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우시절", "라라랜드", "봄날은 간다"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마주 보고 시선을 맞춘 적이 언제인가요? 정색하고 누군가를 마주 본다는 것이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훈련이 안된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며 마주 보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죠. 그때가 바로 사랑에 빠졌을 때입니다.
마주 보다.
위의 장면은 영화 "호우시절"의 한 장면입니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중에 비교적 덜 알려졌고, 평도 그렇게 좋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그 감독만의 특유의 감성이 잘 살아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최고 작품으로 손꼽히는 "8월의 크리스마스"보다 아쉬운 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그림 속 두 남녀는 사랑에 빠진 연인이 서로 마주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를 응시하는 시선과 표정, 그리고 여자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살짝 짚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를 마주 보는 느낌은 미세하게 다른 느낌을 줍니다. 서로에 대한 호감은 물론, 상대의 꿈과 열정에 대한 응원과 부러움이 교차하죠. 그리고 자신의 꿈과 열정을 돌아봅니다.
위의 장면은 한 재즈바에서 재즈를 들으며 서로를 마주 보는 장면입니다. 영화 라라랜드는 꿈을 쫓는 사람들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 연인은 서로의 꿈에 이끌립니다. 상대방을 마주 보는 시선 속에서 상대의 꿈과 자신의 꿈을 동시에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상대를 마주 보는 장면이 사랑스러운 상황만 있는 것이 아니죠. 처음 언급되었던 허진호 감독의 또 하나의 대표작, "봄날은 간다"는 불처럼 타오르다가 싸늘히 식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위의 장면은 "라면 먹을래요?"와 함께 유명한 장면이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남자 주인공이 말하는 장면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마주 보고 있지만 남자는 제대로 그녀를 쳐다보지 못합니다. 반면 여자는 그를 담담히 응시하죠.
어쩌면 사랑할 때나 호감이 있을 때 마주 보는 것보다 어렵고 두려운 상황에서 마주 보는 용기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헤어져야 하는 연인을 마주 보는 것, 그리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 마주 본다는 것은 현실을 피하지 않고 부딪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를 마주 보고, 세상을 마주 보고, 그리고 나 자신을 마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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