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안녕하세요, Die Kapitel 3장에 함께 하시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2026년 첫 리딩클럽은 '마티아스 글라스너 Matthias Glasner' 감독의 각본 <Sterben (Dying) > 을 함께 읽습니다.
'죽음' 이라는 묵직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가장 적나라한 삶의 풍경을 보여 줍니다. 각본을 직접 쓴 마티아스 감독 역시 여러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단순한 가족 드라마가 아닌, 감독 자신의 가장 사적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말해 왔는데요, 오늘 레터에는 감독이 직접 밝힌 창작 배경과 의도, 이 작품에 깔린 차갑고도 뜨거운 감독의 고백을 실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고도, 각본 전체를 읽지 않고도 감독이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이 가족은 내 가족이었다
- Matthias Glasner
"이 영화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순간 태어났습니다."
감독은 원래 가정을 꾸리거나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던, 오로지 영화에만 미쳐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아버지가 되면서 인생이 뒤집힙니다.
저는 가족을 원한 적도, 아이를 갖고 싶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하루 24시간 영화 생각만 했죠.
그러다 늦은 나이에 첫 아이가 생겼고 정말 행복했지만, 동시에 지옥이 시작되었습니다. 딸이 태어나고 3주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1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요.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신생아와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힘듭니다
잠도 못 자고, 끊임없이 지쳐있는데 부모님의 죽음까지 겹쳤죠. 그야말로 특별한(극한의)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어떻게든 나만의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무너질 것이라고요.
저에게 그 시간은 바로 글쓰기 였습니다.
이 영화는 제 부모님이 돌아가신 바로 그 순간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개인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피할 수 없었습니다. 톰은 저와 마찬가지로 지휘자가 되고 싶어 했던 인물이고, 이 가족의 역학 관계는 제 경험의 반영입니다.

"살기 위해 썼습니다."
감독이 이 방대한 시나리오를 집필한 장소는 놀랍게도 집 앞 1층에 있는, 분위기라곤 전혀 없는 체인 커피숍이었습니다.
재택근무요? 불가능했죠.
아파트를 나와 1층에 있는 체인 커피숍 구석에 앉았습니다. 정말 형편없는 곳이었어요. 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두 시간뿐일지도 몰랐으니까요.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유모차를 밀고, 아이 기저귀를 갈아야 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와인을 마시거나 분위기를 잡을 새도 없었습니다.
그냥 헤드폰을 끼고 미친 듯이 썼습니다.
원래는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쓰려던 것뿐,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 채 시작했습니다.
그 글쓰기는 저에게 일종의 '휴가'이자 '생존 메커니즘'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늦은 나이에 아버지가 된 경험 등 제 삶에서 일어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저는 써야만 했습니다.
저는 '급진적인 솔직함(Radical Honesty)'을 원했습니다.
그것이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말이죠.
규칙을 배반하다
감독은 각본을 쓸 당시 생계를 위해 상업적인 작업(광고, 드라마 등)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정형화된 스토리텔링에 지친 그는 이 각본에서만큼은 모든 규칙을 깨기로 결심합니다.
맥키(Robert McKee, 시나리오 작법의 권위자)가 가르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시나리오에서 금지되거나, 권장되지 않는 것들만 골라서 넣었죠. 그리고 저 자신에게 한 가지 규칙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구글 검색 금지
어떤 것도 찾아보거나 검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직 제가 경험했거나 상상한 것만 썼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자전적 소설'이죠. 이것은 실험이었고 도박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쫓기듯 쓰다 보니 두 달 만에 200페이지가 완성되어 있더군요.
현실과 허구의 경계: 펑크 정신과 실제 아버지의 옷
각본 속 캐릭터들은 감독의 자아와 실제 가족의 모습이 뒤섞여 있습니다. 특히 여동생 '엘렌'과 아버지의 묘사는 흥미롭습니다. 아버지 촬영 장면에 대해서는 "삶을 다시 체험하는 기묘한 굿판 같았다"고 회상하기도 합니다.
영화 속 지휘자 '톰'은 제 모습이 투영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여동생 '엘렌'은 허구의 인물이죠.
그녀는 '만약 내가 감독이 되지 않고 엇나갔다면 어땠을까?'를 보여주는 제 또 다른 자아입니다.
그녀의 음주와 자기 파괴적인 삶은 옛날 펑크(Punk)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촬영은 실제 부모님이 사시던 집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요양원에서 진행했습니다.
아버지 역의 배우는 실제 제 아버지가 입으셨던 옷을 그대로 입었죠. 이웃 주민들이 발코니에 나와서 '아버지가 돌아오신 것 같다'며 울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를 지켜낸 배우: 리시, 코리나 하르푸치
감독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각본에는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분노가 서려 있었지만, 대배우 '코리나 하르푸치(Corinna Harfouch)'가 그 균형을 잡았습니다.
리시역의 코리나 하르푸치는 제 어머니와 정말 닮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제 각본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계속해서 경고했죠.
'마티아스, 나는 이 여자를 이해해요.
하지만 당신의 불만으로부터 이 캐릭터를 지키고 싶어요.
당신이 본 진실만이 유일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제 어머니에게 마땅한 존엄성을 부여해주었습니다.
특히 식탁에서 아들과 대화하는 20분짜리 롱테이크 장면에서 그녀는 완벽했습니다.
우리는 리허설도 없이, 단 한 번의 테이크로 그 장면을 완성했습니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이토록 차갑고 적나라한 죽음의 이야기 끝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희망은 무엇일까요?
영화 속에서 작곡가는 '희망은 곡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이 곡을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모여 앉아 영화를 만들고,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대화한다는 것.
우리가 여전히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 하고 서로 연결되고 싶어 한다는 것.
바로 그 행위 자체에 유일한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각본을 쓴 마티아스 글라스너 감독은 자신의 가장 아픈 기억을 꺼내어 우리 앞에 놓았습니다. Sterben 의 각본을 함께 읽으며, 이번 모임에서 타인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삶과 가족을 다시금 돌아보는 깊이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럼 모임에서 만나요. :-)
Host & Editor 진경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