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J 랜디 서 | 아이즈원을 돌아보다

🎧DJ 랜디 서 | 대중음악의 여성들은 아티스트로서, 제작자로서 혹은 팬으로서 다양하게 활동합니다. [랜디 서의 사적 리뷰]는 국내외 여성 아티스트의 음악을 소개하고, 거기서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순간을 짚어봅니다. 

아이즈원이 흩어진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아이즈원이 그립다. 멤버 대부분이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소속사마다 방침이 조금씩 다른 것 같긴 하지만, 대부분 멤버들은 방송이나 SNS를 통해 여전한 사이임을 내비치고 있다. 그래서 자연히 함께 했던 모습을 더 그리워하게 된다.

아이즈원을 보면 고등학교 동창들 같다. 시한이 있었던 활동기는 마치 여고 시절 같고, 지금은 졸업하고 각자 할 일을 찾아가고 있는 사회 초년생들을 보는 느낌이다. 세 명의 일본인 멤버가 있었던 점도 마치 자매 학교의 교환 학생 같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각자가 나름의 인지도를 얻고 ‘잘 되고’ 있기에 이들이 모여 있던 아이즈원이라는 팀의 아우라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졸업생의 레거시가 학교의 이름값을 높이듯이 말이다.

아이즈원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프로젝트 그룹 중에서도 유달리 독특한 팀 자체의 캐릭터가 있었다. 이는 현재의 케이팝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혹은 그 영향에 보조했다. 이름은 같았지만 긴 시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온 한국과 일본 아이돌의 본격적인 만남이었고, 거기에서 발생한 특별한 화학 작용이 있었다.

아이즈원의 음악

아이즈원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화려하면서도 빠르고 가벼웠다. 눈 깜짝할 새 스쳐지나가는 요정의 꿈 같았다. 이 경향은 최현준과 김승수가 작곡하고 프리마인드의 채다솜이 안무를 맡은 두 번째 타이틀곡 ‘Violeta’를 거쳐 작사가 서지음이 가세한 세 번째 타이틀곡 ‘Fiesta’에서 완성 되었고 ‘Panorama’로 이어졌다. ‘Fiesta’의 경우 지금도 멤버들이 방송에서 종종 이 곡의 안무를 선보이고는 하니 이를 아이즈원의 대표곡이라 불러도 되겠다. 120대 정도의 bpm으로 당시 나온 케이팝과 비교해 특별히 빠른 편은 아닌데, 이 곡은 유독 다른 노래들보다 빠르다는 인상이 있었다.

화려하면서 빠르고 가벼운 이미지의 음악은 2010년대 일본에서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떠오른 제이팝 신진 아티스트들의 음악의 특징이기도 했다. 지금은 요아소비 (YOASOBI) 같은 밴드가 한국 음악 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듣는 사람만 듣는 마이너한 취향이었다. 왜 이렇게 화려하고 빠르고 가벼운 특징이 생겼는지에 대해선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큰 이유는 이들이 ‘오타쿠’ 서브 컬처 영향권의 ‘귀여운 전자음악’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일 거라 짐작한다.

목소리 전자악기 ‘보컬로이드’로 언제든 귀여운 목소리를 불러낼 수 있고, 사람보다 빠른 연주가 가능하며, 환각처럼 끝없는 고양감을 지향하는 일본 서브 컬처계의 음악은 ‘카게로우 프로젝트’처럼 현실과 이세계를 오가는 SF 세계관 등과 얽혀 2010년 일본 웹에서 하나의 조류를 이뤘다. 아이즈원이 이런 음악을 구체적으로 따라한 흔석은 거의 없다. 그러나 AKB48 (이하 AKB) 사단으로 오래 활동한 일본인 멤버들의 참여는 귀여운 목소리 등으로 당대 일본 서브 컬쳐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이식해왔고, 아이즈원의 이미지에도 자연스럽게 달라붙어 아이즈원 음악을 보통의 케이팝과는 다르게 느껴지게끔 했다. 이 느낌에 익숙해진 한국의 청자들이 지금 제이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청자층으로 연결됐을 가능성도 있다.

인트로를 여는 종소리 같은 플럭 신스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요정들의 춤곡 그 시작을 알린다. 여기서부터 아이즈원 특유의 꽃잎 같은 가벼운 무게감이 곡 전체의 무드를 결정한다. 150cm 신장의 야부키 나코와 170cm대의 안유진과 장원영 등이 한 팀을 이루는 열 두 명의 대인원 그룹이나, 멤버들은 음악 속에서 신속하고 오차 없이 움직이며 흩날리는 꽃가루 같은 이미지를 전달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들쑥날쑥한 키는 오히려 꽃다발의 조형적 다이나믹처럼 기능했다. 멤버가 많기 때문에 보컬 파트의 전환도 빠르게 움직였다. 목소리가 바뀌는 순간들이 마치 영상 편집의 몽타쥬 기법처럼 기능해 긴박감을 더한다.

