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서의 사적 리뷰(2) | 드림캐쳐의 7년 반

매주 수요일은 덕질 경험기부터 음악/영화/웹툰 리뷰에 이르기까지, 저의 동료들이 쓰는 아티클이 실립니다. 오늘은 음악의 안과 밖에 대해 쓰는 랜디 서의 음악 리뷰에요. 걸그룹 드림캐쳐에 대한 글입니다. 험난한 시장에서 뼈를 깍는 피보팅을 하고, 차별화에 집중하고, 글로벌 시장부터 공략하면서 신뢰로 다져진 팬덤을 얻었다는 점에서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는 1인 기업가, 스타트업, 크리에이터 모두에게 영감을 줄 것 같습니다. 

2022년 4월은 드림캐쳐에게 특별한 달이었다. 정규 2집 앨범 [Apocalypse : Save Us]로 오랜만에 전멤버가 모였고, 지난 [Dystopia](인터넷과 언어폭력) 시리즈를 잇는 새로운 주제 [Apocalypse](환경 위기)를 소개했다. 4월 20일에는 케이블 채널 MBC M의 [쇼챔피언]에서 드디어 국내 음악방송 첫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은 4월 26일 SBS MTV [더쇼] 1위가 추가 되었다)

데뷔한지 1924일 (5년 3개월 6일)만으로, 역대 케이팝 그룹 중 최장기간 기록이다. 드림캐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그룹 밍스(MINX)를 기준으로 하면 2772일 만이다. 빠르게 스타덤에 오르거나 빠르게 사라지는 케이팝 시장 속에서 만 5년, 최대 7년 반이 넘는 시간을 버티는 팀은 극히 드물다. 드림캐쳐는 정글 같은 케이팝 씬에서 자기 영역을 주장하고, 점유하고, 지켜냈다.

드림캐쳐는 2014년 해피페이스 엔터테인먼트(현 드림캐쳐 컴퍼니)에서 데뷔한 걸그룹 밍스가 기존의 5인 멤버에 2인을 추가하고 개편해 재데뷔하며 탄생했다. 차우진님은 4월 23일 뉴스레터에서 이 과정을 스타트업계의 ‘피보팅’에 빗댔는데,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핵심은 유지한 채 전략을 완전히 새로 짜서 방향 전환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제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데뷔 기회를 잡는 아이돌이 적지 않지만, 팀이 통째로 재데뷔를 해낸다는 건 드림캐쳐가 데뷔한 2017년에도, 시간이 흐른 지금도 흔치 않은 케이스다.

이들의 피보팅이 좀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팀 이름과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교체했기 때문인 것 같다. 보통은 팀 이름을 유지한 채로, 그러니까 브랜드는 바꾸지 않은 채로 콘텐츠를 바꾼다. 변화가 팬들로부터 맥락 있는 성장으로 인식 되면 반전의 발판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기껏 쌓아온 경력으로부터 이탈하는 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리스크를 안고도 드림캐쳐는 도전을 강행했다. 한번 새로이 정한 방향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것도 큰 모험이었다.

이들은  2017년 "Chase Me"로 데뷔한 이래 하드록 혹은 메탈 인플루언스를 품은 케이팝이라는 독특한 음악적 정체성을 쭉 고수해왔다. 파워풀한 군무와 날카로운 라이브 가창, 상징으로 가득한 고딕풍 뮤직비디오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세계관' 역시 드림캐쳐를 대표하는 요소들이다.

돌아보면 케이팝 씬에서 록 사운드가 주류가 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팝펑크의 재유행이 케이팝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SM 엔터테인먼트가 H.O.T.나 동방신기 등을 통해 일본의 198~90년대 비주얼계 록을 연상 시키는 음악적 요소나 고딕풍의 콘셉트를 소개한 일은 다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씬 전반으로 퍼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이 회사만 하는 독특한 어떤 것, 일명 'SMP(SM Music Performance)' 음악의 바탕으로만 남았다.

케이팝 음악을 이루는 절대 다수는 아무래도 전세계 팝에 큰 영향을 끼치는 미국이나 유럽 시장의 강자, 힙합이나 EDM이었다. 특히 드림캐쳐가 데뷔한 2017년은 위너의 "Really Really" 등 트로피컬 하우스풍 팝이 급부상하며 EDM 영향 팝이 강세를 더해가던 해였다. 어두운 하드록 콘셉트의 걸그룹은 독특함으로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이런 도전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누구도 점치기 어려웠다.

