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은 자이빙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가 봅니다.
아래는 포트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받아 항해하고 있는 세일링 요트를 위에서 내려다 본 그림입니다:
이 요트가 바람 쪽으로 뱃머리를 돌린다면 즉, '풍상' 방향으로 '올라가면' 아래와 같이 변합니다:
이제 조금 더 풍상으로 올라간다면 '죽은 구간'에 진입하게 됩니다. 배가 바람을 완전히 정면으로 받으면 멈추게 됩니다:
배는, 속도 저하를 최소화 하기 위해, 죽은 구간에 들어가기 전에 태킹을 해 빨리 반대 택으로 건너뜁니다:
이제는 바람을 스타보드에서 받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배는 반시계 방향으로 계속해 뱃머리를 돌리고 있지만 이제 풍상이 아니라 풍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바람과 각도가 점점 멀어지고 있으니까요.
배가 더 풍하로 내려갈수록, 그에 맞추어 세일도 점점 더 '열어' 줍니다. 세일이 바람을 일정한 각도에서 받아야 하니까요.
이제 최대로 세일이 최대로 열려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내려가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엔 바람을 스타보드 쪽이 아니라 포트 쪽으로 받도록 '건너가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은 태킹과 비슷하지만, '배를 멈추게 하는 앞바람' 대신 '배를 밀어주는 뒷바람'을 맞으며 택을 바꿔야 합니다. 게다가 최대로 열려 있는 세일을 반대편 끝까지, 끝에서 끝으로 옮겨야 합니다. 태킹을 할 때엔 세일이 배 중앙 가까이에 바싹 붙어 있기 때문에 별다른 작업이 필요 없는데 말입니다. 태킹보다 복잡하고 위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바람을 뒤로 하고 택을 바꾸는 것을 자이빙jijbing/gybing이라고 합니다.
태킹과 자이빙 모두 크루들의 협업이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긴장감에 차이가 있습니다. 태킹을 할 때에는 행동이 굼뜨거나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배가 느려지거나 멈추는 정도의 리스크가 있습니다. 성질 급한 선주에게 등짝 몇 대 맞고 지나갈 일이죠. 하지만 자이빙을 잘못하면 상황이 훨씬 심각해집니다.
한껏 열려 있는 메인세일이 반대쪽 끝까지 홱 돌아갈 때의 충격은 살벌합니다. 강풍에 방문이 꽝! 닫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방문이 내가 타고 있는 요트의 메인 세일만큼 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메인 세일 아랫단에 달린 붐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스윙할 때, 자칫 홈런을 칠 수도 있습니다. 엉거주춤 콕핏에 서 있던 사람은 머리를 맞아 기절할 수 있고, 데크에 서 있던 사람은 바로 날아가 입수할 수 있습니다.
강한 스윙에 균형을 잃은 배가 크게 기울거나, 그 충격으로 장비가 손상될 위험도 있습니다. 자이빙은 최대한 부드럽고, 배와 사람에 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해서 해야 합니다.
바람이 너무 강할 경우, 부드럽게 자이빙을 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안전한 태킹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멀리 돌아야 하긴 하지만, 바람을 앞에 두고 택을 바꾸는 편이 훨씬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반대 택으로 바뀌는 것은 동일합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자이빙 직전의 상황이 긴장감 넘치고 스릴 있을 것만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평온합니다. 오히려 태킹 직전이 더 흥분되는 느낌을 줍니다. 맞바람을 가르며 전진할 때는 배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바람까지 더해져 속도감이 증폭되고, 배가 크게 기울어져서 승선자를 긴장시킵니다. 반면, 풍하로 내려가며 바람이 뒤쪽에서 올수록 배 위의 분위기가 놀라울 정도로 잠잠해집니다. 자이빙 시점에 다다르면 바람이 거의 정후방에서 불어오기 때문에, 체감 풍속이 배의 속도만큼 줄어듭니다. 배 위에서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마치 가벼운 바람이 불고 있는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배는 더 큰 힘을 받고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런 말도 있습니다:
역풍 항해는 고난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매우 안정적입니다. 반면, 순풍 항해의 평화로움 뒤에는 위험이 도사릴 수 있습니다.