탑라인은 시종일관 정박에서 벗어나 듣는 사람을 재촉한다. 첫 소절부터 이미 “때가” “오랜” “기다림” 같은 당김음으로 한 단어가 채 끝나기 전에 다음 음절이 와서 붙는다. 곡이 진행될수록 “(아침)에게 말해” “(오직) 나를 위한”처럼 16분 음표 진행이 계속 등장한다. 4박일 때 125 bpm 정도면 그렇게 빠르지 않지만, 연달아 내달리는 16분 음표을 듣고 있자면 마치 반박자인 8분 음표가 표준인 것처럼 느껴지고, 그럼 몸으로 느끼는 bpm은 두 배 빠른 250이 된다. 물론 정말로 250 bpm은 아니니 완연한 스피드코어 EDM 같지는 않지만서도, 가요곡치고는 굉장히 빠른 체감 속도다.

프리코러스에 처음 등장하는 브라스 신스는 짧은 스타카토로 치고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갑작스런 긴장감을 부어넣는다. “축 / 제 / 는”에서는 아예 멜로디와 동시에 타격한다. 아이즈원에는 미성에 박자감이 좋은 보컬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는데, 이 역시 이들 음악을 가볍고 투명하면서 속도감 있게 느껴지게끔 했다. 강한 브라스 신스에 밀리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다 끝음을 던지듯 처리해 강조한 예나의 “끝나지 않는 / 이건 Climax” 파트가 좋은 예다. 비록 코러스까지 가는 빌드업은 예상이 가능한 빅룸 EDM 스타일이고 이 점이 발매 당시에는 가장 큰 비판을 받았지만, 불꽃처럼 높은 음으로 터지는 후렴이 좋아서 큰 단점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태양을 꾹 참킨) 채영원토록” 처럼 의미 단위로는 띄어써야 마땅하나 음표로는 다닥다닥 붙은 단어들이 타이트한 느낌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가사는 즐겁지만 비장미도 있다. ‘끝나지 않을 영원한 축제’라는 주제는 시한이 정해진 프로젝트 그룹이 부르기에 아이러니한 동시에 ‘우리가 축제라고 마음 먹으면 축제일 거야’ 하는 화자의 의지가 있다. 전에 TMI.FM에 실은 칼럼에서 말했듯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이중 여성화(double-feminization)의 영향 아래 있다. ‘어릴 수록 좋다’는 기분 나쁜 명제가 통용되는 산업이기도 하다. (아이즈원 역시 그룹 결성 단계에서 [프듀] 역대 최연소 센터가 선발 되는 등 이 명제를 그대로 따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일본 아이돌은 연습 단계가 짧거나 거의 없기 때문에 한국보다 데뷔는 더 이르고, 은퇴도 이르다. 그렇기에 일본인 멤버 야부키 나코가 부른 “좋을 때란 것 그것 역시 내가 정해” 라는 라인은 더욱 선언적으로 들린다. 이러한 가사는 우주소녀의 ‘비밀이야’나 에이프릴의 ‘봄의 나라 이야기’ 등에서 유려하면서 멜로우한 마이너 곡을 여러 번 선보인 작곡가 최현준의 멜로디와 결합되어 폭발적인 설득력을 보여주었다. ‘Fiesta’는 아이즈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노래다.

한국과 일본, 아이돌의 ‘실력’

엠넷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 [프로듀스101] 시리즈(이하 [프듀])는 인기 투표로 참가자를 줄세워 그 중 열 두 명을 한 팀으로 데뷔 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일본 아이돌 AKB의 ‘총선거’ 시스템과 유사했다. [프로듀스48]로 [프듀]와 AKB가 아예 협업을 발표했을 때엔 기대와 염려가 공존했다. 일본 문화가 국내로 수입되어 오는 장면은 거의 항상 그랬다. 일본은 20세기 한국을 점령하고 식민 지배한 과거의 제국주의국이고, 납득 가능한 사죄를 건너뛴 채 지금까지 (잠시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제국주의에 호의적인 우파 정권을 유지해왔다.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한국보다 훨씬 먼저 큰 성장을 이루었고, 이를 기반으로 화려한 문화를 만들어 오기도 했다. 한국이 일본 문화를 수입해올 때는 언제나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환영의 인력과 문화적 지배를 주의하려는 반발력이 동시에 작용했다.

