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진의 워드비트 | 아뽀키 - West Swing (Feat. E-40)

너무 빠르지도 그렇다고 촌스럽게 느리지도 않은 리듬은 어떤 기시감을 자극한다. 누군가는 ‘토끼춤’ 추기 좋은 리듬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빈티지 미디와 샘플링 뿐 아니라 보컬의 톤 앤 매너까지, 전반적으로 90년대의 히트곡 같은 인상을 주는 이 곡은 아뽀키의 신곡 “Weat Swing”이다.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워크맨과 브라운관 TV, 비치 바이크가 등장한다. 아뽀키는 헤어밴드(사실은 귀)와 금목걸이를 하고 ‘나시 티’와 멜빵 바지를 입고 달 표면에서 토끼춤을 춘다. 인상적인 건 음향이다. 요즘 노래처럼 빈틈없이 꽉 찬 느낌이 아니라 살짝 비어있는 인상의 보컬과 드럼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랩은 90년대부터 웨스트코스트 힙합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활동해 온 E-40가 맡았다. 

아뽀키는 이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존재다. 2019년 초부터 유튜브 채널에 커버 송을 올리다가 오리지널 데뷔곡 “Get It Out”을 발표한 게 2021년 2월이었고, 이후 지금까지 총 4곡의 싱글을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 K-pop 아티스트로 소개되기도 했고, 릴레이 댄스 콘텐츠도 찍었고, 라이브도 공개했다.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29만 명, 틱톡 팔로워는 400만 명을 넘겼다. 

어떤 사람들에게 아뽀키는 K-pop의 변방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아티스트로 여겨지거나, 혹은 음악과 게임 기술이 손잡은 결과물이거나, 어쩌면 새로운 차원의 음악 프로덕션의 사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어떤 존재냐가 아니다. 이 노래가 K-pop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 아뽀키가 비주얼적 실험과 함께 음악적 여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West Swing”은 그 여정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 곡은 198~90년대의 뉴잭스윙을 2022년에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또한 그 가사는 완전히 영어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마치 사랑노래처럼 들리지만 엄밀히 말해 아뽀키가 속한 세계와 ‘우리’가 속한 세계의 교차 편집 버전이다.

“West Swing”의 스토리는 아뽀키와 E-40가 각자 저쪽과 이쪽의 감각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아뽀키의 파트가 혼란과 꿈, 사랑과 호기심을 노래한다면 E-40의 랩은 ‘메타버스’와 ‘아뽀키’라는 단어를 분명하게 내뱉는다. 아뽀키가 메타버스에 존재한다면 그의 현실이야말로 메타버스가 되고, 아뽀키의 신곡이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E-40(와 우리)가 속한 세계야말로 가상현실이 되는데, 이러한 혼란을 혼란 그 자체로 보여준다는 점이야말로 “West Swing”이 (아뽀키의 음악 여정에서) 독특한 포지션이 되는 이유다. 요컨대 현실과 가상이 겹쳐지는 세계에서 존재와 대상은 교차하거나 전환된다. 

그런데 이것은 끝없이 순환하는 혼돈 그 자체는 아니다. 흔히 ‘세계관’이라는 것은 그 세계 밖의 사람들의 눈에는 일종의 ‘놀이’로 여겨지지만, 그 안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리얼한 세계 그 자체다. 이들에게 메타버스니 멀티버스니 하는 것은 새로 배우고 익혀야 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그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설,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의 캐릭터와 교감하는 순간 우리는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오가게 된다. 소위 '팬'에게는 두 개 이상의 세계가 존재하고, 이것은 아뽀키의 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아뽀키의 노래 실력에 감탄하고, 사랑을 고백하거나 노래 가사를 분석하는 유튜브 댓글창에서 메타버스를 경험한다. “West Swing”은 바로 그러한 감각의 결과이자 원인을 노래한다. 

따라서 이 곡이 오히려 90년대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오리지널리티를 재현하기 위해 공들인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2022년 현재의 관점에서 1992년의 세계는 그야말로 가상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똑바로 살아라], [보이즈 앤 후드], [사회에의 위협] 같은 1989~1993년 사이의 웨스트코스트를 배경으로 하는 ‘힙합’ 영화는 현재 진행형인 레거시의 기원을 보여주는 기록물인 동시에 21세기 미국 사회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품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거나 당시 스트릿 컬쳐를 지배하다시피 하며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에서 활약한 힙합 아티스트, 알앤비와 소울의 스타들 또한 모두 팝의 전설로 기록되었다. 

아뽀키의 “West Swing”은 마이클 잭슨, TLC, 테디 라일리, 베이비페이스 등과 함께 작업한 오디오 엔지니어이자 그래미 수상자인 데이브 웨이에게 믹싱을, 그래미 수상자인 ‘스털링사운드’ 랜디 메릴에게 마스터링을 맡겼다. 레코딩에는 당시 현장에서 사용되던 기기들이 활용되었는데, 그러한 노력과 시도 덕분에 베이스 라인이나 보컬의 톤은 다소 벙벙한 빈티지 감각으로 재현되었다.

한편 뮤직비디오에서 아뽀키는 돌체앤가바나의 정장과 타미힐피거의 저지를 입고 등장한다. 사운드에 있어서는 90년대의 유산을 최대한 재현하려고 하면서도, 스타일에 있어서는 과거의 유산을 재해석하는 노력이 동시에 이뤄지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게도, 충돌이 아니라 조화를 지향한다. 

공존이야말로 아뽀키의 핵심 가치다. 그 가치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사운드와 스타일, 메시지와 인터렉션이 이뤄진다. 팬들은 그를 실재하는 아티스트로 이해하고, 그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VV엔터테인먼트는 이 캐릭터에게 돌체앤가바나의 옷을 입힌다. 모기업인 에이펀 인터렉티브는 소니 뮤직 솔루션스(Sony Music Solutions)와 MOU를 맺는다. 

아뽀키의 오리지널 데뷔곡 “Get It Out”은 자연스러운 동작과 개성있는 목소리로 주목받았다. 그때 등장하는 가사가 “넌 충격 좀 받겠지”다. 하지만 그후 1년 사이 가상 아티스트들은 대거 늘었다. 이제는 자연스러운 동작이나 매끈한 그래픽 같은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다른 쪽의 ‘충격’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아뽀키의 “West Swing”은 이런 맥락과 문제의식의 결과라고 본다.

이 노래는 과거-현재-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을 3분 52초라는 러닝타임 위에 옮겨놓은 다음 천연덕스럽게 아뽀키의 다음 스테이지는 무엇일지 수수께끼를 내는 것 같다. 물론 답은 중요하지 않다. 이 노래 덕분에 아뽀키는 K-pop이나 ‘가상 아티스트’라는 범주에 발목잡히지 않은 채 어디로든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참고로 이 노래의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1달 만에 959만 회를 기록했다. “Get It Out”은 1년 동안 132만 회를 기록했다. 이 차이는 아뽀키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가리킨다. 사람들은 이제 그의 존재나 기원 대신, 앞으로 그가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 얘기하게 될 것이다. 새삼 아티스트는 대중의 기대를 배반할 때에야 비로소 존재론적 영향력을 가진다는 걸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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