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 다양한 미국 대학 이야기: 커리어 기회와 환경

스탠퍼드가 최고의 선택이었을까

2025.02.24 | 조회 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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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 LAB

실리콘 밸리 이공계 박사 부부가 보는 세상 이야기

슬슬 미국 대학 (학부와 대학원 모두) 입시 결과가 나오는 시즌이죠. 아무래도 학교 결정을 앞두고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시기이고, 또 올해 하반기 입시를 앞두고 고민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진로 결정 이야기를 기반으로, 학교에 따른 졸업 후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대학원 지원을 앞두고 고민이 많던 대학교 3학년 시절, 우연히 한 통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몇년도 통계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미국에서 한 해에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는 사람의 수는 2천명 정도인데, 물리학과 교수나 정부 연구소 소속 물리학자를 뽑는 자리는 200명 남짓이라는 통계였습니다. 단순 계산으론 10% 남짓의 확률, 열심히 하고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인생을 걸기엔 좁은 문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물리학자가 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현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중학생 때 물리라는 학문에 빠져, 물리학자가 어떤 삶을 사는지도 모르면서 물리학자를 꿈꾼지 10여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전 글에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제가 다닌 대학교는 일반적인 한국인 관점에서는 상당히 "시골"에 있었습니다. 저희 대학과 대학 병원을 제외하면 별 볼 일 없는 동네, 코닥 등의 광학 장비 관련 기업 몇몇을 제외하면 일자리도 많지 않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런 지역적 특성 때문에, 졸업하고 인근 지역에서 취직을 하는 이공계 선배들은 굉장히 적었고, 동문들 간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일은 꽤 어려웠습니다. 졸업한 선배들이 어디에 가서 무얼하고 사는지, 학교 다닐 때 정말 친했던 1년 위 선배 정도가 아니면 알 길이 없었습니다.

대학원 지원과 진학을 앞두고, 학문을 계속하지 않게/못하게 되는 경우의 커리어 옵션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엔 물리학을 계속하지 않으면 제일 적성에 맞는 차선의 직업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혹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고 생각했고, 기초과학을 하면서도 머신러닝의 다양한 활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익숙한 산책 코스가 되어버린 스탠퍼드 캠퍼스. 대학원 합격 소식을 들었던 2017년 2월 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이제는 익숙한 산책 코스가 되어버린 스탠퍼드 캠퍼스. 대학원 합격 소식을 들었던 2017년 2월 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감사하게도 스탠퍼드 포함 여러 학교에서 대학원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모두 충분히 재미있는 연구를 할 수 있고 좋은 교수님들이 재직 중인 학교였기에, 학문 외에도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최종 결정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학계 밖의 세상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공계인들이 모여 기술 중심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기업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던 입장에서, 선택지는 너무 명확했습니다.

그렇게, 실리콘 밸리로, 스탠퍼드로 오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스탠퍼드에 와보니, 학교는 회사들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도 다양한 회사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회사들도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하고 어떤 연구를 하는지 관심이 많은 곳이에요. 지리적 환경의 차이, 그리고 그에 따른 문화적 차이가 학생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물론 스탠퍼드가 특별한 학교임은 사실이지만, 실리콘 밸리 지역에 있는 다른 학교들, 덜 유명한 학교들도 이 지리적 환경 덕에 제 학부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기회와 접근성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개인적인 네트워킹이 커리어에 끼치는 영향력이 큰 미국 취업 시장에서, 이러한 환경은 너무나도 특별하더라고요.

박사 학위를 하지만 학계 밖의 세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던 저에겐, 딱 걸맞는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탠퍼드 학생 채용 행사에 돈을 후원하는 단체 일부. 애플과 테슬라 같은 테크 기업, 몇몇 투자 회사, 그리고 정부 연구소들이 눈에 띈다.이미지 출처: Stanford Career Eduation
스탠퍼드 학생 채용 행사에 돈을 후원하는 단체 일부. 애플과 테슬라 같은 테크 기업, 몇몇 투자 회사, 그리고 정부 연구소들이 눈에 띈다.
이미지 출처: Stanford Career Eduation

하지만, 실리콘 밸리가, 스탠퍼드가 마냥 최고의 환경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지금 과거로 돌아가서 "물리학과 교수"가 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고르라면, 스탠퍼드에 진학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그 에너지는 굉장한 배움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기초 과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집중력을 흐트려놓을 때도 있었고, 다른 분야와 물리학계를 비교하다보면 불만과 시기 같은 감정의 원인이 될 때도 많았거든요. (그래서일까요? 스탠퍼드에는 물리학과에 소속되어있어도, 전통적인 의미의 물리학이 아니라 생명과학, 신경과학, 인공지능 등의 분야를 전공하는 박사 과정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또 다른 예로, 내가 관심 있는 커리어가 정부 기관과 관련된 일이라던가, 금융 관련 일이라던가 하는 경우엔, 워싱턴 DC 혹은 뉴욕 같은 동부 대도시의 학교들이 가지는 분명한 이점이 있을 거에요. 스탠퍼드라고 다들 테크 업계 커리어만 가지게 되는 건 아니고, 뉴욕이라고 모든 사람이 금융업계로 진출하는 건 아니지만, 위치와 환경에 따라 노출되는 기회와 정보의 종류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스탠퍼드가 아닌, 전통적인 물리학과 생활에 조금 더 온전히 집중하기 쉬운, 한적한 곳에서 학교를 다녔더라면, 제 커리어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타트업 문화나 테크 관련 소식은 좀 모르더라도, 더 많은 논문을 썼을지도, 어쩌면 진작에 졸업하고 지금쯤 포닥 과정을 하고 있었을지도요.

여러분은 어떤 곳에서 공부하셨나요? 학교 졸업 뒤엔 어떤 커리어를 꿈꾸고 있고, 또 어떤 커리어를 걷고 계신가요?

산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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