요트가 바람을 정후방에서 받고 있을 경우, 언제라도 갑작스레 붐이 홱 돌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순풍 항해를 할 때는 바람이 정후방이 되지 않도록 항상 주의가 필요합니다. 역풍 항해 시 배 속도가 느려지지 않도록 특정 각도를 피하는 것처럼, 의도치 않은 자이빙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피해야 할 각도가 있습니다. 전자가 '갈 수 없는 각도'라면, 후자는 '가면 위험한 각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리버리 항해는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남하하는 여정으로, 대부분 북서풍을 받으며 뒷바람으로 항해했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위험한 정후방에서 오지 않도록 조타에 주의해야 했습니다. 특히 바람이 아주 셀 경우, 갑작스런 자이빙의 위험에 더불어, 배가 과도한 바람의 힘에 휘둘리게 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앞바람이었다면 죽은 각도를 이용해서 속도를 조절할 여지가 있었겠지만, 뒷바람에서는 피할 데가 없었습니다.
북캘리포니아 멘도시노에서 우연히 찍힌 고프로 영상을 보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합니다. 배를 제어하기가 어려웠고, 원치 않는 자이빙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침착을 유지하지 못하고 혼비백산하여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질렀지만 어리버리 세일러들과 호라이즌스 호를 구해 준 것은 붐을 고정해 놓은 안전줄(프리벤터)이었습니다. 붐이 갑자기 스윙을 날리지 않도록 줄로 배 한쪽에 묶어 두는 거죠.
뒷바람으로 항해를 할 때엔, 귀찮더라도 이렇게 붐을 고정해 두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처음으로 낯선 사람의 배를 탔을 때, 스키퍼가 뒷바람 항해에서 붐을 줄로 묶어두는 모습을 보면 스키퍼의 씨맨십에 믿음을 가지고 마음을 놓게 됩니다. 반면, 자이빙을 험하게 하는 스키퍼라면 항해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엔진으로 운항하는 배들과 달리, 세일링 요트는 조타에 제약이 많습니다. 갈 수 없는 방향도 있고, 가면 안 되는 방향도 있습니다. 배 방향이 갑자기 크게 바뀌는 태킹이나 자이빙 등의 작업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약자를 우선 배려하는 아름다운 문화는 육지나 바다나 다르지 않습니다. 세일을 펴고 엔진 동력을 끈 세일링 요트는 바다에서 엔진으로 가는 선박에 대해 통행 우선순위를 가집니다. 세일링 요트가 항상 우선권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기잡이 중인 어선은 세일링 요트가 피해 주어야 하고, 해저에 박혀 움직일 수 없거나 고장으로 통제력을 잃은 배는 다른 모든 배에 대해 우선순위를 가집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충돌을 방지하는 일입니다. 세일링 요트가 드문 우리나라에서는 상대 배가 이 우선순위 자체를 모르고 있을 위험도 고려해야 합니다.
바닷길에는 2차선, 4차선, 6차선도 없고 로터리 사거리 오거리도 없습니다. 바다에서는 이용하는 사람끼리의 약속과 규칙이 바로 길이고 신호입니다. 그 약속과 규칙에는 진로 우선권 외에도 바다의 신호등인 항해등에 대한 이해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항해등을 외우는 것은 안전하게 바다에서 항해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인증하는 요트면허를 위해 누구나 넘어야 하는 산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서둘러 얻은 지식의 덧없음은 국가와 인종을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항해등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경험을 하기 전에는 말이죠.
다음 뉴스레터는 항해등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 보겠습니다.
편안한 일요일 되셔요.
이 무더위와 습기가 물러가면 다가올 선선하고 즐거운 바다를 고대하게 되는군요. 올 가을 남해에 모일 세일링 요트 다섯 척을 모집합니다. 선주와 저의 배까지 여섯 척의 세일링 요트로 재미있게 놀 프로그램을 구상중이예요. 가을이 되면 지중해 못지 않은 환경으로 탈바꿈하는 남해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스키퍼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mobilimorbid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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