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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세일링 랑데부 @남해

스키퍼 ABC

비행기와 세일링 요트

세일링 요트가 갈 수 없는 방향

2024.06.30 | 조회 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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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퍼 매뉴얼

일요일 오전 9시에 읽는 바다, 항해, 세일링 요트 이야기(격주 발행)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비행기 자주 타시나요? 설레임보다 지루함이 앞서는 일이지만, 이륙할 때의 순간만큼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육중한 비행기가 달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가벼워져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마치 마법 같습니다. 

새삼 인간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처럼 날아 보려고 노력과 실패를 반복했을까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행 장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행 장치

그런데, 실제로 인간이 하늘을 날게 해 준 날개는 깃털도 없고 힘들여 퍼덕일 필요도 없이 매끄럽게 뻗어 있습니다. 이 날개에 적절한 속도의 바람만 적절한 각도로 불어주면 비행기는 하늘로 떠오릅니다.

세일링 요트가 비행기 날개의 원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륙할 때마다 비행기 창문에 얼굴 도장을 찍으며 날개를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날개의 알루미늄 판들이 변신로봇처럼 튀어나와 날개의 모양을 바꾸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세일링 요트에서 세일을 조정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비행기가 하늘로 떠오르는 원리를 이해한다면, 세일링 요트가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태킹', '노고존', '스타보드', '포트', '택' 같은 용어를 만나게 될 겁니다. 세일링 요트를 타면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용어들이지만, 처음에는 무슨 암호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는 동안 "아, 이런 뜻이었구나!" 하는 순간을 맞으실 거예요. 그리고 구독자님도 이제 변신하는 비행기 날개를 무심코 지나치기 어려울 거라는 데에 한 표 던집니다. 

비행기 날개를 자세히 보면 위쪽이 아래쪽보다 더 불룩합니다.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윗면이 더 불룩한 날개를 타고 흐르면 위쪽 방향으로 비행기를 들어올리는 힘이 발생하는데, 이 힘을 '양력'이라고 합니다. 

바람이 빨라질수록 양력은 커집니다. 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할 때에는 아직 속도가 낮기 때문에 충분한 양력을 얻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알루미늄 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날개가 최대한 커지게, 그리고 최대한 불룩해지게 만듭니다. 주어진 속도에서 최대의 양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죠. 비행기가 전력을 다해 질주하며 양력이 비행기 무게를 이길 만큼 충분히 커지는 순간, 비행기는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어리버리 항해를 함께 한 선주는 '양력'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나오는 순간 마음의 문을 닫고 바로 고개를 돌려 버리곤 했습다. 그러나 양력의 물리적인 원리를 몰라도,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면 바람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다양한 상황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상황들 역시 '아...' 하고 깨닫는 유레카의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백과사전에서는 양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양력(揚力, lift)은 물체의 주위에 유체가 흐를 때 물체의 표면에서 유체의 흐름에 대하여 수직 방향으로 발생하는 역학적 힘이다.

https://ko.wikipedia.org

물이든 공기든 흐름이 있어야 발생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에 수직이 되는 방향으로 물체를 밀어 올립니다. 이상하죠? 흐름 방향이 아니라 흐름에 수직인 방향이라니.

비행기는 날개 앞쪽에서 바람이 들어오고, 그 바람이 날개를 위쪽으로 밀어 비행기를 들어 올립니다. 만약 힘이 흐름 방향으로 발생했다면 비행기를 위로 띄우는 게 아니라 뒤로 밀었겠죠. 

앞쪽에서 흘러오는 바람에 수직인 방향은 위쪽과 아래쪽이 있는데 왜 하필 위쪽으로 힘이 생기냐고요? 그 이유는 날개가 위쪽으로 불룩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물리 원리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힘이 불룩한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기억하는 쪽이 간편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양력이 아래로 누르는 힘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주용 자동차에 달린 스포일러가 그 예입니다.

자동차의 외형 그 자체는 위로 불룩한 형태라는 점에서 비행기 날개의 단면과 비슷합니다. 비행기 날개처럼 속도가 높아지면 자동차 역시 양력에 의해 위로 들려 올라갈 위험이 있습니다. 

자동차가 위로 뜨게 되면, 타이어와 지면 사이의 접지력이 줄어들어 차량 제어가 어려워집니다. 경주용 자동차처럼 속도가 매우 높다면 차가 위로 뜨기 쉬워집니다. 만약 피아트 500 같이 짧뚱한 차에 수퍼카 엔진을 장착한다면 자칫 날아갈 위험도 있겠네요. 

