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테나카티타
우리보다 며칠 앞서 테나카티타에 도착한 에디는 거대한 세일피쉬를 낚았습니다.

등지느러미가 세일처럼 크게 펼쳐지기에 붙은 이름이죠. 태평양 항해하는 친구들은 다들 이렇게 큰 물고기를 낚은 경험이 있던데, 우리는 왜 맨날 상어만 걸리는 걸까요!
냉장고도 없는 호라이즌스와 달리, 타냐와 에디의 배에는 무려! 냉동고가 있었습니다. 이 세일피쉬를 냉동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죠. 우리가 도착하는 날 세비체 파티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우리 배에 초대해 세일피쉬 초밥을 만들어 먹었죠.
친구들이 있으니 테나카티타가 두 배로 재미있었습니다. 지난번 맹그로브 정글 탐험은 초입부에서 포기하고 돌아왔었는데요, 아웃보드 엔진은 시동이 안 켜지고, 노 젓기로는 물살을 이기기 어려워 덤불에 매달려 있다 지나가던 고무보트에 구조되었죠. 하지만 이번엔 베테랑 조타수 타냐가 모는 고무보트로 탐험에 성공했습니다. 악어는 보지 못했지만, 맹그로브에 가득 매달린 붉은 게, 수많은 새, 머리를 숙여 통과해야 하는 맹그로브 터널까지... 신비로웠지만 우리끼리는 절대 못 왔겠다 싶더군요.

타냐의 생일 파티도 했습니다. 해변에서 30여명의 세일러들과 함께 케익을 자르고, 타냐네 배에서 저녁을 먹은 뒤 밤늦도록 데킬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테나카티타에 오래 머물며 다른 세일링 요트들과도 친해졌는데, 이날 데지레와 대몬을 처음 만났습니다. 원시적인 방식으로 배를 타는 미국인들이었는데, 항해에서 엔진을 거의 쓰지 않고, 밧데리를 쓰는 장비가 배에 없다더군요. 닻도 손으로 올리고 내리고, 냉장고는 당연히 없고요. 대신 병조림을 만들어 음식을 장기 보관한다고 했습니다. 본인들이 직접 수리하지 못하는 장비는 배에 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더군요.
5년간 세계일주 중인 뉴질랜드 아저씨도 만났습니다. 코로나 때 권고 휴직 당한 파일럿인데, 그 김에 아예 세계일주를 시작해, 운항이 정상화된 되에도 회사의 압박을 꿋꿋이 버티고 있다더군요. 이제 태평양만(!) 횡단하면 뉴질랜드에 돌아가 여행이 끝난다더군요. 태평양만...이라. 이 곳에서 참 다양한 형태의 세일러들을 만났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웨더 윈도우가 보이지 않는 점은 걱정이었습니다. 설 연휴 전에는 한국에 돌아가야 할텐데 말이죠. 테나카티타에 머무는 다른 배들은 여기서 3월까지 지내다 봄에 부는 남풍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반면, 우리는 겨울 내내 부는 강한 북서풍을 뚫고 올라가야 하니 조바심이 났죠. 특히 코리엔테스를 바람 강한 날 돌아 올라가려다는 추억의 멘도시노 시즌 2를 맞이할 위험이 컸습니다.
타냐와 에디는 다시 식량이 바닥나 바라를 향해 떠났습니다. 마지막 날, 남은 야채와 과일을 안겨주고 갔는데, 마치 전쟁 구호물자를 배급받는 것 같았습니다. 요긴하게 먹었지만 그마저도 곧 떨어졌습니다. 다시 바라에 가느니, 조금이라도 북쪽에 있는 챠멜라를 향해 출항했습니다.
다시, 챠멜라

오랜만에 굿 바람이었습니다. 사실 북풍이었지만, 서북쪽으로 올라가는 우리 뱃머리와 각도가 맞아 즐거운 세일링을 했습니다.
다만, 엔진 끈 상태로 오토파일럿을 오래 켜 둔 탓이었을까요? 배터리가 좀 요상했습니다. 보통 12-13볼트를 유지해야 하는데 11볼트까지 떨어지고 인버터 작동이 멈추더군요. 호라이즌스는 인버터가 없으면 핸드폰 충전이 안 되는 게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산블라스까지만 버티자'는 계산이었습니다. 호라이즌스는 일 년 동안 겨울잠을 잘 테니, 내년에 배터리를 교체하는 게 효율적인 것 같았거든요.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남풍 웨더 윈도우가 드디어 예보에 떴습니다. 일주일 뒤였죠. 처음 왔을 때 매력 빵 점이었던 챠멜라는, 오랫동안 외진 곳에 있다 온 우리를 문명의 향기로 설레게 했습니다. 먹고 싶은 것 실컷 사 먹고 근처 마을에도 놀러다니며 일주일 재미있게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아껴 쓰던 핸드폰과 휴대용 배터리를 충전해야 할 때가 와서 엔진 시동을 걸었습니다. 배터리는 이제 9-10까지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런뒈!!
스타터 배터리에서 연기가 나더군요!
급히 시동을 끄고 친구들에게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답은 하나같이 "그거 안 좋은데!", "굉장히 나쁜 신호야!" 등 심각한 반응이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다시 시동을 걸면 배터리가 폭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 닻 내린 배에서 배터리 폭발이라뇨 ㅠㅠ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해 베테랑 친구들에게 정신없이 문자를 보내고 있었지만, 핸드폰 밧데리도 얼마 없는 암담함이란... 혹여나 강풍에 닻이 밀려도 엔진을 켤 수 없는 초조함이란...
그나마 외딴 테나카티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습니다. 고무보트로 해변에 가면 택시를 탈 수 있었거든요. 택시를 대절해 3시간 왕복해서 배터리 일체를 새로 사 왔습니다. 까맣게 타 버린 배터리 케이블도 온 동네를 뒤져 찾아냈습니다.
배터리를 새로 갈고 나니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배터리를 연결하자 전압이 16볼트 이상을 찍었습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AI에게 물어가며 연결하고 있었는데, 이노무 AI가 과충전 상태라 매우 위험하다며 난리를 치더군요.
전압을 안정시키니 알터네이터 충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하나 문제가 터졌습니다. 배터리 스위치를 떼어 보니 하우스 배터리와 스타트 배터리 연결이 반대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시동 배터리를 하우스 배터리처럼 써왔던 셈이니, 연기 날 만했죠. 그나마 스위치 자체도 맛이 간 듯했고요. “0”에 놔도 모든 전기가 살아 있더군요. 진심으로 배 고치는 세일링에 신물이 났습니다. 아는 게 없으니 AI 채팅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번번이 큰일 났다며 호들갑을 떠니 정신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이 괴로운 일주일 동안, 배터리 시스템을 몸으로 익히게 되었습니다. 배터리 연결부터 태양광 충전, 알터네이터 벨트, 레귤레이터, 전압 센서까지. 원해서가 아니라 강제로 한 사이클을 통째로 공부한 셈이었죠. 번번이 패닉하는 우리를 타냐와 에디가 붙잡아 주었습니다.
결국 배터리 문제로 그 일주일을 순삭해버렸습니다. 꼬리를 물고 터지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동안, 강풍이 불면 얼마나 간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엔진을 켤 수 없는 신세였으니까요. 그래도 큰 문제들은 해결하고, 마침내 남풍이 부는 날이 왔습니다.

