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씁쓸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고, 상황이 심각한 만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소식입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MIT, 코넬 대학교, 펜실베니아 대학교, 콜럼비아 대학교 의과대학, 워싱턴 대학교, 노스웨스턴 대학교, 에모리 대학교, 노트르담 대학교, 핏츠버그 대학교 등.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들어봤을법한 미국의 유명한 연구 중점 대학들입니다.
그리고, 모두 최근 교직원 고용 중단(hiring freeze)을 선언한 대학들입니다.
물론 학교마다 차이는 있었습니다. 교수직을 포함한 전체적인 고용을 중단하겠다고 한 학교들도 있고, 교수직은 예외로 둔 학교들도 있습니다. 신규 대학원생 입학 평가를 중단하거나 합격을 취소시킨 학교들도 있었고, 학생들만은 지킨 대학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위기에 놓인 것은 분명합니다.
왜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난 걸까요?
우선, 미국의 연구 중점 대학들의 연구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할 필요가 있겠네요. 미국 대학들의 연구비 중 상당 부분은, 연방 정부 기관에서 나옵니다. 가까운 미래에 상업화 될 가능성이 높은 공학계열 연구들은 사기업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나, 그 외에 기초 학문이나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연구들은 대부분 연방 정부에 의존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생명/의료 분야에 있어서는 미국 국립 보건원 (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 연구비가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제일 큰 규모입니다. NIH의 1년 예산은 거의 5백억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이고, 이 중 80% 이상이 대학교 같은 외부 연구 기관에 투자되고, 10% 정도가 NIH의 자체적인 연구 프로젝트에 사용됩니다. 그 외에도 미국 국립과학재단 (National Science Foundation, 이하 NSF) 연구 예산이 1년에 100억 달러 정도, 에너지부 산하의 과학부서의 연구 예산이 1년에 80억달러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예산은 비단 연구비를 받는 해당 연구실에게만 중요한 돈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대학의 연구실이 이런 정부 연구비를 받게 되면, 연구실이 아닌 대학 자체에서 연구비 일부를 취하게 됩니다. 이를 "간접 비용" (indirect cost) 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대학 자체의 운용을 위해 필요한 비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특정 연구실 소속이 아닌 직원 (행정, 법무 등), 도서관이나 IT부서 등의 공공 시설을 위함이죠.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자와 실험 자재만 필요한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서포트와 다양한 인프라가 필요하니, 어찌보면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구조입니다. 대부분의 유명한 연구 중점 대학의 경우, 이 수입이 대학 전체 예산에서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자료 출처: 각 대학교 웹사이트
NIH의 전체 연구비 중 이렇게 간접 비용으로 쓰이는 비율은 지난 몇년간 27-28%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최근 이러한 간접 비용을 비효율적인 세금 낭비라고 낙인 찍고, NIH 연구비에 있어서 간접 비용을 15%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연구 중점 대학에 지대한 예산 감축을 의미합니다. 스탠퍼드 기준, 이는 1년 예산이 약 1억 6천만 달러 정도 삭감되는 효과입니다. NSF 간접 비용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다른 연방 기관들도 곧 비슷한 상황에 놓일 지도 모릅니다.
대학들이 청구하는 간접 비용은 분식회계 같은 편법이나, 횡령 같은 범법 행위가 아닙니다. 연구를 계속하고 대학을 운용하기 위해 필요한 실제 비용이고, 지금의 미국 유명 대학들의 명성이 있게 해준 중요한 자금원입니다. 그 비율을 재고할 필요는 있을지 몰라도, 이렇게 아무런 검토와 이유 없는 간접 비용 삭감은, 수많은 대학들에게 재정적 충격만 안길 뿐입니다.
그리고, 정부의 대학 견제는 간접 비용 감축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정부 지원 연구비 외에 유명 미국 대학들의 수입원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또 다른 수입원은 기금을 투자해서 얻는 수익인데요. 유명 미국 대학들, 특히 사립대학들은 동문들의 기부와 학교의 다양한 사업으로 얻은 엄청난 액수의 기금을 유지하고 있고, 또 이를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자본 수익을 냅니다. 이 수익 중 일부는 다시 기금으로 돌아가 재투자되지만, 적잖은 금액이 학교의 운용을 위한 예산이 됩니다. 2024년 스탠퍼드 대학교 기준 약 400억 달러의 기금을 투자해서 약 8.4%의 수익을 냈고, 이 중 약 20억 달러 정도가 학교 운용에 쓰였습니다. 같은 해, 하버드 대학교는 500억 달러가 넘는 기금으로 9.6% 수익률을 달성했고, 이 중 약 24억 달러 정도를 학교 운용에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세금법은 비영리 대학이더라도, 기금 총액을 학생 수로 나눈 금액이 50만 달러가 넘는 사립 대학은 이런 투자 수익에 대해서 1.4%의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세금을 대폭 증세해야한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직 부통령인 JD Vance 는 상원의원이던 작년 12월, 기금이 100억 달러가 넘는 모든 사립 대학에 35% 의 투자세를 부과해야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 외에도 최근 들어 많은 공화당 의원들이 대학들의 기금 투자세를 10%, 21% 등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세금이 적용되는 대학들도 대폭 확대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예산에서 기금 수익의 비중이 큰 유명 대학들에 대한 압박인 셈이죠.
게다가, 정부는 여러 정치적인 핑계를 대며, 콜럼비아 대학교의 연구 예산을 4억 달러,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연구 예산을 8억 달러 취소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외에도, NIH 와 NSF 의 직원 다수가 별다른 이유 없이 해고되었고, 연방 교육부는 무려 직원의 50% 를 해고했습니다.
이 모든 정책은 대학에 대한 견제이며, 장기적으로는 학계 전반에 대한 공격입니다.
이러한 공격이 얼마나 계속될지, 정상화 되는 데에 얼마나 걸릴지 정말 걱정이네요. 학생분들과 학계에 종사하고 계신 교직원분들 모두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넘어갈 수 있길 응원합니다.
현 미국 정부는 왜 이런 정책을 펼치는 건지, 이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또 정리해보겠습니다.
단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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