500
500

이 때, 스포일러가 제 역할을 합니다.

경주용 자동차에 달린 스포일러의 단면을 보면, 비행기 날개와 반대로, 아래쪽이 불룩한 모양입니다. 스포일러는 차가 위로 뜨게 하는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고, 아래 방향으로 눌러주는 양력을 만듭니다. 

아래는 세일링 요트를 위에서 내려다 본 그림입니다: 바람을 받아 한 쪽으로 불룩한 형태가 된 세일은 비행기 날개, 자동차 스포일러와 마찬가지로 양력을 만들어냅니다. 

양력 자체는 바람 방향에 직각이지만, 저항의 방향과 합쳐져 실제로는 90도보다 조금 더 큰 방향으로 배를 밉니다. 

이번엔 바람의 방향이 옆이 아니라, 바람을 조금 더 앞쪽으로 받고 있는 상황: 

이제 배를 미는 힘이 배를 옆으로 미는 방향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풍 항해를 할 때 배가 심하게 기우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본능적인 느낌은 옆에서 바람이 불 때 세일이 바람에 밀려 배가 기울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앞바람에서 배가 가장 심하게 기웁니다.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람 방향이 아니라 그에 수직으로 작용하는 양력을 상상해야 합니다. 비행기는 뒤로 밀리는 것이 아니라 위로 뜹니다. 

역풍항해에 기우는 배
역풍항해에 기우는 배

이렇게 역풍을 맞으며 세일링을 할 땐 배가 심하게 기울고, 배가 전진하며 스스로 만드는 맞바람까지 더해져 굉장히 빠르게 가고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 맞바람과 그 때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을 사랑하는 역풍 세일링 마니아들도 있죠. 그러나 실제로는 배가 가장 느린 방향 중 하나입니다.

편의상 역풍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비스듬한 각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완전히 뱃머리 정면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은 배가 속도를 잃고 멈추게 합니다.

양력이 발생하려면 적당한 각도에서 바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람이 완전히 앞에서 불면 세일이 한쪽으로 부풀면서 불룩한 형태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너무 앞 방향의 바람에서 배 속도가 죽어버리는 구간을 '갈 수 없는 구간', 혹은 '죽은 각도'라고도 부릅니다.

명칭이 좀 부정적이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세일을 내리거나 올려야 할 때, 또는 배에 응급 상황이 생겼을 때 배를 바람 방향으로 향하게 하면 세일의 힘을 빼고 배를 안전하게 멈출 수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세일링 요트를 멈추려면 동력을 제거해야 하는데, 가장 손쉽고 안전한 방법은 뱃머리가 바람 방향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나게 항해하던 중 단순히 방향을 바꾸려다 이 죽은 각도를 통과하면서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손해입니다. 속도를 덜 잃으려면 반대편 죽은 각도가 끝날 때 까지의 구간을 재빨리 폴짝! 건너뛰어야 합니다. 

스키퍼가 "태킹tacking" 명령을 내리면, 크루들은 이 동작을 신속하고 명확하게 수행해서 배가 빠르게 죽은 각도를 넘어갈 수 있게 합니다. 

어쩌다 보니 어린이 과학 만화에나 나올 만한 삽화를 그리며 예술혼을 불태웠네요. 아마도 항해 내내 선주에게 양력을 설명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답답함이 쌓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레터를 끝까지 읽으신 구독자님에게 보이는 공지!

7월,

아침식사에 초대합니다.

종종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는데요, 즐거운 자리를 독자 여러분과 만들어볼까 합니다. 남해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아침 식사에 초대합니다!

  • 언제: 세 분의 독자님이 모일 수 있는 날 오전 9시
  • 어디서: 남해 미조면 설리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 무엇을: 빵과 커피 위주 간단한 아침식사와 즐거운 대화
  • 누구랑: 저와 세 분의 독자님 (총 4명)

가능한 날짜를 아래 링크에 알려주세요(중복선택). 세 분 겹치는 날 아침식사 확정합니다!

https://forms.gle/pj7jocLuzhUFaCvZ6

참고로, 테라스는 절대 금연 구역입니다. 아침식사 동안 흡연은 참아주세요!

우선 7월 한 달 해 보고 재미있으면 계속하려고 해요. 남해 여행 계획이 있거나 근처에 계시는 분들, 수다가 그리운 분들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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