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진의 스냅샷 | 아뽀키의 "Mood V5"에 대한 3개의 관점

TMI.FM의 DJ 차우진 | 말 많고 고독한 뉴스레터 대량 발행인. 주로 음악 산업과 콘텐츠 비즈니스, 크리에이터 경제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합니다. 

이 뉴스레터의 오랜 구독자라면 내가 '아뽀키'라는 가상 아티스트를 데뷔 때부터 주의 깊게 지켜본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아뽀키에 대해선 이미 두 개의 글을 썼는데 하나는 아뽀키를 제작하는 에이펀 인터랙티브가 어떻게 막대한 투자금을 받았는지에 대해 정리한 글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뽀키의 힙합 싱글을 통해 아뽀키라는 캐릭터가 어떤 방식으로 현실과 조우하는지를 살피는 리뷰였다.

이번에는 아뽀키의 새 싱글 "Mood V5"를 통해 이 가상 아티스트의 활동과 비전을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는 특히 3개의 관점이 필요하다. 하나는 음악, 또 하나는 비디오, 마지막으로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 세 개의 관점으로 아뽀키의 "Mood V5"를 살펴보자.

1. 음악: 내연기관의 이루지 못한 꿈과 낭만

아뽀키의 새 싱글은 "Mood V5"란 제목의 팝이다. 일단 제목을 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Mood V5"는 'V5의 감성(분위기)'이란 뜻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V5는 뭘까? 자동차 용어로 보통 'V형으로 구성된 5기통 엔진'을 말한다. V형 엔진은 실린더가 지그재그 형태로 배열되는데, 직렬 엔진은 주로 승용차에 적용되고 V형 엔진은 산업용이나 고성능 스포츠카, 고급 세단에 사용된다. 직렬형이든 V형이든 최근에는 주로 6기통 엔진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다시 말해 V5는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이너한 형식이다. 사실 상용화된 모델도 폭스바겐의 VR5 뿐인데, 매우 독특한 개성을 가진 희소성 높은 모델로 여겨지는 5기통 엔진 중에서도 V5 엔진은 사실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엔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요컨대 내연기관의 이루지 못한 꿈이랄까.

이런 배경으로 "Mood V5"를 들어보자. 이전 곡인 "West Swing"에 이은 두 번째 영어 곡이다. 지난 곡이 힙합을 베이스로 삼았다면 이번 곡은 부드러운 터치의 팝으로, 느릿한 비트와 킥 사운드 위로 꿈결같은 멜로디가 흐른다. 이 곡 위로 감미롭게 흐르는 아뽀키의 보컬이 전반적으로 느긋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쌓아 올린다. 작사와 작곡은 멜라니 폰타나(Melanie Fontana)와 린드그렌(Lindgren), 안드레아스 칼슨(Andreas Carlsson)이 참여했다.

멜라니 폰타나는 2015년 이후부터 브리트니 스피어스, 체인스모커스, AOA, BTS, TXT, 블랙핑크, 트와이스, 엔하이픈, 선미, 세븐틴 등의 곡에 참여한 싱어송라이터로 그의 배우자인 프로듀서 린드그렌(Michel "Lindgren" Schulz)과 함께 다수의 케이팝에 참여했다. 

안드레아스 칼슨은 1999년부터 활동한 프로듀서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백스트리트 보이즈, 엔싱크, 셀린 디온, 본 조비, 힐러리 더프 등의 히트곡을 만들었고 2015년 이후부터 샤이니, 보아, TXT, 엔하이픈, 뱀뱀 등의 아티스트와 케이팝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Mood V5"는 복잡하고 빠른 비트로 여러 장르가 결합되는 케이팝의 특성과는 거리를 둔다. 그렇다고 메인스트림 팝과 유사한 장르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길이도 2분 43초로 상대적으로 짧다. 마치 V5 엔진처럼, 주류의 유행을 따르는 대신 개성적인 사운드와 포지션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2. 비디오: 아뽀키와 아필라(AFEELA)의 교집합

한편 이 곡도 뮤직비디오가 매우 중요하다. 일단 가사를 보자. 곡의 무드처럼 매우 낭만적인 가사 중에 특히 "Can see a brand new world, it's so close", 그리고 "I'm breaking out, see me escape the old orbit"이란 부분이 귀에 박힌다.