데뷔 당시 이들은 일본의 베이비메탈(BABYMETAL)에 자주 비교 되었는데, 베이비메탈이 당시까지 록이나 메탈을 내세운 장르 아이돌 중에는 가장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베이비메탈이 전세계적으로 각광 받은 데엔 이 그룹의 백밴드인 카미밴드의 노련함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멤버들과 늘 함께 한 무대에 올라 라이브 연주를 들려준 덕에 베이비메탈은 ‘소녀 아이돌이 프론트우먼 역할을 하는 어엿한 메탈 밴드’의 포지션을 가져갈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드림캐쳐는 베이비메탈, 혹은 카미밴드만큼 본격적인 메탈을 들려주는 팀은 아니었다. 데뷔 초의 이런 비교 구도는 드림캐쳐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부터도 드림캐쳐는 자신들이 하드록의 요소를 품은 케이팝 그룹이라 소개하며 케이팝에 방점을 찍었다. 본인들의 강점은 케이팝스러운 라이브와 군무임을 강조해왔고, 실제 무대에서도 이런 경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당시에는 베이비메탈보다 메탈 장르의 ‘진정성’으로부터 거리가 있는 이들의 미진한 설명처럼 비칠 소산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 말이 드림캐쳐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드림캐쳐와 데뷔 초부터 함께 한 프로듀서 Ollounder와 LEEZ는 디스토션 기타나 빠른 더블킥 드럼 등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는 요소들을 드림캐쳐가 춤출 수 있는 댄스팝에 때로는 더하고 때로는 덜어가며 실험을 거듭해왔다.

[킹스레이드] 같은 글로벌 판타지 게임이나 서브컬쳐 미디어와 합작한 것도 영역을 공고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2003년 영화 [데어데블]의 사운드트랙으로 사랑 받은 에반에센스의 "Bring Me To Life" 같은 곡이 같은 장르 중에도 비교적 히트곡이 되어 다음 10년과 20년까지 살아남았음을 생각했을 때 이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대다수의 아이돌이 주류 사운드 지평 속에서 치열하게 싸울 때 드림캐쳐는 자기 영역을 빠르게 선점했고 깃발을 꽂았다. 씬 전체로 보면 작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얻은 영역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도 드림캐쳐 같은 아이돌은 드림캐쳐 뿐이다. 마침 록 인플루언스 팝 유행이 제대로 돌아온 케이팝 씬에서 이제 누군가 메탈의 요소를 곁들인 곡을  발표한다면 대부분의 리스너는 피할 수 없이 드림캐쳐를 함께 떠올릴 것이다. 영역의 선점과 점유 효과다.

드림캐쳐는 차근차근 성장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들은 인접한 서브컬쳐를 사랑하던 해외의 팬들을 먼저 불러모으며 지지를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공고한 커리어를 쌓았다. 무거운 음악과는 상반 되는 호탕한 유머 감각이나 멤버 간의 폭닥폭닥한 우정도 팬들이 좋아하는 요소다. 이들은 꽤 오래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사랑 받는 아이돌의 대표 주자였다. 올해 여름에는 스페인에서 열리는 [프리마베라 사운드 페스티벌] 출연도 예약 되어있다. 이번 "MAISON"의 성취가 이들의 국내 인지도 상승의 신호탄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드림캐쳐라는 이름으로 일관된 카탈로그를 만들어온 것은 이들의 팬 인썸니아에게는 ‘이런 음악을 들으려면 드림캐쳐로 가면 된다’는 신뢰의 증표이자 자부심의 원천으로 기능한다. 디스코그래피의 다양함은 자본으로 커버할 수 있지만, 디스코그래피의 꾸준함은 오로지 시간으로만 채울 수 있다. 드림캐쳐는 후자를 해낸 드문 그룹이다. 이들의 첫 1위에 유독 큰 축하를 보내고 싶은 이유다. | 랜디 서 / 대중음악 해설가

※ 수요일 코너 안내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4명의 필자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월 1회 연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 주기나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답니다~;;;)

1) 핑크블러드의 덕후 마음: 덕후 마음은 미지의 신세계...? 요즘 덕질은 '포카'가 핵심인데, 그걸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보다 이 판에 막 빠져든 사람의 기쁨과 슬픔이 궁금하지 않나요? '핑크블러드'가 그런 얘기를 씁니다.

2) 랜디 서의 음악 리뷰: 입체적인 음악 감상을 위한 가이드. '시사인'과 '위버스 매거진', '아이돌로지'에 글을 쓰고, 저와는 '360리뷰'를 진행한 랜디 서 평론가가 주목하는 싱글/앨범 리뷰입니다.

3) 임희윤의 북유럽 가이드: 어디가서 아는 체 하기 좋은 이야기. 동아일보 임희윤 기자가 쓰는 북유럽 음악 가이드입니다. 북유럽의 여러 장르부터 앨범 아트웍에 이르는 광범위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4) 강남규의 다시 보기: 언제나 '공동체'는 중요합니다. 콘텐츠든 비즈니스든 결국 함께 사는 문제니까요.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 강남규님이 쓰는 영화/드라마/웹툰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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