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고 있는데도 엄마가 보고 싶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7살 때의 기억이다. 어릴 적 기억이 많이 사라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억은 비교적 생생하다. 나는 혼자 방에 있었고, 이유는 모르지만 갑자기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묵직하고 답답한 느낌이 엄마를 보고 싶을 때와 비슷해서 엄마를 보러 거실로 나갔다. 그렇게 계속 엄마를 지켜보는데도 여전히 같은 마음이 들었다. 너무 이상해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를 보고 있는데도 엄마가 보고 싶어"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야"라고 대답하셨다. 그래도 그 감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우울했던 것 같다. 다만 그때까지는 우울하다는 단어를 몰라서 그랬던 거 같다. 이게 내 인생에서 우울했던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그리고 같은 해에 아빠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아빠, 공룡의 실제 모습은 어떻게 아는 거야?" 아빠는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나의 질문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아니, 공룡의 뼈만 보고 어떻게 실제 모습을 아냐고" 아빠도 잘 모르셨는지 대답을 얼버무리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아빠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아빠가 나의 말을 이해 못했다고 생각해 답답해했었다. 아빠는 다 아는 줄 알았다.
그 시절의 나는 아날로그시계를 볼 줄 몰랐다. 나랑 세 살 차이가 나는 형은 곱하기를 이미 배웠기 때문에 당연히 시계를 볼 줄 알았다. 형은 내게 시계를 볼 줄 모른다며 놀렸다. 나는 볼 수 있다고 화냈고, 형은 전자시계를 가린 후 맞춰보라고 했다. 그리고 맞추지 못했고 자존심이 상했었다.
이렇게 지금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보면 성장한다는 것은 낯선 것들을 당연하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그리고 낯선 것보다 당연한 것의 비중이 많을 때 늙어가는 것 같다. 나는 늙기보다 성장을 택해야겠다.
*231124 신동딸이 스타벅스에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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