"새로운 세상이 보여, 아주 가까이 있어" 그리고 "날 봐, 낡은 궤도를 벗어나는 걸"이란 가사가 묘사하는 미래적인 풍경과 짧은 백일몽 같은 낭만적인 분위기가 이 곡을 지배하는데, 뮤직비디오에서는 소니의 전기차 아필라(AFEELA)가 부드럽게 질주하며 이런 정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아필라는 [CES 2023]에서 소니 혼다 모빌리티(Sony Honda Mobility)가 발표한 전기차로 프로토타입 컨셉카로 먼저 공개되었다. 소니 혼다 모빌리티는 2022년 소니와 혼다가 합작해 설립한 회사로, 야스히데 미즈노 CEO는 자동차 사업 전략을 자율주행(autonomy), 증강(augmentation), 친밀감(affinity)으로 설명했다. 이런 가치 아래 소니 혼다 모빌리티는 미래의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정의하고, 아필라는 바로 그런 가치를 반영한 첫 전기차가 될 것이다. 2025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2025년은 노르웨이가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한 해다. 유럽연합은 2035년에, 미국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2030~40년 사이에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전면 중단하며 탄소제로 정책을 완료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10년 정도면 내연기관 자동차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예정이다. 아뽀키가 노래하는 '새로운 세상(brand new world)'은 그야말로 코 앞에 있다.

V5 엔진이 내연기관의 이루지 못한 꿈이라면, 그 꿈이 앞으로 구현될 가능성은 제로다. 대신 우리는 아직 세상에 등장하지 않은 전기차가 미래 도시를 질주하는 장면을 통해 완성되지 못한 기술과 낭만을 상상하게 된다. 매끈한 아필라의 속도감만큼 부드러운 비트와 이에 맞춰 움직이는 아뽀키의 자연스러운 동작, 표정, 질감에도 감탄하게 된다.

여러 면에서 아뽀키의 "Mood V5"는 20세기의 종말을 낭만적으로 노래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 미래지향적인 스무드 팝의 영상이 아필라의 홍보영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긴다. "Mood V5"는 어떤 구조에서 소니 혼다 모빌리티와 이런 콜라보레이션을 구현했을까? 아뽀키는 기존 음악가와 같은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는 게 아닐까?  

3. 비즈니스 모델: 케이팝과 같으면서도 다른

아뽀키의 소속사인 에이펀 인터렉티브는 실시간 랜더링 기술을 기반으로 음악과 캐릭터 사업을 전개하는 스타트업이다. 아뽀키(APOKI) 외에 르샤(LECHAT) 등의 캐릭터를 개발하고 있다. 모두 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2021년에는 CJ인베스트먼트(20억원), 컴퍼니케이파트너스(20억원), CJENM(60억원)으로부터 총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Mood V5"가 나온 한 달 뒤인 올 3월에는 신한자산운용으로부터 7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번 투자는 시리즈A와 시리즈B를 잇는 브릿지투자 형태다. 지난해에는 트위치의 공동 창업자 케빈 린으로부터 전략적 투자(SI)를 받기도 했다. 현재 가장 광범위한 영역에서 성과를 내는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아뽀키는 글로벌, 특히 미국 시장을 향해 꾸준히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2022년 9월, 소니 뮤직 솔루션스와 글로벌 에이전시 계약을 맺었고 유통은 소니 뮤직의 자회사인 ‘더 오차드(The Orchard)’가 맡고 있다. 오차드는 JYP 엔터테인먼트,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어비스 컴퍼니 등의 배급을 맡은 회사다.

