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4일, 스물한 번째 편지

from 지우

2023.11.14 | 조회 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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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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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무나도 우울하지만 그래서 내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징징댈 수가 없다 나도 염치라는 걸 알기 때문에 어린 아이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 지금 내 마음을 그대로 뱉어낸다면 그건 기댐을 넘어 짐을 주는 것 그래도 너무 보고 싶은 날 안부도 과하면 안 되겠지요 늦은 편지의 미안함을 전하며

 

 

버러져서 나한테 올 수 있었던
버러져서 나한테 올 수 있었던

이건 마술, 예견된 과거, 절묘한 색의 조합, 손등에 나를 포갤 때, 가장 가볍고 값없는 것에 무거운 나를 쏟을 때, 틈새를 빠져나왔으나 더는 빠지지 않는 냄새, 쥐어짜도 바래버린 색, 그건 이 가을의 무늬

 

곧 떨어질 것입니다
곧 떨어질 것입니다

찬 공기에선 단내가 나고, 살결이 먼저 알아차린 한 주기의 반복, 벽돌이 바람에 구워질 때, 그림자에서 햇볕의 희소성을 보다, 슬플 수밖에 없어서 미련처럼 버리지 못한 겨울들, 가을의 잔여물이 차갑게 식는 노랗고 조용한 내 자리들

 

요즘은요,

가끔 

아주 가끔 글을 씁니다

머리엔 단어가 맴돌기에, 그 단어와 함께 붙일 말들을,

가장 적확한 말을, 거짓 없는 꾸밈말을 찾아내면, 금세 잊어버릴까 두려워서,

재빨리 적고 맙니다

그렇게 완성된 두 개의 풍경 속 내 말들입니다

 

가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팟캐스트 녹음을 하고

 

가끔 

아주 가끔

작은 해방감이라도 느끼고자

술을 마시고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고

 

매일

정말 매일

착실하게

이른 아침에 고요해지는 일

불평하지 않는 일

내 자리에 앉는 일

걱정하는 일

기대를 걸어보는 일

 

그런 일들로 

 

결국 나의 스물넷이 지나갔다

 

가을이니까 당연한 슬픔

 

당신은 모르면 좋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만날 때 

오직 기쁨만 이야기할 수 있게

 

다시 마주앉고 싶다는

말이지요

 

당신을 닮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으로

무엇을 채우려 했을까요

 

그런데,

 

때로는

당신 역시

누군가를 닮은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여태

누구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것일까요

 

어찌하든 나는

당신에게 나의 스물넷을

한번만 더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 성실한 증거를

당신 앞에서 밝을 수 있는 이 얼굴을 

당신과 나의 

올해의 징표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곧 부정할 수 없는 겨울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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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녕. @applecream 혹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 말 걸어도 되는 사람.

from 다정함의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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