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CG의 왕자, 출가를 택하다.
BCG의 창업자 브루스 헨더슨은 1967년 연봉 17,000달러에 빌 베인을 영입했습니다. BCG 창업 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20살도 더 어린 밴더빌트 학부 후배였죠. 이는 BCG 역사상 최고의 영입이자 최악의 영입이 됩니다.
하드워커에 디테일에 강하고, 깔끔한 외모로 유명했던 그는 입사 2년 만에 급여가 10배 가까이 올랐고, 부사장 자리를 꿰찼습니다.
1970년, 브루스 헨더슨은 BCG 내에 세 개의 컨설팅 팀을 만들어 서로 경쟁하게 했습니다. 레드, 그린, 블루. 그중 블루팀이 매번 다른 팀을 발랐습니다. 리더는 바로 빌 베인이었습니다. 이즈음부터 빌 베인은 사내에서 브루스 헨더슨의 후계자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베인은 성과보다 보고서 발행을 강조하는 BCG의 접근 방식에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1972년 헨더슨의 은퇴까지 참을 수 없었던 베인은 헨더슨의 사임을 압박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베인은 1973년 독립해 자기 회사인 베인 앤 컴퍼니(Bain & Company)를 세웁니다. BCG의 고객 중 베인 자신의 고객이었던 블랙 앤 데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계산기로 유명한 그 회사입니다)를 포섭했고, 다른 직원들도 데리고 나갔습니다. 헨더슨이 내부 실험은 결국 가장 큰 경쟁자를 만든 것으로 끝난 셈이죠.
2. 분석이 아니라 결과를 판다.
“고객에게 전략을 제시하는 걸 넘어, 결과를 전달하자”
베인 앤 컴퍼니 창업의 근간에는 이런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BCG를 비롯한 당시의 컨설팅 회사들은 방대한 데이터 분석과 보고서 작성, 그리고 전략 제안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베인은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The Bain Way’를 고집했습니다.
1975년 당시 컨설팅 업계 평균 보고서 분량은 약 200~300페이지에 달했습니다. 이에 비해 베인 앤 컴퍼니가 작성한 보고서의 평균 분량은 약 50~100페이지였지만 실제 실행 가이드 비중은 더 컸습니다.
베인은 당시의 다른 컨설팅 펌과 달리 장기 프로젝트에 집중했고, 고객사 CEO와 직접 협력하여 전략을 수립했으며, 실행 과정에도 참여했습니다. 5-10주 정도 프로젝트를 끝내고 고객사를 떠나는 BCG와 달리 베인 앤 컴퍼니는 길게는 약 2년까지도 고객사에 함께 머무르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베인은 ‘결과’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중시했으며, 자신들의 고객사의 주가가 평균적으로 주식시장의 주가를 훨씬 넘는다는 자료를 통해 이런 부분을 더욱 홍보했습니다.
처음 베인 앤 컴퍼니는 빌 베인의 비컨 힐 아파트에 전화선 하나를 두고 세워졌지만, 곧 보스턴에 새 사무실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베인의 새로운 컨설팅 방법이 성공적이라는 것이 금세 입증되었기 때문이죠.
3. 결과에 따라 보상받는다.
‘결과주의’를 강조한 베인은 주요 고객사에 새로운 형태의 계약을 제안했습니다.
“목표 달성 시 더 많은 성공 수당을 받고, 미달 시에는 수수료를 낮추거나 받지 않겠다.”
이것이 1970년대 중후반부터 퍼지기 시작한 베인의 ‘성과 보상형 컨설팅 모델’이었습니다.
“돈을 받는 건 해결책을 실현했을 때뿐. 베인은 고객사에 보고서를 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고객사의 결과가 제대로 나왔을 때만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는 기존 컨설팅 회사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컨설팅은 분석과 보고서를 팔아 확실한 ‘선(先) 수익’을 보장받는 사업이었기 때문입니다. 베인은 철저히 분석이 아닌 ‘결과’에 가치를 둔 것입니다.
‘위험을 공유하자’는 과감한 제안은 고객에게 신뢰를 주었습니다. 당시 베인 앤 컴퍼니에게 연 매출 40% 성장은 대단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어서 베인은 업계 최초로 현금 대신 주식옵션으로 컨설팅 수수료를 받는 제도까지 도입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기존의 시스템(컨설팅료 선불)에 왜곡을 일으키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는 모델을 도입하는 회사들이 등장하면, 시장 전체가 그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기 마련입니다. 처음 그 위험을 감수한 플레이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말이죠.
