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편지를 써요.
왜 오랜만이냐면요, 글을 쓰기엔 너무 힘들었어요.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구태여 설명하지 않으려 해요.
비가 많이 오니까요.
축축한 이야기 말고 다른 걸 해볼게요.
카페에서 창밖을 바라볼 때
1초 10프레임의 영화처럼
빗물은 서로 느리게 부딪치며 번쩍였고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저녁 식사를 기다리는 것도,
모두 그럭저럭
즐거웠던 것 같아요.
자격 있는 노래
상당히 자주 듣습니다. 다양하게 듣고, 많이 듣고. 들은 만큼 씁니다.
정말 아무런 노래도 듣기 힘들 때 생각난 듀코브니 아저씨.
이번에도 눈물나게 하는 건 'Mo'였고
'Sea of Tranquility'는 여전히 촌스럽지 않았어
내게 이 노래들을 추천해줬던
프랑스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한때 이름밖에 모르는 그 사람과 펜팔을 했었지
지금 다시 편지를 보내면 답장이 올까.
여름의 맛
비 오는 여름에
먹은 것들.
참외 샐러드가 무지 먹고 싶었다.
- 참외 속을 체에 걸러 즙을 내고 레몬즙에 올리브유에 후추 소금 한 꼬집
에그 타르트는 귀엽고 예뻐서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지만 맛은 없었고
선이 굵은 떡볶이는 양념이 내 취향이 아니었어.
그럼에도 모아보는 이유는,
이상하게도 내가 살아있다는 징표 같아서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간만에 해가 났던 날, 꾸질이와 마주쳤다
급하게 동네를 헤집고 다니신다
아주 꾸질한 털옷을 입은 채로
비 오는 날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외롭지 않을까,
이런 걱정들이 무용할 만큼
너희들은 나보다 잘 지내겠지만
한 달 만에 본 뭉치도 여전히 뭉치다웠어
어떤 답장
친구의 말처럼 “어쩔 줄 모르겠어 혼자 멍하니 앉아 눈가를 훔치는 나날들”이지.
문득 발신인은 외로운 자리라고 생각을 한다.
홀로 쓰는 일밖에 없으니까.
그럴 때, 내게,
답장이 필요하다.
열린 일기
세상엔 지론이 너무 많아
명언을 만들어내기란 참 쉽고
나를 가르치려는 목소리들이
듣기 싫다
허영 가득한 이야기들이 넘친다
견디기 힘들다
혹 나 역시 그러할까봐
돌아본다
내가 만든 것들이 모두
의미없는 말놀이에 불과한 것 같아
때로 위축이 되곤 하지
편지를 계속 쓸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까봐
겁이 난다
거짓도 허세도 섞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규칙을 깰 수 없어서
쓸 수 없을 땐
정말 쓸 수가 없다
내 안의 콘텐츠라기엔
궁핍하고 초라한 사람
한 명이 있을 뿐이야
말이 글이
얼마나 힘이 있으며
얼마나 살아있을까
콘스탄티노스 카바피는
기도하라고 했다
나의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그리고 길 위에서 나는 풍요로워졌으므로,
이타카에 도착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나는 그 말을 지금 얼마나 믿고 있나
이 편지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어쩌면 보고 싶은 당신과 내가
그 겨울에서 주고받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과 공유는 글쓰기를 지속할 큰 힘이 됩니다 :)
널리 널리 알려주시고, 하고 싶은 말도 전해주세요.

그럼 안녕. @applecream 혹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 말 걸어도 되는 사람.
from 다정함의 봉안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