아이돌은 2010년대 한국이 일본과 비교해 드디어 자신 있게 비교 우위라고 여긴 무언가였다. 한국과 일본의 아이돌은 90년대 이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후발 주자였던 한국은 내수 시장이 MP3의 등장 이후 폭삭 주저앉으며 2000년대부터 새로운 시장을 찾아 해외로 향했다. 음악, 퍼포먼스, 뮤직비디오 등의 콘텐츠도 첨단을 받아들이며 ‘세계화’ 했다. 내수 시장의 충분한 구매력 탓에 바깥을 모색할 이유가 적었던 일본은 콘텐츠도 내수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있었다. 일본은 이미 2010년대 초반 카라와 소녀시대 등 3차 한류가 일 정도로 케이팝 아이돌에 긍정적이었다. 반면 한국 웹에서 일본 아이돌은 마이너한 취향이었다. 2010년대 후반이면 이미 일본 아이돌의 음악이나 무대를 우스꽝스럽게 여기며 놀리는 밈이 여럿 퍼져 있을 때이기도 했다.

일본의 아이돌 장르는 본래 80년대까지는 재능과 자본이 모이는 치열한 시장이었지만, 세기말을 거치면서 다른 모습으로 재정립되었다. 80년대 초까지의 이상적인 아이돌이란 ‘노래를 잘 하는 직업인’이라는 원형에 귀여운 외모, 팬서비스, 응원하고 싶어 지는 성격이나 개인 서사 등, 매력적인 개인에 대한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부수적 요소가 덧붙은 형태였다. 그러나 90년대부터는 이렇게 부수적이라 여겨진 요소들이 아예 아이돌의 에센스가 되었다. 사람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어갔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구분하는 인식은 갈수록 뚜렷해져, 아이돌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아티스트’형 가수에 비해 좀 진부해도 괜찮은 것이 되어갔다. 그래도 잘 팔렸고 그 편이 오히려 아이돌답다고 평가 받았다.

한국에도 역시 아이돌과 ‘아티스트’ 구분이 있다. 일본과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이상적인 아이돌은 ‘직업인으로서의 가수’라는 주요 가치 뿐 아니라 부수적인 매력 요소를 모두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아이돌이 후자에 집중하며 전자를 과감히 버렸다면, 한국의 아이돌은 양자가 모두 평가 기준으로 작용한다. (물론 노래를 잘 해도 아이돌 적인 매력이 없으면 좋은 아이돌로 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후자가 좀 더 에센스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현재는 아이돌에게 요구 되는 훌륭한 가수의 기준이 노래 뿐 아니라 랩이나 댄스 퍼포먼스, 싱어송라이팅까지 확장된 상태다. 한국과 일본 모두 이 영역을 ‘실력’이라 부른다. ‘실력’ 있으면서 부수적인 매력도 뛰어난 한국의 아이돌들은 한국이나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 실력

[프로듀스48]이 시작 되고, 엠넷은 양국 아이돌(한국의 경우 연습생)의 ‘실력’ 차이에 초점을 맞췄다. 앞서 말한 배경 탓에 한국 아이돌(연습생)은 데뷔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실력’이 없어도 되는 생태계에서 살아온 일본의 아이돌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이런 스토리가 일종의 문화적 복수극 시나리오처럼 비쳤을 것이다. 아이돌의 ‘실력’에서만큼은 한국이 일본을 능가했다는 것은 곧 한국이 일본을 문화적으로 추월했다는 통쾌함으로 번역 되었다. 일본 아이돌 산업계와의 협업에 우려 섞인 질책을 받았던 엠넷의 입장으로서는 이런 ‘국뽕’ 프레임이 반대 의견을 무마 시킬 좋은 수단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실력’에 대한 의식이 오로지 한국이나 엠넷 만의 입장은 아니었다. 방송을 통해 일본의 아이돌 당사자들이 품고 있는 생각 역시 들어볼 수 있었다. 후에 아이즈원으로 발탁된 미야와키 사쿠라는 첫 등장 인터뷰에서 “(아이돌로 7년이나 활동했지만) 늘 의문스럽고 불안으로 가득 차있었다. 실력이 향상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 라고 말했다. ‘실력’이 일본의 아이돌 시장에서는 더이상 요구되지 않는 스킬셋이라 여겨졌지만서도, 당사자들은 여전히 이것에 동경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좋은 음악과 멋진 퍼포먼스 등의 ‘실력’은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연결되어 있다. 향상심을 가졌다면 언젠가는 이 같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야와키 사쿠라를 포함한 일본인 멤버들의 이런 자세는 ‘실력’을 주제로 구성된 [프로듀스48]의 이야기 속에서 한국의 시청자들을 움직였다. ‘실력’이 부족하다지만 팬들은 아이즈원의 일본인 멤버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나라에 와서 언어부터 새로 배워나가는 이들의 열정을 좋게 보았다. 야부키 나코나 혼다 히토미처럼 결국은 일본인 참가자들 중에서 매력적인 보컬이나 뛰어난 안무 소화력 등 비교적 ‘실력’으로 부각된 이들이 최종 멤버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아이즈원의 일본인 멤버들은 AKB 사단으로 활동하며 얻은 기존의 건재한 팬덤과 이들의 바잉 파워가 있었다. [프듀]에서 탄생한 팀이라면 인기 아이돌 그룹의 위치는 따놓은 당상이었지만, 아이즈원은 일본인 멤버들의 기존 인기까지 더해져 더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었다. 한국에서 ‘실력’ 부족 멤버는 대중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다른 멤버들의 발목을 잡는다’며 비판 받기도 하지만, 아이즈원의 일본인 멤버들은 AKB로서 갖는 기존 인지도, 그리고 나름의 성장을 이뤄가는 ‘실력’으로 팀에 분명하게 기여하며 사랑 받았다.

