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동안 유통, 금융, 제조 등 다양한 기업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추진 과정을 살펴보면서 현장의 많은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국내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은 대부분 글로벌 컨설팅 기업에 DX 과제를 맡겨서 먼저 큰 그림을 그리고 분야별/단계별 세부 전략을 실행하는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은 직원들의 디지털 전환 교육에도 적극적이다. IT 부서뿐만 아니라 많은 사업부서 직원들을 대학이나 교육기관, 내부 연수원에 보내 코딩, 데이터 분석, 디지털 전략 등 디지털 역량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업 재직자 대상의 강의나 워크샵을 진행하다 보면 수강생들이 DX 전략과 방법론, 왠만한 사례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니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요구하곤 한다. 대기업은 B2C 보다 B2B 기반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관심이 많다. 어차피 지금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바꿀 수는 없고 B2B 사업에 디지털 기술을 덧붙여 프로세스 자동화, 비용 절감, 생산성 향상에 집중하는 것이 실패 확율도 적고 경영진이 바라는 DX 추진 방향일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관심속에 과감하게 추진한 DX 프로젝트가 예정보다 일찍 종료되거나 파일럿 형태로 끝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사내에 DX 추진부서를 만들고 내부 자원과 외부에서 어렵게 수혈한 디지털 전문가를 팀으로 묶어서 일을 시작하는데 뭔가 결정이 필요할 때 마다 내부에서 사사건건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사내 DX 부서와 사업부서가 상대를 적으로 인식하고 대립하게 되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기존 사업조직을 보조하는 ‘자동화된 패키지 소프트웨어’ 정도로 인식하고 있고, 사업부서는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사내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를 관망하던 차에 이렇다할 실적도 없으면서 돈만 쓰는 DX 부서에서 일해라 절해라 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당연히 DX 부서에서 추진하는 일에 반대하고 또 반대한다.
여기서 CEO가 흔들리면 안된다. 오히려 이때다 하고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DX 부서에 사내 젊은 직원들과 디지털 전문가들만 두지 말고 사업부서에서 많은 경험을 가진 도메인 전문가들을 DX 부서에 배치하거나 해당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 워크샵을 통해 내부의 문제를 진단하고 가장 DX가 필요한 과제를 함께 발굴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한 실무 부서에서도 직원들만 워크샵에 참여시키지 말고 부서장이 함께 참여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만들어야 한다.
컨설팅 기업을 활용하기 어려운 중견기업은 사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과제를 IT 부서에 일임하고 있다. IT에 대해 잘 안다는 이유로 정보지원실 등 특정 부서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업무를 모두 맡기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DX 과제는 사업부서에서 먼저 현재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DX를 통한 해결과제를 도출하는 것이 우선이다. IT 부서는 기존 거래 관계인 벤더사에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이들에게 자료를 받아서 부랴부랴 계획안을 만들어서 경영진에 보고하지만 대부분은 그 상태에서 멈추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글로벌 IT 기업들의 솔루션을 도입한 시스템 자동화에 그치고 있다. 이외에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단일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접근 방식도 지양해야 한다. 이 경우 내부 인력의 참여가 없거나 미흡하기 때문에 사고방식의 전환이나 내부 전략과의 연계없이 디지털 기술이 가져다주는 자동화, 고도화, 효율화라는 장미빛 환상에 빠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데이터 관리와 같은 디지털 역량의 내재화 실패로 향후 유사한 과제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해지고 시간과 비용 모두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먼저 기획이나 전략부서에서 우리 기업에서 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요한지, 어떤 업무에 필요한지, 이를 통해 우리 기업의 업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새로운 고객을 어떻게 발굴할 것인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고객이 얻게 되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이 명확하게 수립되고 내부에서 디지털 기업으로의 전환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신념이 뒷받침될 때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성공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기존 경험에 의지한 비전과 전략을 추진하거나, 제대로 된 투자없이 내부조직에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목표를 단순히 비용 절감이나 업무 생산성 향상에 맞추는 것은 단기적인 KPI에 불과하고 전사 차원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목표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고객이 느끼는 페인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데이터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면서 지속적으로 고객경험을 향상시켜야 한다. 고객경험이 향상되면 자사의 디지털 채널에 대한 이용이 급증하게 되고 많이 데이터가 쌓이게 된다. 이렇게 축적한 데이터를 가지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검증을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또한 마차를 개량해서 더 빨리 달리는 방법(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기 보다는 자동차라는 새로운 모빌리티로 갈아타는 방법(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고 이러한 혁신의 결과가 반드시 직원들의 디지털 역량 향상과 재무적 성과로 나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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