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흘려 보내는 날
한시간 이십분, 18시 퇴근까지 남은 시간입니다. 이미 인트라넷 최신글을 다 섭렵하고, 주어진 텍스트를 샅샅이 본 터라 남은 이 시간을 어떻게하면 현명하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러다 아이폰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보아요. 신입 구성원인데 벌써부터 딴짓이라니, 너무 대담한가요? 눈 깜빡이며 화면을 헤매기엔 시간이 더디 흐를 것 같아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저는 지금 두번째 이직처, 그러니까 세번째 직장 사무실에 앉아있어요. 낯선 이름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어쩐지 낯설지 않은 느낌입니다. 첫 이직이 어렵지 그 이후는 쉽다라는 말에 버럭 화를 내곤 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한 것 같아 머쓱하기도 합니다. (물론 업무는 시작도 하지 않아 섣부르긴 하지만요.)
어쩌면 피그마, 노션, 슬랙과 같은 익숙한 도구를 쓰기 때문일지도, 혹은 일하는 방식과 고민의 내용이 비슷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무심한 친절함과 지루한 익숙함에 안도하며 뉴스레터를 작성하는 사치를 부리고 있습니다.
업무의 익숙함과 별개로 고민이 있어요. 당분간, 적어도 1년간은 이 일을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결정한건데도, 3일차에는 너무나도 이른 생각임을 알면서도, 앞으로의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려나 막막하고 답답하긴 이전과 매한가지라는 점입니다. (놀랍게도 이 글을 이렇게 적어두고 그 사이 더 막막한 큰 변화가 생겼어요. 이건 차차 풀어놓을게요)
잘하는 일과 - 좋아하는 일 - 그리고 돈을 버는 일 세가지 일의 적절한 균형점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했는데, 역시나 안전한 타협점이었나봐요.
마음 한구석에 불분명하게 있는 ‘좋아하는 일‘ 그리고 ‘그나마 잘하는 일‘이 아닌 ‘잘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오후에요.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일 앞에 앉아 내 경험은 잘 디자인되었는지 고민합니다. 이 회사는 저의 평생 파트너가 될(수 있을)까요? 퇴근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며 더 생각해볼게요.
소식이 없는 펜팔 친구들의 행복한 봄 날을 기원하며 동 드림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