‘원팀’ 아이즈원

한국인 연습생들이 일본인 참가자들을 돕는 모습도 좋은 그림을 만들었다. [프듀] 시리즈에서 경쟁 시스템 속 자기 희생이나 상부상조는 늘 각광 받는 스토리 라인이었다. [프로듀스48]에서는 이런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올 수 있었다. ‘실력’ 뿐만 아니라 언어 등의 홈 어드밴티지를 누리는 한국인 참가자들이 일본인 참가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즈원이 결성된 후에도 이어져 일본어에 익숙한 이채연이 일본인 멤버들에게 통역을 해주는 모습 등을 자주 볼 수 있었고, 아이즈원의 팀워크를 끊임 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당장의 부족함이 흠이 되지 않는, 나름의 기여가 인정 되는, 전체적인 조화가 멋진 공동체. 이는 아이즈원이라는 팀 전체를 몹시 사랑하는 강력한 팬덤 위즈원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프듀] 시리즈의 방송 조작이 알려지며 팀 활동이 중간에 와해될 위기도 겪었지만, 이미 탄탄한 믿음으로 뭉친 팬덤에게는 그저 함께 겪어낼 준비된 고난일 뿐이었다. 기한이 다 한 뒤에도 팀이 연장 됐으면 한 팬들이 ‘평행 우주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이를 통해 20억 이상의 큰 돈이 모이기도 했다.

아이즈원은 열 두 명이라는 적지 않은 인원이 각자의 장점은 돋보이게 만들어주며, 또 부족한 점은 서로 보완해가며 절묘한 케미스트리를 이루었다. 열광적인 팬덤은 팀으로서의 이들을 사랑했다. 멤버 전원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기에 흩어진 지금도 멤버 한 명 한 명이 일정 수준 이상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다. 아이즈원이 유독 팀으로 진한 사랑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룹과 계약하는 기획사의 입장으로선 그룹이 쭉 잘 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재계약 때마다 높아지는 계약금 곱하기 멤버수를 상상하면 이런 추측이 어렵지 않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두 번째 재계약이 화제를 모으는 데에도 이런 배경이 있다. 미국의 경우 다른 글에서 다루었듯 산업과 대중 모두가 아이돌 그룹의 존속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룹은 젊은 날 몇 년 간 틴에이지 팬들을 모아 기반을 다지는 용도고, 이 중 한 명 정도가 팝 신에서 살아남는 톱스타가 된다.

그러나 케이팝은 팀 전체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1세대 중에는 회사를 옮기면서도 서로를 놓치지 않은 신화 같은 팀이 있었다. 2세대의 소녀시대 역시 서로가 다른 회사로 흩어진 지금도 때마다 재결합해 팀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룹 활동은 휴지기에 들어갔지만 2025년 전원 소집 해제 후의 미래를 끊임 없이 말하는 3세대 방탄소년단도 비슷하다. 사람이 많을수록 당연히 어려운 일일테지만, 팀으로 사랑 받은 아이돌 그룹들은 팀의 이름을 지키는 길이 팬들과의 의리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한다. 팀 브랜드가 견고할 때 각 멤버의 개인 커리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니 이는 충분히 이유가 있는 고집이다.

[프듀]와 AKB는 모두 참가자 개개인이 경쟁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아이즈원은 결국 팀으로 성공했고, 아이즈원이라는 브랜드가 지금까지 긍정적인 이미지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즈원 출신은 잘 된다’는 인식은 멤버들의 커리어에 선순환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팬덤인 위즈원 역시 아이즈원의 기억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게끔 한다. 아이즈원의 팀 서사는 마찬가지로 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달콤한 희망을 준다. 혹은 이야말로 아이돌 그룹이 우리에게 건넬 수 있는 최상의 판타지일지 모른다. 지독한 경쟁 속에서 만난 최고의 인연이라는 꿈 같은 이야기 말이다. 🎧 DJ 랜디 서 (대중음악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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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즈원 - 라비앙로즈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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