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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산 토큰화(Tokenization)를 둘러싼 시장의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거대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브로드리지(Broadridge)의 DLR 플랫폼이 매일 3,650억 달러 규모의 토큰화된 환매조건부채권(Repo)을 처리하며 백오피스 인프라의 혁신을 증명하고 있지만, 정작 주식 토큰화 시장은 1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쥐고 있죠. 심지어 현재 유통되는 토큰화 주식의 대부분은 실제 주주 권리가 전혀 없는, 블록체인 시대에 맞춰 포장만 바꾼 차액결제거래(CFD)에 불과합니다.
지난 12월에 미국 증권예탁결제원(DTCC)이 러셀 1000 지수 편입 종목과 국채 등을 토큰화하는 3년짜리 파일럿 프로그램을 승인받으며 이 두 현실을 연결하려 나선 바도 있습니다만. 과연 자산 토큰화는 기존 자본시장의 배관을 완전히 뜯어고칠 혁명일까요, 아니면 보이지 않는 시스템적 균열을 품은 채 굴러가는 또 다른 시한폭탄일까요?
결제 시스템의 역설
토큰화 찬양론자들이 간과하는 가장 큰 착각은 '빠른 결제가 무조건 안전하다'는 맹신입니다. DTCC가 연간 3,700조 달러(약 500경 원)의 증권 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핵심은 다자간 상계 시스템에 있죠. 총 1,000만 달러어치 거래를 한 참여자가 상계를 거치면 실제로는 50만 달러만 결제하면 되는데요. 자본시장을 굴러가게 만드는 필수적인 유동성 보존 장치죠.
지난 2024년 5월에 미국이 T+1(결제일 D+1) 결제를 도입했을 때 이 딜레마가 명확히 드러났죠. 결제 실패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청산 기금(NSCC) 요구액은 최대 29% 줄어들며 거래 상대방 리스크를 낮추는 듯 보였지만, 연말 인덱스 리밸런싱 기간에는 71억 달러의 유동성 부족 사태가 터졌습니다. 결제 주기가 짧아질수록 피크 시간대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증폭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겁니다.
이게 바로 블록체인 기반의 원자적 결제(즉시 결제)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상계 효과가 사라지면 장중 유동성 요구량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죠. 뉴욕 연방준비은행에서는 즉시 결제 환경에서는 이미 보유한 증권만 팔 수 있어 과거의 거래 정보가 노출되는 역선택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DTCC 역시 당장 원자적 결제로 넘어가는 대신 상계된 T+0 결제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한걸 보면, 현재의 기술력보다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유동성의 한계가 더 중요하다는거죠. 결국 즉시 결제의 리스크를 피하면서도 속도를 높이는 분자적 결제 같은 절충안이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 시장의 합의는 요원한 상태입니다.
애매한 소유권
현재 보면, 토큰화 주식은 규제, 디파이 연동, 기관급 수탁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놓친 기형적인 구조를 띠고 있죠. 로빈후드나 백드 파이낸스의 토큰은 사실 실제 주식이 아니라 가격만 추종하는 파생상품이나 채무 상품에 불과합니다.
투자자가 쥔 것은 주주 권리가 아니라 페이퍼컴퍼니(SPV)에 대한 청구권일 뿐이죠. 만약 SPV가 파산하면 토큰 보유자는 무담보 채권자로 전락해 투자금을 몽땅 날리게 되죠. 디트로이트 부동산 토큰화 프로젝트에서 토큰 보유자들이 법적 권리를 전혀 행사하지 못했던 사례도 있습니다만. 결국 온체인의 환상과 오프체인의 냉혹한 현실 사이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토큰화 시장이 커질 경우 연쇄적으로 폭발할 뇌관들도 곳곳에 널려 있죠. 토큰화 주식이 이더리움, 쏠라나 등 여러 체인에 흩어져 거래되면 유동성이 파편화되고 가격 발견 기능이 심각하게 망가지죠.
주말 거래 역시 거대한 시한폭탄인 셈이죠. 기초 자산인 주식 시장이 닫힌 주말 동안 토큰 시장에 대규모 매도세가 쏟아지면, 차익 거래가 불가능해 걷잡을 수 없는 폭락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죠. 여기에 디파이 생태계 내에서 외부 데이터(오라클) 오류로 인한 연쇄 청산까지 겹치면 단 몇 분 만에 시장 전체가 붕괴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렇다보니 현재 토큰화 시장의 승패는 기존 시스템의 배관에 블록체인을 얼마나 조용히 밀어 넣었는가로 판가름 나고 있죠. 매일 3,650억 달러를 처리하는 브로드리지나 25억 달러를 굴리는 블랙록의 BUIDL 펀드 모두 기존 인프라 위에 블록체인을 포장지처럼 씌워 대성공을 거둔 겁니다.
반면 기존 시스템을 블록체인으로 통째로 갈아엎으려던 시도들은 대실패로 진행됐죠. 호주증권거래소(ASX)가 청산 시스템을 교체하려다 7년의 시간과 2억 5,000만 달러만 허공에 날린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기존 배관을 무시하고 새로운 인프라만 고집하는 플랫폼들은 시장에서 철저히 도태되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 역시 2027년 제도 시행을 앞두고 이 승패의 공식을 철저히 벤치마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죠.
핵심은
결국 자산 토큰화의 진짜 가치는 주식 자체를 쪼개 파는 것이 아니라, 토큰화된 자산을 국경 없이 실시간 담보로 굴리는 담보의 유동화에 숨어 있죠.
하지만 경제적 이익만 취할 뿐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유령 주주의 양산은 기업 지배구조의 심각한 퇴행을 불러오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이 모든 거래를 최종적으로 결제할 믿을 수 있는 온체인 화폐조차 부재한 상황이죠.
자본시장의 인프라는 분명 진화하고 있지만, 수백 년간 다져진 법과 규제의 지층을 무시한 채 기술만으로 시스템을 갈아엎겠다는 속도전은 아직 이른 꿈이라는걸 시장이 증명하고 있는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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