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파사드 도면 그리고, 밤에는 원두 볶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요즘 제가 계속 손이 가는 원두, 예가체프 얘기부터 시작해볼게요.
예가체프가 뭔데
예가체프(Yirgacheffe)는 에티오피아 남부에 있는 지역 이름이에요. 그 동네에서 나는 커피를 그냥 지역 이름 그대로 부르는 거죠. 우리가 "이천 쌀"이라고 부르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돼요.
에티오피아 자체가 커피의 발상지로 꼽히는 나라인데, 그 안에서도 예가체프는 고도가 높아요. 보통 1,700~2,200m. 이 고도가 중요한 이유는, 높을수록 밤낮 기온차가 크고 커피 열매가 천천히 익으면서 향과 산미가 진해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예가체프 하면 따라붙는 표현이 거의 정해져 있어요. 자스민 같은 꽃향, 시트러스나 베리류의 산미. 솔직히 처음엔 "커피에서 무슨 꽃향이 나" 싶었는데, 제대로 된 배치 마시고 나서 그 말이 과장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내추럴이냐 워시드냐 — 이게 진짜 맛을 가른다
같은 예가체프여도 어떻게 가공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커피가 돼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산지 이름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워시드(Washed)
커피 열매 껍질과 과육을 물로 씻어내고 씨앗(생두)만 발효·건조하는 방식이에요. 과육의 단맛이 덜 스며드는 대신, 잡미가 없고 산미와 향이 깔끔하게 떨어져요. 예가체프의 꽃향, 시트러스 산미가 제일 또렷하게 드러나는 게 보통 워시드예요.
내추럴(Natural)
껍질과 과육을 벗기지 않고 열매 통째로 건조시킨 다음 나중에 생두를 분리하는 방식이에요. 과육이 오래 붙어있는 동안 당분이 생두에 스며들어서, 발효된 과일향이나 묵직한 단맛이 강해져요. 대신 컨디션에 따라 발효취가 과하게 날 때도 있어서 호불호가 좀 갈려요.
저는 처음 배치는 항상 워시드로 접근해요. 원두 자체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서요. 내추럴은 그 다음에, "이 원두를 좀 더 과감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 시도하는 편이에요.
G1, G2, G3, G4 — 이건 맛이 아니라 결점두 등급이에요
여기서 많이들 오해하는 게, G1이 "제일 맛있는 등급"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정확히는 아니에요.
에티오피아 등급 체계는 생두 300g 안에 결점두(깨지거나 벌레 먹거나 덜 익은 콩)가 몇 개 섞였는지로 매겨요.
G1: 결점두 0~3개. 사실상 최상급 스페셜티 등급
G2: 결점두 4~12개
G3~G4: 결점두가 더 많고, 일반적으로 상업용 등급에 가까워짐
즉 등급은 품질 관리의 정밀도를 나타내는 거지, 맛의 방향성을 말해주는 건 아니에요. G1이라고 무조건 내 입에 맞는 것도 아니고, 워시드/내추럴 방식이 오히려 맛을 더 크게 좌우해요.
제가 원두 고를 때 보는 순서는 이래요:
가공방식 (워시드/내추럴) — 내가 원하는 맛의 방향
등급 (G1 위주로) — 최소한의 품질 보증
그 다음에야 향미 노트 참고
아리차는 또 뭔데 — 에티오피아 라벨링 이해하기
원두 봉투 보면 "예가체프 아리차", "예가체프 콩가" 이런 식으로 지역명 뒤에 낯선 단어가 하나 더 붙어있는 걸 본 적 있을 거예요. 저도 처음엔 이게 품종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이건 워싱 스테이션(가공소) 이름이에요.
에티오피아는 농장 단위가 아니라 여러 소농이 체리를 수확해서 근처 워싱 스테이션에 모아 공동으로 가공하는 구조가 많아요. 그래서 라벨링도 큰 지역 → 작은 워싱 스테이션 순으로 붙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예가체프 안에도:
아리차(Aricha) — 예가체프 내 유명 워싱 스테이션 중 하나. 화사한 산미와 단맛의 밸런스로 평가받는 곳
콩가(Konga)
게뎁(Gedeb)
첼첼레(Chelchele)
이런 식으로 같은 예가체프 안에서도 워싱 스테이션마다 미묘하게 캐릭터가 달라요. 고도, 토양, 그 스테이션의 발효/건조 노하우가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정리하면 라벨은 보통 이런 순서로 읽으면 돼요.
국가 → 지역(예가체프) → 워싱 스테이션(아리차) → 가공방식(워시드/내추럴) → 등급(G1)
사람들은 커피가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결코 어렵지 않고, 마시면서 즐기는 음료랍니다. 결국 하나씩 많이 마셔보는게 좋다고 생각하며, 사담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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