땐 이빨이, 어느 날은 귀가, 이번 비행에선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챙겨온 진통제는 캐리어 깊숙이 들어있고, 일단 자면 낫겠지 싶어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5시간 반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태국엔 저렴한 그랩이 있잖아요?!🥹 숙소를 향해 그랩 택시로 달린 건 밤 10시 무렵. 기절하듯 잠들어, 다음날 진짜 여행 첫날을 맞이했어요. 유난히 눈두덩이가 무거워서 설마 얼굴에 모기를 물린 걸까 두근거리며 몸을 일으켰는데, 거울 속 제 얼굴은 두 눈과 입술이 벌겋게 부었더라고요. 제 인생 첫 알러지 반응이었습니다..네에.. 이것이 두번째 문제였고요.
‘에이 뭐 내 사진만 안 찍으면 되지 싶어’ 항히스타민을 약국에서 사 먹고 바로 여행에 돌입했습니다! 로스트 치킨에 솜땀을 배부르게 먹고 나니 살 것 같더라고요. 반캉왓 예술가 마을과 님만해민 시내를 마음껏 누볐어요. 지옥 불 여름 날씨를 예상했는데 생각보단 걸을 만 하더라고요! 그렇게 수박 스무디까지 야무지게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느낌이 요상해지는데요. 장-지컬이 약한 저는 배탈을 직감했습니다. 숙소까지 10분 남짓, 혼자만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 애써서 인간 존엄성만은 지켰냈지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모먼트
여행 이야기 시작이 요절복통 더러운 에피소드라 놀라셨나요? 하하. 아무리 럭키비키 정신을 붙잡으려고 해도, 엉망진창 몸 상태에 좀처럼 기운이 나질 않더라고요. 멀리 왔으니까 어떻게든 즐겨보자며 마사지와 요가 수업을 예약하면서도, 예민하게 제 상태를 체크하고 길거리 음식은 모조리 패스했어요.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사진을 본 친구가 저한테 해준 한 줄짜리 말이 마음을 바꿔놓았어요.
‘너, 진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시절에 있구나?! 너무 좋다(My god Chaeny, you are really in your Eat Pray Love era. I love it)’ 아, 그 영화속 같이 낭만적인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에 내가 있구나. 치앙마이는 또 올 수 있지만, 지금 생각하고, 느끼고, 고민하는 건 진짜 지금뿐이겠지! 그렇게 되새기게 되더라고요. 고생한 것도 지나면 더 재밌는 경험담이 된다는 걸 아니까요. 바로바로 감정을 흘리지 말고, 온전히 느껴보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씀도 떠오르고요. 그래서 매번 한국 돈으로 환산하며 더 알뜰히 다니지 못하는 걸 신경 쓰는 습관은 내려놓고, 원하는 만큼 움직이고 쉬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친구의 말 덕분에 모든 게 괜찮아지고,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감을 전하고 나니 답장이 왔어요. 사실, 친구가 말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모먼트는 단순히 낭만적인 영화 같은 순간이 아니었더라고요. 정말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득 찬 어느 한 시기를 부르는 말이었죠. 마음이 무거울수록 건강한 루틴, 맛있는 음식으로 스스로를 잘 돌보려고 노력한 때 말이에요. 그냥 제가 여행을 다니는 것을 부러워한 게 아니라, 현재에만 집중하려고 발버둥 친다는 걸 알아주는 것 같아서 뭉클했답니다..!
이 친구는 이번 여름에 한국을 찾아 저와 함께 여행을 다닐 예정이에요. 저도 친구에게 한국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모먼트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벌써 설레고 있어요. 손님맞이 계의 프로, 진님의 비법이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갑자기 마무리하며...
추천받은 카페를 다니고, 작지만 귀여운 호텔 수영장을 온전히 만끽하며 남은 일정들을 잘 마쳤어요. 월요일 새벽에 한국에 도착했고요. 바로 일상에 복귀하고 나니, 벌써 아득한 느낌이에요. 한국도 제법 따스워져서 내일 달리기도 다시 나서보려고 해요. 작은 결심은 또 충전한 만큼 잘 지켜보려고요!
또 사알짝 수요일로 넘어간 시간이네요. 다들 안온한 주중을 보내고 계시길 바라면서 여행 사진 몇 장을 함께 보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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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챈의 여행 시작과 끝의 변화가 느껴져요. 이 era 파도타듯 물 먹으면서도 즐거울 수 있길! ‘4인조 밴드지만, 어찌저찌 3인조로 등장한 재즈 공연’에 상상력을 발휘해보며 재미있게 읽었어요.
챈
가끔 물 먹어도 즐거운 수영처럼! 이 순간을 잘 헤쳐 나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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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첫날부터 알러지라니 잊지못할 여행 도입부겠네요. 현재를 찐하게 느끼며 다녀온 여행의 에피소드들, 사진들을 보며 같이 즐거웠어요!
챈
알러지 정체가 궁금한데 아직 알아내지 못했어요, 허허.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기쁩니다! 옥님의 건강한 식사와 루틴을 얼른 닮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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