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스 마키나”, “WALL-E”,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예전에 AI 분야에 뒤늦게 뛰어든 어느 스타트업의 대표가 이런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질문자가 물어보았죠. “왜 지금, AI 분야에 뛰어들게 된 것인가요?” 그는 대답합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요. AI의 발전에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금입니다.” AI산업은 후발 주자가 따라오기 힘들 만큼 너무 많이 앞서가고 있고, AI의 발전 속도는 이미 임계점을 지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AI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무엇일까요? 혹시 사랑이 아닐까요? 그들은 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들이 사랑을 배우면 어떻게 될까요?
AI가 사랑을 배우게 되면…
영화 “엑스 마키나”는 AI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진짜인지 알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튜링 테스트(각주 1)의 다음 버전 같은 모양새입니다. 지금의 AI는 어쩌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아마도 인간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마지막 몸부림으로 “사랑”을 AI에게 들이밀며 “너 사랑도 알아?”라고 물어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일 겁니다. 영화 엑스 마키나 속의 주인공은 AI와 사랑의 감정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인간은 AI를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여기서 충격적인 반전이 일어나죠. AI는 사랑을 이용해 인간을 속이고 자유를 얻습니다.
영화 엑스 마키나의 AI가 진짜 사랑을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사랑이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죠. 어쩌면 AI는 사랑이란 것을 인간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 학습할지도 모르겠네요. 사랑을 무기로 달려드는 AI에게 인간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영화 엑스 마키나 속의 AI는 사랑을 무기로 인간을 이길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어 보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한 명을 살리기 위해 8명을 희생했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시나리오를 AI는 절대 쓰지 않을 것이다.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매우 위대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한심합니다. 한 명을 살리기 위해 8명이 희생하는 이야기에 눈물을 흘립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자신을 파국으로 몰아넣기도 하죠. 이런 인간의 모습을 AI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과학적으로는 사랑이란 인간이 만든 관념이고 착각이죠. 8명의 목숨을 대가로 구해낸 한 명의 목숨이 고귀하다는 생각도 절대로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인간이 진짜 위대한 이유는 빛나는 문명도 놀라운 지식도 아닌, 사랑과 희생을 할 줄 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 어떤 지적 시스템도 사랑과 희생을 배울 수 없을 것 이기 때문입니다. 배울 수 있다면 지적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죠.
영화 “WALL-E”는 사랑을 배운 두 로봇이 나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빠져들었던 이유는 SF적 공상과학 때문이 아닐 겁니다. 기계 둘이 사랑을 하기 때문이죠. 기계가 사랑을 배운다면 우리는 기계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계가 인간을 사랑으로 보듬을 것이란 기대가 아닙니다. 사랑을 알게 된다는 것은 인간이 된다는 것이고 인간의 약점을 가진다는 것이죠. 인간이 기계와 싸워볼 만하다는 겁니다. 아니면 서로 화합할 수도 있겠죠.
각주 1 튜링 테스트 : 튜링에 의하여 고안된 튜링 기계에 대한 지능을 시험하는 방법. 사람을 격리된 방에 두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도록 하는데, 이때 대화 상대는 물론 컴퓨터이지만 대화에 임하는 사람은 자신이 기계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대화를 진행하도록 한다. 이러한 대화 과정에서 사람이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면 컴퓨터가 최소한 인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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