다시, 산블라스
이번엔 끝내주는 항해가 될 참이었습니다. 바람도, 조류도 다 우리편인 황금 타이밍. 3주간 이 웨더 윈도우를 조마조마 기다렸죠. 심지어 달마저 보름달이었습니다.
파도는 좀 높았지만 보름달 아래 세일 펴고 가는 항해는 배터리 문제로 고생한 보상으로도 충분해 보였습니다. 바다 위에서 부서져 빛나는 보름달은 사람 마음을 어찌나 흔드는지, 항해 내내 옛날 고리짝 노래들이 줄줄이 떠올랐습니다. 30년 만에 처음 다시 듣는 곡도 있었고요. 뭐 이런...
다음날도 종일 항해를 하고 이제 저녁, 중간에 한 번 쉬어가려던 계획을 접고, 산블라스 바로 근처, 마찬탄 만까지 한 번에 가 닻 내렸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산블라스에 입항하기로 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지만 보름달이 있으니, 익숙한 모항 산블라스이라면 밤에도 입항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찬탄 만도 건너뛰고 바로 산블라스로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입항하지 못하면 이틀째 샤워를 못 한다는 절박함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마찬탄 만은 물이 깨끗하지 않고 헤헤네 천지라 샤워는 언감생심이거든요. 조금 무리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산블라스 입항을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강어귀에 들어서자 GPS가 먹통이 되었습니다. 최근 인근 지역 마약 카르텔들의 GPS 재밍jamming(고의로 교란)이 있다더니, 여태 괜찮다가 하필 이 순간에 말이죠. 선주는 뱃머리에서 손전등을 비추고, 저는 수심계를 번갈아 보며 조타를 했습니다. 익숙한 곳이지만, 빛도 없고 GPS도 없이 얕은 강을 거슬러 오르는 건 전혀 다른 일이더군요.
아슬아슬하게 강을 따라 올라가 임시 계류장에 접안하려는 순간, 바로 앞에 다른 배가 있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바로 앞에 배 있어!"
급히 배를 돌리는데 곧 배가 쓰윽- 멈추었습니다. 수심 얕은 곳에 그라운딩한 것이었습니다. 기어를 후진에 넣고 아무리 용을 써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야간 조업 나가던 어선 한 척이 지나갔습니다. 필사적으로 소리쳐 불러 세우고, 줄을 묶어 당기게 해 배를 빼내고,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계류에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옆 배에 거의 부딪힐 뻔했고, 그야말로 패닉의 클라이막스였습니다.
그래도 결국, 산블라스의 땅을 밟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결핍이 있어야 만족이 있나니, 충분한 식량, 닻 걱정 없는 숙면, 콸콸 맘껏 쓸 수 있는 물 등이 이렇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지겹던 타코마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골때리는 항해였습니다. 끊임없는 배 고장, 매일 처음 겪는 문제들, 패닉과 초조함. 그 순간순간엔 “다신 안 온다”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이렇게 뉴스레터로 항해 이야기를 풀다 보니, 또 신이 나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무난하고 안전한 항해였다면 구독자님께 이렇게 길게 보낼 이야기 거리도 없었겠죠.
문득 호라이즌스 한 구석의 액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그 유명한 격언이죠. 20년 뒤엔 했던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더 후회하게 될 거라고. 그러니 안전한 항구를 떠나 돛을 올리고 항해하라고.

…뭐, 저는 이번 겨울 충분히 항해한 것 같으니, 당분간은 항구에 얌전히 묶여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즐거운 설날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Twenty years from now you will be more disappointed by the things you didn't do than by the ones you did. So throw off the bowlines. Sail away from the safe harbor. Catch the trade winds in your sails. Explore. Dream. Discover. ...Mark Tw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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