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ebe Buchclub-Mitglieder*innen,
드디어 함부르크에서 우리의 첫 모임을 갖게 되어 정말 설렙니다.
이번 모임의 주인공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입니다. 그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인생의 폭풍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 동반자였습니다. 모임을 시작하기 전 그의 삶과 작품, 그리고 그가 남긴 사유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려 합니다.
아직 책을 읽기 전인 분들은 헤세의 삶에 대해 미리 짧게 알아보며 책의 내용을 기대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 1. 어린 시절과 가족, 동양적 뿌리
헤세는 독일 남서부의 작은 도시 칼프(Calw) 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는 발트해권 에스토니아 출신의 선교사였고,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는 저명한 인도학자 헤르만 군데르트의 딸로, 인도에서 태어난 분이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양 문화와 영성의 세계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죠.
헤세는 6남매중 둘째로 특히 여동생 아델레와는 평생 깊은 우애를 나누었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마룰라는 그에게 오랫동안 상실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 2. 신학교의 억압과 첫 번째 위기
청소년기의 헤세는 부모의 바람대로 신학자의 길을 걷기 위해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엄격한 규율과 군대식 분위기에 숨이 막혀 결국 학교를 뛰쳐나옵니다.
“시인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절박함으로 방황하던 그는 요양과 정신병원 수용, 우울의 터널을 지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비록 정규 학업을 끝내진 못했지만, 이러한 경험은 그를 꺾지 않고, 오히려 작가로 향하는 길을 단단히 다지는 시간이 되었죠.
📚 3. 서점 직원에서 작가로
정신적 위기를 지나온 그는 학교 대신 현실의 길을 택했습니다.
칼프의 시계공장 견습을 거쳐 튀빙겐의 Heckenhauer 고서점에서 일하던 시절, 그는 낮에는 책을 팔고 밤에는 괴테, 니체, 노발리스, 횔덜린을 스스로 탐독하며 “서점에서 나는 세계문학의 모든 보물을 발견했다. 그것이 나의 대학이었다.” 이라는 고백을 남겼습니다.
이때 첫 시와 산문집을 발표했고, 바젤에서의 서점 직원으로 생활을 이어가다 1899년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한밤중 이후의 한 시간』을 발표한 뒤,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의 성공으로 마침내 전업 작가가 됩니다.

🌍 4. 전쟁과 시대의 폭풍 속에서
헤세의 생애는 20세기의 격동과 겹쳐 읽어야 온전히 보입니다.
1912년 독일 제국의 과열된 분위기를 등지고 스위스로 건너간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지식인 다수가 전쟁 열기에 휩쓸리던 흐름을 거스르며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 에 “오, 친구들이여, 이런 목소리가 아니다!” O Freunde, nicht diese Töne! 라는 제목의 글로 증오의 합창에 동참하지 말자고 호소합니다.
"나는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모든 나라의 예술가들과 시인들이 최소한 증오의 합창에 가담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는 적어도 서로를 향한 증오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
그 대가로 비국민이란 낙인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후로도 24편의 반전 에세이를 쓰고 전쟁포로 구호를 조직하는 등 침묵 대신 실천을 선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치 시대에 이르러서 헤세는 공개적 선동 대신 전략적 침묵과 실질적 연대로 저항을 지속합니다. 스위스 중립의 틀 안에서 반유대주의를 비판하고, 망명 문인과 박해받는 이들을 도우며, 금서가 된 작가들의 독서 목록을 널리 권했습니다. 공개 선언을 자제한 선택을 두고 논쟁도 있었지만, 아마도 독일 독자와 동료들을 보호하고 영향력을 지키기 위한 헤세의 판단이었을 겁니다.
🕊️ 5. 몬타뇰라로의 망명_고통의 끝에서 새로운 탄생
헤세가 몬타뇰라로 이주한 1919년은 그의 인생에서 거의 모든 것이 무너진 시기였습니다. 전쟁반대로 인한 조국과 친구 가족의 비난, 첫 부인의 정신질환, 아버지의 사망, 자신의 신경쇠약을 동시에 겪고 있었던 때였죠. 이 모든 위기를 피해 찾아간 곳이 바로 스위스 테신의 산마을 몬타뇰라였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마침내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자연, 고독, 사랑하는 사람과의 조화 속에서.”
이 자기 재건의 시기는 곧 그의 작품에 ‘영적 구원’과 ‘자기 발견’이라는 헤세 작품의 큰 핵심 주제를 낳게 됩니다. 몬타뇰라에서 쓴 첫 대작 『싯다르타』가 바로 이 변화의 상징입니다. 그는 인도에서 태어난 어머니의 뿌리, 어린 시절부터 접한 동양사상, 그리고 스스로의 방황을 결합해 “깨달음의 길은 교리나 지식이 아니라 개인의 체험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는 메시지를 작품에 싣습니다.
몬타뇰라에서 가장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된 작품 『유리알 유희』는 예술의 순수한 세계를 통해 전체주의 시대를 우회적으로 비판합니다. 폭력과 폭압의 시대에 “정신의 품위로 저항하는 인간상”을 소설을 통해 얘기합니다. 몬타뇰라에서 얻은 고독의 힘, 성찰의 습관, 정신의 자율성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이지요.
이 시기 이후 그의 문체는 한층 더 투명하고 명상적으로 변했습니다. 독자에게 받은 수많은 편지에 직접 답하고 에세이를 쓰며 “삶을 견디는 기쁨”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가끔 헤세의 문학이 철학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헤세의 깊은 사유와 고민 덕분이 아닐까요.
이 시절 헤세는 글 뿐 아니라 그림에도 몰두했습니다. 그는 자연을 ‘치유의 정원’으로 삼았고, 그림과 글을 통해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그의 수채화에는 테신 지방의 햇살, 정원, 집, 그리고 고요한 호수가 등장합니다. 자연은 그에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공간이었습니다.

🕯️ 6. 전후의 목소리, 책임과 치유
1946년, 전쟁이 끝난 직후 헤르만 헤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전쟁의 상흔으로 좌절하던 많은 독일인들은 그의 수상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헤세는 수많은 독일 독자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의 답장은 결코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에 끝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전쟁의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그 정권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헤세는 젊은 세대에게 자기 책임의 자각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평생 35,000통이 넘는 편지를 쓰며 낯선 이들의 고통에 귀 기울였습니다. 편지의 절반 이상은 직접 그린 수채화로 장식되어 있었고,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더 밝게 만들 수 있다면, 청하지 않아도 그렇게 해야 한다” 는 철학을 담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 7. 『삶을 견디는 기쁨』을 함께 읽으며
이번에 우리가 함께 읽는 『삶을 견디는 기쁨』 은 헤르만 헤세가 삶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통과한 뒤,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부단한 고민의 결과를 엮은 책입니다.
해답을 주기보다, 함께 생각하고 묵상하도록 이끄는 친구의 목소리에 가깝죠. 부드럽지만 단단하고, 고요하지만 강한 위로를 품고 있습니다.
“세상은 때로 무겁고 어둡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함부르크에서 여러분과 헤르만 헤세의 삶, 글에 대해 나누게 돼 정말 기쁩니다. 곧 모임에서 뵙겠습니다.
호스트 진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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