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넴의 부꾸부꾸 | 유럽의 여성 파워를 반영하는 북유럽 시리즈

TMI.FM의 DJ 희미넴 |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북유럽 국가들은 미니멀한 디자인과 광폭한 헤비메탈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매우 복합적인 매력을 가진 곳입니다. 자칭타칭 북유럽 덕후인 임희윤 동아일보 기자가 북유럽의 매력넘치는 콘텐츠를 소개하는 [희미넴의 부꾸부꾸]입니다. 

얼마 전, 주한노르웨이대사관저에 초청받았다.

부꾸부꾸(bukku bukku)를 쓰다보니 별일이 다 생긴다? 발단은 이렇다. 2013년 첫 스웨덴 출장 때 인연을 맺은 뒤 9년지기 친구가 된 예스퍼가 내게 강연 하나를 부탁했다. 예스퍼는 스웨덴 음악수출공사의 대표다.

“안녕, 희윤! 다음달에 북유럽 음악 관계자 12명 데리고 서울 가는데 한국 음악 시장과 미디어에 대해 짧은 강연 해줄 수 있어?”

발단은 지난달 예스퍼가 날린 이런 내용의 페메(페이스북 메시지)였다. 지난주, 마침내 예스퍼는 유니버설과 소니 뮤직의 현지 법인 관계자를 포함해 퍼블리싱, 에이전시 등을 아우르는 중량급 관계자들을 데리고 내 앞에 왔다. 스웨덴대사관에서의 짧은 강연이 끝난 뒤 일종의 뒤풀이격으로 저 노르웨이대사관저에서 리셉션을 연 것이다.

파티가 끝날 때쯤, 안네 카리 한센 우빈드 주한노르웨이대사에게 나는 “강남에서 열릴 부꾸부꾸 강연에 초대하겠다”는 ‘무리수’를 던졌고 마침내 “시간 되면 꼭 갈게”라는 친절하기 그지 없는 대답을 얻어냈다. 그러고 마지막 기념 촬영 스폿을 물색하던 중 내게 푸근한 인상의 집사(?)가 다가와 이런 말을 건넸다.

“자, 여기 벽에 걸린 그림 세 점 보이시죠? 모두 (에드바르) 뭉크의 진본이에요. 기념 촬영을 하시려면 이 그림을 배경으로.. 어때요? 제가 찍어드릴게요.”

사진까지 찍어준 뒤 문밖까지 배웅하며 그 집사(?)는 “지난 겨울엔 오슬로 시내 하늘까지 오로라가 내려와 장관이었다. 전 부임지는 캐나다였는데 거기도 오로라가 참 좋았다”며 씩 웃었다.

어???

아뿔싸. 그는, 집사가 아니었다. 노르웨이대사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인 고 필립 공만큼이나 푸근한 저 미소는, 굳이 어르신들의 올드한 표현을 빌리자면, ‘여자 잘 만나 호강하는’ 남자의 느긋함에서 나오는 것이었나…

9년 만에 리부트되는 [Borgen]

올 2월, 북유럽에서는 무려 9년 만에 리부트되는 TV 시리즈 하나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덴마크 DR1에서 3개의 시즌이 방영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린 [Borgen], 한국어 제목은 [여총리 비르기트]다. 9년 만에 돌아온 [Borgen: Power & Glory]는 넷플릭스에서 [비르기트: 왕국, 권력, 영광]라는 이름으로 한국에도 상륙했다.

주인공은 비르기테 뉘보르. 극중 사상 최초의 덴마크 여성 총리에 오른 비르기테는 모략과 술수, 언론 플레이와 온갖 더티 플레이가 횡행하는 크리스티안스보르 궁(Borgen은 성이란 뜻으로 덴마크의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모인 이곳을 가리키는 말)에서 때로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때로는 부드러운 협박과 복수를 감행하며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빠른 전개와 반전, 덴마크는 물론이고 자치령인 그린란드, 미국, 러시아 등과 얽히고설키는 내무와 외교의 스토리라인을 에피소드마다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전속력으로 정주행하게 되는, 중독성 강한 정치 드라마다.

여기에도 저 안네 카리 한센 우빈드 주한노르웨이대사의 남편과 어쩌면 비슷한 처지일지 모르는 부군이 하나 등장한다. 비르기테의 남편인 (이 사람도..) 필립이다. 그는 코펜하겐 경영대의 잘 나가는 교수지만 부인이 총리가 되는 통에 수많은 CEO직 제안을 마다하고 교편에 만족해야만 하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헤드헌터로부터 거절하기 어려운 러브콜을 받는다. 비아 일렉트로닉스라는 글로벌 기업의 CEO 자리를 맡아달라는 것. 이것만은 놓칠 수 없다며 부인을 끝내 설득한 직후, 덴마크 의회는 국방부가 석연치 않게 결정한 신형 전투기 구매 소식을 빌미로 비르기테를 압박한다. 전투기 제조사의 재하청 업체 목록에는 남편이 CEO로 앉은 비아 일렉트로닉스가 있고... 비르기테는 다시 한번 이 첨예한 정국에서 남편을 향해 차가운 비수 같은 해법을 던지고 마는데…

지금 유럽은 여성 파워가 대단하다

북유럽은 특히나 그 선봉에 있다. 아이슬란드(카트린 야콥스도티르), 덴마크(메테 프레데릭센), 스웨덴(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산나 마린(핀란드)… 노르웨이(요나스 가르 스퇴르)를 제외하면 모두 여성 총리가 행정부를 이끈다.

모두 30대~50대의 젊은 나이로, 대개 좌파 또는 중도좌파이며 2017년부터 2021년 사이에 취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발트 3국도 만만치 않다. 리투아니아의 인그리다 시모니테 총리, 에스토니아의 카야 칼라스 총리가 총체적 위기에 결연히 맞서고 있다.

여성이기에 치르는 유명세도 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8월 파티에서 춤추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곤혹을 치렀다. 또 한편에선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을 포함한 세계의 여성들이 연대와 지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북유럽 수사물, 노르딕 누아르도 여성 파워의 한 척도다. 핀란드의 [Deadwind], 아이슬란드의 [The Valhalla Murders] 등 여러 작품에서 여성 수사관이 메인을 장식하는데 이는 단순히 [Broadchurch](영국. 올리비아 콜먼 주연)의 후광효과라고만은 볼 수 없다.

극중 주인공들은 지구상 최고의 복지국가에서도 여전히 차별 받거나 폭력에 노출된, 개발과 환경 이슈에 민감한, 냉철한 결단자이자 친절한 민중의 지팡이인 여성이다.

그 뒤에 수많은 필립들, 즉 경단남(경력단절남)이거나 루저이거나 애매한 존재인 남성들의 에피소드와 실체를 엿보는 재미 역시, 깨나 쏠쏠하다. 🤘 DJ 희미넴 | lifekill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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