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넴의 bukku bukku(2) | “Helvetti! Laajalahti!”

매주 수요일은 덕질 경험기부터 음악/영화/웹툰 리뷰에 이르기까지, 저의 동료들이 쓰는 아티클이 실립니다. 오늘은 희미넴이 소개하는 북유럽 음악 가이드에요. 4주에 한 번 연재됩니다.

#1. Laajalahti

"YOLO…. You only live once. Healing…."

방언이라도 터진 걸까. 대단한 영어로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호수처럼 잔잔한 라얄라흐띠 만(Laajalahti-灣)의 늦여름 정경을 반쯤 감긴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니 고급 영어도 자동 발사된다. 지금은 2018년 8월, 여기는 핀란드 헬싱키 외곽의 한 호텔에 부속된 사우나다.

그렇다. 그냥 동네 불가마 사우나나 천수탕 불 한증막 아니고 '핀란드 사우나' 맞다. 네 벽을 둘러싼 향긋한 침엽수 향기가 서울 매연에 찌든 나의 비강을 호강케 한다. 후끈 오른 열기에 죄 많은 몸뚱이는 건강한 땀으로 셀프 세신하고 있다.

이곳 핀란드는 전 세계 사우나의 수도이자 본고장이다. 사우나(sauna)는 핀란드어다! 빵(pão)이 포르투갈어이듯…. 릴랙스와 힐링 사이에서 혼자만의 ‘알쓸신잡’ 집필에 기분 좋게 빠져들 무렵.

‘끼이이익~’

바깥으로 통하는 문 쪽에서 들리는 불길한 소리. ‘전설의 고향’ 속 아쟁 인서트 같다. 7인용 사우나를 혼자 점거한 채 즐기던 나른한 나의 오후를 파괴하러온 자, 누구인가. 그는 내 세계의 불청객, 두 번째 등장인물. 덩치다. 산만 한 덩치다. 내 정신은 그 덩치의 다음 행동에 더 산만해졌다.

‘촤라락! 촤라락! 촤라락!’

입장과 동시에 가차 없는 물세례. 잔뜩 달군 돌무더기가 가득 담긴 양동이를 향해 물을 세 차례나 끼얹은 저 사내…. 사우나에서 저런 물세례는 내부 온도 급상승을 의미한다. 나의 인기척을 느낀 상해미수 혐의의 덩치가 흠칫 놀라며 돌아선다.

“Oops, Sorry.”

‘매너가 당신을 살렸다….’ 혼자서 되뇌는 내게 그가 추가적 변명을 푼다.

“러시아가 핀란드보다 더 뜨겁게 (사우나를) 하잖아. 껄껄껄. 내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왔거든. 누가 있는 줄 모르고 그만 평소에 하던 대로….”

사과를 빙자한 이른바 러시안 플렉스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사우나 갖고 싸우는 문화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가 사우나 같은 걸로(?) 싸울까... 싶지만 이 사람들은 진짜 싸운다. 사우나를 둘러싸고 두 나라는 피 튀긴다. 나토 가입, 푸틴 같은 문제가 아니다. 전설과 같은 이야기다. 종주국 논쟁, 선수권 경쟁 등.

핀란드에서는 1999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세계 사우나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남동부의 작은 도시 헤이놀라에서 열린 이 대회는 제목 그대로다. 결승전 규칙은 간단하다. 최초 온도는 110℃로 세팅. 30초마다 0.5L의 물을 돌로 된 양동이에 끼얹어 온도를 계속 올린다. 입장한 최후의 6인 중 가장 마지막에 문 닫고 나오는 자가 우승. 단, 제 발로 걸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 행사가 ‘2010년까지 열렸다’고 썼다.

2010년 대회에서 비극이 있었다. 블라디미르 라디첸코 씨(러시아)와 전년도 챔피언인 티모 카우코넨 씨(핀란드)를 비롯한 결선 참가자 6명 전원이 결승전 도중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이 중 라디첸코 씨가 끝내 숨짐으로써 이 대회는 영구히 폐지됐다. (2010년 8월 9일 월요일자 동아일보 19면에 게재된 당시 핀란드 세계 사우나 대회 사고 관련 기사↓)

#2. “Helvete!”

"헬~비떼!(Helvete!)"는 2022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공개된 스웨덴제(製) 넷플릭스 드라마 [클라르크]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대사/단어다. 영어로 ‘Hell’, 즉 지옥이란 뜻인데 북구에선 ‘젠장’ ‘빌어먹을’과 동의어다. [클라르크]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말을 만들어낸 바로 그 사건의 범인인 클라르크 올로프손의 일대기를 다룬 픽션이다.