그러나 수수료는 수수료일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베인은 더 과감한 걸 시도합니다. 종국적으로 베인은 고객사들과 마찬가지로 주가 상승 자체로 발생하는 막대한 이익을 얻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빌 베인은 1984년, 밋 롬니(2012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와 함께 베인 캐피탈을 창업합니다. 당시 등장한 사모펀드의 개념을 도입하여 베인 컨설턴트들이 직접 기업을 사서 운영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베인 앤 컴퍼니는 끝내 수수료에 의존해 성장하는 회사(컨설팅 펌)을 넘어, 기업에 직접 투자하여 기업 성장의 결과 자체를 보상으로 삼는 비즈니스 모델까지 가지게 된 것입니다.
4. One industry, One Client
“한 업종에서는 딱 한 고객만 상대한다.”
컨설팅 시장이 커지면서 동종 업계에 있는 기업에게 비슷비슷한 전략 보고서를 파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 3-4곳이 같은 컨설팅사에게 전략 수립을 의뢰하면, 컨설팅사는 유사한 자료나 프레임워크를 재활용할 수 있었죠.
이는 컨설팅사 입장에선 매우 매력적인 비즈니스 기회지만, 동시에 고객사 입장에서는 “우리만의 차별화 전략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생기게 합니다. 베인은 이 지점에서 주목했고 1979년경 다음과 같은 원칙을 내세웁니다.
“은행 업계 안에서는 딱 한 곳의 은행과만 일하자. 그 대신 그 은행을 업계 1등으로 만들어준다.”
이 원칙은 베인의 명성에 큰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이 원칙을 도입한 후 베인의 고객사 중 약 60% 이상이 업계 1, 2위 기업이 되었습니다. 한 업계에서 나오는 매출액도 장기적으로는 기존처럼 한 업계에서 여러 회사를 컨설팅했을 때보다 1.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무엇보다 “베인은 우리 회사에 올인한다”라는 고객사의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베인의 마케팅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당신의 경쟁사를 컨설팅하지 않겠습니다.”
베인은 ‘고객 풀’을 넓히는 대신, 좁히는 전략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고, 고객명이나 프로젝트명조차 밝히지 않을 정도로 고객 정보를 철저히 보호했습니다.
베인이 최고의 급여를 주며 모은 하버드, 스탠퍼드 출신의 세련된 외모를 지닌, 밝고 영리한 동료들 – 빌 베인 자신을 닮은 베인의 파트너들은 명함도 소지하지 않았고, 코드명으로 고객을 지칭했습니다. 그 때문에 베인 앤 컴퍼니는 “컨설팅의 KGB”로 알려졌습니다.
베인은 오랫동안 고객사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과제만을 수임했습니다. 또 베인은 업계 당 한 기업, 매우 소수의 고객하고만 집중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서비스를 홍보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베인의 고객들은 기밀 유출이나 아이디어 중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업계 1위 기업들은 자신만을 위한 ‘비밀 병기’를 갖게 되었다고 느꼈고, 베인은 업계 1위 기업의 장기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5. Do The Bain Way
베인은 BCG에서 출발했지만 완전히 반대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BCG가 ‘어떤 회사에나 적용되는 과학적 방식’과 그를 알아내기 위한 ‘분석’에 치중했다면,
베인은 ‘실제 실행과 성과’, 그 성과에 따른 ‘책임’ 그리고 성공의 비결을 ‘독점하고 싶은 본능’에 주목했죠.
더 많은 고객을 상대하는 대신, 최고의 고객만을 상대하여 압도적인 집중을 통해 매출을 올렸습니다. 모두 상식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는 통찰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제품이나 서비스를 ‘결과’ 관점에서 재정의해 봅시다. 결국 고객이 원하는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결과’니까요.
예를 들어, SaaS 스타트업이라면, 월 요금을 성과 달성 여부와 연동하는 모델을 도입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데이터 분석 회사라면, 분석 보고서가 아니라 특정 지표 개선 달성률에 따라 비용을 책정할 수 있겠죠.
이를 통해 고객과의 장기적인 신뢰를 구축하고, 사내 구성원들의 마음가짐도 좀 더 결과에 집중하도록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베인처럼 하나의 세분 시장에서 오직 한 고객만을 위한 ‘프리미엄’ 라인을 운영하거나, ‘VIP Only’ 컨셉으로 특정 부류의 고객만을 전담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희소성은 언제나 시장을 움직이는 큰 힘입니다. 스스로 시장을 제한하여 희소한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여러분도 베인처럼 비전을 위해 과감히 도전하여, 실질적인 성과를 달성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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