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 다양한 미국 대학 이야기: 시골 v.s. 도시

뉴욕이라고 다 같은 뉴욕이 아니었다

2025.01.06 | 조회 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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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 LAB

실리콘 밸리 이공계 박사 부부가 보는 세상 이야기

지난 편에 이어, 미국 대학의 다양한 특성 중 특히 한국인 입장에서 잘 생각해보지 않는, 알기 어려운 측면을 주제로 선택했어요. 오늘은 미국이 얼마나 큰지, 그만큼 지역에 따라 얼마나 삶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다뤄보았습니다.

미국에선 흔히 "suburb" 이라고 부르는 지역을, 편의상 "시골"로 표현했습니다. 미국에 비하면 극도로 도시화된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이게 더 와닿는 표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전 뉴욕 주에서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뉴욕" 하면 자유의 여신상 또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맨해튼의 고층 빌딩들, 이런 화려한 모습을 떠올리시겠지만, 제가 학교를 다녔던 뉴욕 "주"는 전혀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뉴욕 주 면적은 대한민국의 1.4배 정도이고, 제가 학교를 다녔던 로체스터는 뉴욕 시티로부터 500km 이상 떨어져있었거든요.

뉴욕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흔히 말하는 뉴욕 "시"까지는 6시간 정도가 걸린다.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아이러니하게도 국경을 지나서 있는 3시간 거리의 토론토이다.

뉴욕 시와 그 인근을 제외하면, 뉴욕 주는 인구 수 50만명을 넘는 행정 구역이 하나도 없는 주입니다. 로체스터는 뉴욕 시보다는 미시건이나 위스콘신 주 같은 중부와 더 유사한 곳이고, 유학생을 제외하면 동양인은 거의 전무한 그런 시골이에요. 그런데 대학 원서를 쓰고, 로체스터 대학교 진학을 결정하고, 출국하기까지도, 정말 로체스터가 어떤 곳인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습니다. 미국에 가본 적 없는,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온 한국인에게 미국 시골에서의 삶은 그만큼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한국인 유학생 중에는, 음식 등의 문화적 다양성이 떨어지는 로체스터의 삶을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짜장면 한 그릇이 먹고 싶어서, 삼겹살과 소주가 그리워서 주말마다 몇시간씩 운전을 해 다른 지역으로 떠날 정도였으니까요. 대학 선택에 있어서 서열이나 명성만을 유일무이한 잣대로 들이댄다면 "공부하러 가는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 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환경적 요인 때문에 적응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이긴 했지만, 감사하게도 전 로체스터 대학교에서의 삶에 썩 괜찮게 적응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딱히 음식을 가리는 편도 아니었고, 한국 문화와 음식이 없는 것도 그냥저냥 참을만 했습니다. 오히려 할 게 없고 눈 많이 내리는 시골이라, 캠퍼스 내의 문화는 끈끈했거든요. 모두가 기숙사에 살고, 과 친구들끼리의 우정이 돈독했던 게 저와는 잘 맞았습니다. 어려운 과제가 있으면 모두가 함께 머리를 모았고, 시험이 끝나면 기숙사 방에 모여 다 같이 밤새 놀았습니다. 같은 전공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재미, 공부하는 환경의 중요성을 배웠고, "대학은 이런 곳이구나" 라고 느끼며, 학부 시절을 보냈습니다.

졸업을 앞둔 2017년 봄에 찍은 로체스터 대학교 전경. 오른쪽 뒷편에 보이는 중앙 도서관이 참 예뻤다.
졸업을 앞둔 2017년 봄에 찍은 로체스터 대학교 전경. 오른쪽 뒷편에 보이는 중앙 도서관이 참 예뻤다.

모든 미국 대학생의 삶이 이렇지 않다라는 걸 문득 느낀 건, 대학원에 지원하던 4학년 때였습니다. 마침 뉴욕 "시"에 방문 중이었고, 대학원 진학을 고려 중이던 뉴욕 대학교 (New York University, NYU) 교수님과 미팅이 잡혀 학교를 방문하게 됐었는데요. NYU는 "캠퍼스"라고 할 만한 지역이 따로 구분돼있지 않고, 맨해튼 시내 여기저기에 건물이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무작정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주소를 따라간 곳엔, 네모반듯한 건물이 있었습니다. 입구에 작게 박힌 학교 로고를 제외하면, 학교인지 회사 사무실인지 구분도 어려운 그런 건물이었습니다.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경비 직원이 저를 막아섰습니다. "시골"에서 온 저에겐, 수업을 들으러 가는 학생들, 교수와 미팅을 하러가는 학생들 한명 한명을 학생증을 확인하고 감시하는 경비 체계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NYU 학생들과 굳이 이야기해보지 않아도, "이곳에서의 대학 생활은 내 대학 생활과 많이 다르겠구나" 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뉴욕 대학교 캠퍼스 지도. 건물들이 대체로 모여있긴 하지만, 도시와의 명확한 경계는 없다.이미지 출처: 뉴욕 대학교 웹사이트
뉴욕 대학교 캠퍼스 지도. 건물들이 대체로 모여있긴 하지만, 도시와의 명확한 경계는 없다.
이미지 출처: 뉴욕 대학교 웹사이트

물론 대도시에서의 대학 생활은 다른 장점들이 있습니다. 문화적 다양성, 유명 기업들의 접근성, 졸업한 선배들과의 네트워킹 기회 등등이 있겠지요. 하지만 내향적인 성격인 저에게, 김치가 없어도 삶에 불만이 없던 저에게, 물리 공부 밖의 세상엔 전혀 관심이 없던 학부 시절 저에겐, 눈 내리는 로체스터가 더 좋은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경험 때문인지, 저는 유학을 고민하는 지인들에겐 꼭 개인의 성향과 맞는 학교를 찾으라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본인이 없는 게 없는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화려한 문화 생활과 다양한 인간 관계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조용하고 학구적인 소규모 모임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대학의 명성 만큼이나, 이러한 개인의 성향과 궁합이 중요하거든요.

여러분은 어떤 지역에서 유학 생활을 하셨나요? 어떤 지역에서의 유학 생활을 꿈꾸고 계신가요?

산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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