‘Helvete’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는 ‘helvete’, 덴마크에서는 ‘helvede’, 핀란드에서는 ‘helvetti’로 비슷하다.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무성 마찰음 ‘h’가 ‘el~’을 만나 늘어졌다 ‘ve’의 짧은 도움닫기 뒤에 된소리 ‘tt’로 분출하는 이 짧은 단어가 고막을 때릴 때마다 북구광(北歐狂)인 나는 초미니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광활한 스칸디나비아를 가로질러 통용되는 이 쌍욕은 북유럽 신화 속 지옥에서 유래했다. 독일어(scheiße)와 불어(merde)의 해당 표현이 배설물에서 나왔음과 비교하면 흥미롭다. 지옥과 💩이라….

#3. Kalevala와 Tuonela

그러나 핀란드는 개중에 더 특별하다. 그들만의 지옥을 하나 더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핀란드어는 나머지 북유럽 언어와 달리 우랄·알타이 어족에 속한다. 신화도 ‘독고다이’다. 핀란드만 북유럽 신화와 다른 독자적인 신화, 칼레발라(Kalevala)를 갖고 있다. 오딘과 토르도 헬싱키에서는 한낱 이방인일 뿐이다.

칼레발라에는 북유럽 신화와 차별되는 캐릭터나 구분되는 개념이 많다. 연옥이나 하데스와 비슷한 개념의 투오넬라(Tuonela)도 그 중 하나다. 투오넬라란 지상에서 죽은 자들이 떨어지는 깊고 어둑한 지하세계다.

같은 제목의 앨범을 낸 밴드가 있다. 핀란드 메탈 밴드 아모르피스(Amorphis)다. 이들은 모든 앨범의 가사를 '칼레발라'에 의거해 짓는다. 세계관도 이런 세계관이 없다. 우리 식으로 치면 단군 메탈인 셈.

국립공원 관리직의 업무 중 75%가 '숲 속에서 앨범 커버 사진 찍다 길 잃은 메탈 밴드 구출하기'라는 나라, 인구 10만 명당 평균 메탈 밴드 수가 70팀에 이르는(미국, 영국의 10배 수준인) 전세계 메탈 밀도 1위 국가... 그게 바로 핀란드다. 이런 나라에서 아모르피스는 나이트위시(Nightwish)와 함께 장르 불문 통합 앨범 판매량 1, 2위를 다투는 팀이다.

앨범과 공연 모두 살벌하다. 아모르피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사우나에서 만난 러시아인 덩치가 지핀 조그만 불지옥, ‘헬베띠’와 ‘투오넬라’ 사이를 오갔던 2018년 헬싱키의 여름이 전두엽 어딘가에 빔 프로젝터처럼 떠오른다.

그리고 매년 핀란드의 한여름 햇살처럼 따스한 봄 햇살이 서울 영등포구를 비출 때면, 헬싱키의 성수동 같은 힙한 동네 칼리오(Kalio)에서 아모르피스의 멤버와 맥주잔 부딪치며 나눈 전설 같은 이야기들도 함께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얘기는 Jatkuu… (To be continued…) | 희미넴

※ 보너스 트랙

※ 수요일 코너 안내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4명의 필자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월 1회 연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 주기나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답니다~;;;)

1) 핑크블러드의 덕후 마음: 덕후 마음은 미지의 신세계...? 요즘 덕질은 '포카'가 핵심인데, 그걸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보다 이 판에 막 빠져든 사람의 기쁨과 슬픔이 궁금하지 않나요? '핑크블러드'가 그런 얘기를 씁니다.

2) 랜디 서의 음악 리뷰: 입체적인 음악 감상을 위한 가이드. '시사인'과 '위버스 매거진', '아이돌로지'에 글을 쓰고, 저와는 '360리뷰'를 진행한 랜디 서 평론가가 주목하는 싱글/앨범 리뷰입니다.

3) 임희윤의 북유럽 가이드: 어디가서 아는 체 하기 좋은 이야기. 동아일보 임희윤 기자가 쓰는 북유럽 음악 가이드입니다. 북유럽의 여러 장르부터 앨범 아트웍에 이르는 광범위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4) 강남규의 다시 보기: 언제나 '공동체'는 중요합니다. 콘텐츠든 비즈니스든 결국 함께 사는 문제니까요.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 강남규님이 쓰는 영화/드라마/웹툰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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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음악 산업 ©TMI.FM |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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