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하이라이트 ⊹
지난 편지를 전하고 오늘까지 일어난 일들을 찬찬히 살펴보았어요. 네가지 꼭지를 전해봅니다.
1. 폭설이 온 날
지난 금요일 기억나시나요? 눈이 꽤 많이 내린 날이에요. 눈이 온다는 이유로 밖으로 구경 나간 경험은 오래된 것 같아요. 직접 밟고 맞아야 더 즐거운 눈이지만 창밖으로 보는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팍팍한 지난날들이 떠오르네요. 작년 이맘때쯤 폭설이 온 날, 회사 점심시간에 경복궁을 찾았던 적이 있어요. 경복궁까지 걷는 20분간은 신발이 젖고 얼굴도 얼고 괜한 발걸음인가 생각이 들면서도, 함께 가자고 데려 온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아무렇지 않은 씩씩한 척 걸었던 길이었어요. 다들 알만한 결말, 입장한 이후에는 눈녹듯 사라진 후회였지만요. 그 때 본 풍경은 2024년 시각적 하이라이트 Top5에 당당히 들어가요. 누군가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만들어 둔 귀여운 눈사람들이 풍경에 사랑스러움을 더하더라고요. 함께 한 동료들의 행복한 표정에 덩달아 신이 났어요! 그 날,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나니 생생한 풍경이 기억에 쌓였어요.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제가 자랑스러웠고 앞으로도 자주 이런 기회를 잡자고 다짐했던 순간입니다. 눈 내리는 게 무슨 '기회'씩이나? 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서울에 5cm 이상의 눈이 쌓인 날은 3년간 7일밖에 없대요. 살면서 몇 번의 눈을 더 맞게 될까요? 제가 즐겨하는 피크민이라는 게임에서는 눈이 오면 희귀 피크민인 눈 피크민을 얻을 수 있어요. 눈이 오는날 밖에 나가 걸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추가되었어요. 다음 눈이 내리는날에도 번거롭게 방수 모자 챙겨 산책하고 오겠습니다!
2. 편지 두 통이 온 날
예기치 못한 편지 두 통이 설날에 맞춰 연하장처럼 도착했어요. 엘레베이터 타기 전 힐끔 쳐다본 우편함에 고지서가 아닌 편지 봉투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눈도 커지고 웃음이 났다고 표현할게요. 이번 두 통 모두 봉투 겉면에 보낸이의 이름이 없었는데요. 한 통은 너무 익숙한 글씨체에, 우체국에서 붙인 등기 라벨의 지역명이 힌트가 되어 금방 보낸이(일요일에 편지를 발송해 줄 YB)를 떠올릴 수 있었어요. 다른 한 통은 일본에서 온 편지였는데, 머리 속에 여러 사람이 떠올랐지만 누군지 알 수 없었어요. 얼른 집에가서 뜯어보고 싶어 조바심이 나던 순간이 기억 나네요. 발동동이라는 표현이 꼭 맞는 순간. 집에 와 겉 옷을 입은채로 편지를 읽었고, 따뜻한 감정이 여운처럼 오래 남더라구요. 편지에는 평소 이야기거리와 다른 주제가 주로 쓰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좋아요. 이 뜻밖의 이벤트가 이번 주 하이라이트가 되었어요. 누군가 손으로 직접 적고 우체국에 방문하는 번거로움이 만들어 낸 기분 좋은 순간이었네요. 눈 오는날 산책처럼요.
3. 3년만에 찾은 스테이크 하우스
동네에 작은 스테이크 음식점이 있어요. 이 동네에 처음 살게 된 3년 전, 생일 외식으로 방문했던 곳인데 사장님 한 분이 운영하는 작은 공간이었어요. 그 음식점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모두가 동네 뉴비였어요. 스테이크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가성비'가 나름 잘 어울리는 가격, 훌륭한 맛의 메인 메뉴, 더 훌륭한 디저트 메뉴가 제공되어 만족스러운 미각 경험이었는데 뉴비 사장님이 어떤 정적도 허용하지 않으셔서 2시간 가까운 식사 시간동안 끊임없는 리액션을 하다 나왔었어요. (아- 그러셨구나, 정말요?, 헉 어떡해요...? 등등) 좋은 의도로 말을 걸어주신 것임에 틀림 없지만, 식사를 마치고 어쩐지 지쳐버려 그 스테이크 음식점은 기억속에서 잊혀졌습니다. 동거인이 가끔 먹으러 가자고해도 대답할 부담감에 다음에 가자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3년만에 예약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이 자리를 아주 잘 잡은 음식점! 한달 반 뒤의 예약만 가능한 상황이라 어느 주말 저녁으로 예약을 해두었고, 그 날이 바로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한결같은 맛에 분위기지만 그 사이 더욱 프로페셔널해진 사장님이 불편함 없이 접객해주셨어요. 3년 전 우리가 나누었던 주제도 기억해서 적절히 대화를 걸어주시기도 하고요. 착각일지는 몰라도 선호하는 와인 스타일도 적어두신 듯 했습니다. 적절한 대화 공백에 즐겁게 식사하고 나왔어요. 3년동안 인기있는 음식점으로 성장하게 된 이유가 납득이 갔어요. 처음 오픈했을 때 한 번 방문한 경험만으로 판단한 건 너무 단편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의 20대, 혹은 신입사원 뉴비 시절의 모습만 본 사람들에게 한 번의 대화의 기회를 달라고 청하고 싶어져요.
4.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를 읽다
작년 말 ~ 올해 초 내내 쪼개 읽던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를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기가막힌 표현을 썼을까 싶은 문장이 다수라 형광펜으로 표시도 많이 하고,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문장들, 답을 정리해보고 싶은 질문들이 많아 필사를 하기도 했어요. 또 도시를 그 도시답게 만드는 것. 그런 로컬의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도 꾸게 되었습니다. 편지 프로젝트에서 다뤄보고싶은 생각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분량 조절에 실패한 것 같아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적어볼게요.
언젠가 만났던 아이슬란드의 한 작곡가가 제게 절대 잊을 수 없는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게 필요한 때에 내게 필요한 사람을 만났어요."프랭클린 익스프레스
우리가 지금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며, 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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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보내고 나니 눈이 펑펑 내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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챈
호호..저도 이번 주에 미국에서 온 엽서 한 통을 받은터라 그 발동동 설렘에 공감해요! 소크라테스에 이어 프랭클린 익스프레스 탑승 완료했는데, 얼른 읽고 후기 나누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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