소니 뮤직 솔루션스는 음악 마케팅과 유통 외에 서비스, 디자인, 제조, 물류, 음악 및 비디오 제품 판매(CD, DVD, 블루레이 등)를 위한 소니 뮤직의 원스톱 솔루션이다. 단지 음악 뿐 아니라 영화, 애니메이션과 게임 영역의 자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여기에는 전자상거래 사이트/앱 제작 및 관리를 포괄하는 디지털 솔루션과 이벤트 및 콘서트 관리, 팬클럽 운영, 녹음 스튜디오 관리, 뮤직비디오 관리 및 라이선스 개발, 권리 조정 및 뮤직비디오 사용 허가, 상표권의 상품 기획 등이 포함된다. 

아뽀키는 이미 타미 힐피거(Tommy Hilfiger B.V.),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 지샥(G-Shock)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하며 뮤직비디오와 인스타그램 등 SNS에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다. "Mood V5"의 뮤직비디오에 아필라가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것은 디올, 발렌티노, 셀린, 샤넬, 버버리, 생로랑, 구찌, 루이비통 등의 명품 브랜드가 BTS(지민, 슈가), 블랙핑크(지수, 제니, 로제, 리사), 뉴진스(민지, 하니, 혜인, 다니엘) 등 케이팝 음악가들과 협업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실제 제품이 아니라 그래픽 이미지라는 점이다. 

이런 활동을 단순 광고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에이펀이 3D 기술과 캐릭터 IP를 개발하는 콘텐츠 기획사라는 점에 주목한다. 기술력과 IP의 영향력이 결합될 때 실제 제품의 3D 이미지는 가상 자산(NFT)으로 확장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기존 케이팝 아티스트들과 아뽀키의 비슷한 듯 다른 지점이다. 

특히 전작 싱글 "West Swing"에는 소니의 워크맨이 핵심 이미지로 등장했다. 90년대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오리지널리티를 지향하는 영어 싱글과 80년대 중반에 절정을 이룬 워크맨 이미지의 조합은 첨단 기술에 20세기의 향수를 더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남겼다.

"Mood V5"도 마찬가지다. 미완성으로 남은 내연기관의 향수를 최첨단의 전기 자동차 이미지에 덧댄다. 아뽀키의 비전 혹은 독특함은 바로 이런 조합에 있을 것이다. 가상 캐릭터가 가지는 미래적인 이미지(아뽀키는 외계에서 지구로 온 토끼라는 설정이다)는 컨셉으로 남고 실제 콘텐츠에는 20세기의 향수와 최첨단의 이미지가 결합된다. 이런 정서적인 충돌이 아뽀키를 좀 더 실제적인 캐릭터로 느끼게 만든다. 

4. 도전: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연결

최근 1~2년 사이에 가상 아티스트가 대거 등장했다. 걸그룹, 보이그룹을 막론하고 다양한 포맷이 실험된다. 그런데 가상 아티스트는 본질적으로 실제 아티스트와는 다른 한계를 가진다. 바로 콘서트와 같은 오프라인 이벤트다. 실제 아티스트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공연'은 가상 아티스트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장애물이 된다. 

콘서트가 불가능하다는 문제는 지속가능성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음악 산업에서 콘서트는 '음악가'와 '음악'이라는 비즈니스 자산을 수익화 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여기에는 유료 공연 뿐 아니라 각종 행사와 이벤트도 포함된다. 적당한 규모의 팬이 확보되면 이 팬덤을 기반으로 팬 사인회, 행사, 콘서트 등의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가상 아티스트는 이러한 오프라인 수익모델을 포기해야 한다. 대신 오프라인 수익을 대체할 만한 다른 모델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 가상 아티스트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새로운 도전이다. 가상 아티스트가 음악계에서 활동한다고 해도 그 기획사를 음악 회사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완전히 다른 게임을 벌이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 아뽀키를 이해하기 위해 음악과 뮤직비디오 외에 수익모델까지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실제 음악가와 기획사에게도 비즈니스 모델은 중요하지만, 가상 아티스트에게 비즈니스 모델은 정체성과 존립을 위해서 중요하다. 아뽀키의 활동이 음악업계 뿐 아니라 콘텐츠 업계 전반에 영감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나로서는 아뽀키가 과연 공연이라는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구현할 수 있을지도 매우 궁금하다. 그때가 되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DJ 차우진 | dj@tmi.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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