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레스트 검프”, ”죽은 시인의 사회“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라이프 스타일이 핫했다가 또 차갑게 식기도 했었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였죠.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한번 사는 인생 막사는 것으로 변질되었다며 비판합니다. 간혹 욜로라는 미명 하에 방종에 가까운 쾌락에 빠지는 일부 사람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사, “카르페 디엠”의 가르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현재를 잡아라!”라는 뜻의 그 말은 어떻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욜로”와 “카르페 디엠”의 시대는 끝이 나고 지금은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를 위해 쉼 없이 달려가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순간을 충실히 산다는 것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것인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그때 이 영화가 생각나더군요. “포레스트 검프”. 이 영화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한 남자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가 겪었던 격동의 역사와 그 속의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남들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게 태어난 포레스트 검프는 비범한 사람들이 겪기도 힘든 놀라운 경험들을 마주합니다. 유일하게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인 달리기 실력으로 대학 미식축구 스타가 되었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영웅이 되었죠. 미국의 굵직굵직한 역사적 터닝 포인트에 숨은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운 좋게 엄청난 부를 얻기까지 하죠.
포레스트 검프는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그런 대단한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영화 속에 그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어린 시절 다리가 불편했죠. 괴롭히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려다 달리기에 눈을 뜨게 됩니다. 전쟁터에서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전우를 둘러업고 달린 것뿐이었죠.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전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우잡이를 한 것뿐인데 부자가 되었습니다.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미국 전역을 뛰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영적 지도자로 추앙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운 좋은 해프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비밀이 있습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내일의 결과를 예상하지 않고 현실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한 번도 결과를 위해 행동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았을 뿐입니다.
“욜로”, “카르페 디엠”의 진짜 의미는 결과에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아직도 그 가치는 유효해 보입니다. 한번 사는 인생 막살게 되는 이유는 결과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에 최선을 다해도 내일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 뻔한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라는 허무함이 몰려옵니다.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졌습니다. 우리의 교육은 성적이라는 결과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커서는 돈이라는 결과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을 하면 조롱을 받았습니다. 2022년 현재, 더 이상 사회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상류층 진입이라는 결과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니 쾌락이라도 맛보고 즐기겠다는 생각이 퍼집니다. 그 핑계로 욜로나 카르페 디엠을 들이댑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뭔가 고결한 척하다가 죽겠다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죠.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 결과에 상관없이 오늘 내가 옳다고 믿는 사과나무를 심으며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가르침이 아닐까요?
점점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성공은 운이고 행복은 실력이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성공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운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과정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실력입니다. 그 과정을 행복으로 만들 수 있다면 행복은 실력인 셈이죠. 우리는 과정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착하고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사랑을 했죠. 결과를 두려워했다면 착하고 정직함 대신 거짓을 말하고 배신을 했을 겁니다. 사랑에 거절당할까 봐 고백도 못했겠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은 착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합니다.
제가 매일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10년 뒤에는 뭔가 되겠지라는 막연한 상상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 그리는 루틴은 이제 저에게 즐거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가끔, 내가 지금 무슨 뻘짓을 하는 건가!라는 현타가 오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결과를 예측하며 좌절에 빠지기도 하죠. 모든 자기 계발 콘텐츠에서는 목표에 대해 말합니다. 목표는 과정을 시작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그러나 목표를 결과의 수치로 속박하는 대신 과정 자체를 목표로 바꿀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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