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아리랑'과 귀신 보는 변호사 '신이랑' | 누가 내 맘을 대신 말해줄까?

2026.03.27 | 조회 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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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에일리언스' 들어보셨나요?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노래에서, 갑자기 익숙한 이름 하나가 툭 튀어나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Pardon 김구 선생님 tell me how you feel."

"김구 선생님, 기분이 어떠신가요?"라며 역사 속 인물에게 질문을 건네는 이 대목, 참 묘하지 않나요? 생전에 백범 김구 선생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말을 남겼죠. 그가 그토록 염원했지만 미처 누리지 못했던 그 '문화의 힘'을 지금 BTS가 전 세계 무대에서 실현하고 있으니, 어쩌면 이 가사는 가장 성공한 후배가 선배에게 전하는 선물 같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장면에서 저는 아주 오래된 어떤 역할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목소리 없는 자, 혹은 닿을 수 없는 자를 '대신해 말하는 대리인'의 역할 말입니다.

 

아리랑, 21세기의 문법으로 부활하다

BTS 
BTS 

BTS의 이번 앨범 <아리랑>에는 한국적 요소가 아주 깊숙이 새겨져 있습니다. 첫 트랙 '바디 투 바디' 후반부에는 구슬픈 아리랑 선율이 흐르고, 'No.29'에는 선덕대왕신종의 웅장한 타종 소리가 울려 퍼지죠.

앨범명인 '아리랑'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본래 아리랑은 전국을 유랑하던 소리꾼들이 고개를 넘으며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이별과 기다림의 정서가 켜켜이 쌓인 민족의 노래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빼앗긴 것들에 대한 한(恨)'이 덧입혀졌죠.

BTS는 이 무거운 '한'의 정서를 과거의 유물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슬픔과 이별이 쌓인 아리랑을 21세기 음악의 문법으로 세련되게 재해석해 전 세계 관객 앞에 꺼내놓았죠. 마치 과거의 상처를 위로하는 대리인처럼요.

 

질문을 법정으로 가져온 사람들

SBS <신이랑 법률사무소> 스틸컷 
SBS <신이랑 법률사무소> 스틸컷 

재밌게도,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최근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에서도 이 '대리인'의 코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법정은 현대 사회가 억울함을 합리적으로 해소하도록 설계한 공간이고, 변호사는 '말 못 하는 자를 대신해 발언하도록' 제도가 허락한 공식적인 대리인이죠. 그런데 여기에 '귀신 보는 변호사'라는 독특한 설정이 더해집니다. 망자의 억울함을 법정에서 대신 풀어주는 순간, 이 드라마는 단순한 오컬트 장르물을 넘어 맺힌 것을 풀어주는 '해원(解冤)의 현대적 의식'이 됩니다.

망자의 억울함이 속 시원하게 풀릴 때 시청자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단순한 재미 그 이상입니다. 우리 DNA 깊은 곳에 자리한 오래된 감각이 자극되는 기분이랄까요.

 

 

에디터의 시선

두 콘텐츠를 나란히 놓고 보며 생각했습니다. 한국인이 말하는 '한'은 그저 주저앉아 우는 슬픔이나 체념이 아니라, 무언가를 움직이게 만드는 펄떡이는 에너지에 가깝다는 것을요.

우리는 오래전부터 혼자 앓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자의 넋은 무당이 신을 불러 대신 전했고, 핍박받던 민중의 울분은 광대가 판소리로 대신 풀어주었죠. '한'이라는 정서는 언제나 맺힌 것을 풀어줄 중재자를 필요로 했고, 오늘날에는 K콘텐츠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셈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목끝까지 차오른 억울한 말이 있는데 상황 때문에 삼켜야 할 때, 혹은 내 감정을 나조차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때요. 그럴 때 영화 속 주인공이 내 마음을 찌르는 대사를 대신 읊어주거나, 노래 가사 한 줄이 내 일기장 같을 때 우리는 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느낍니다.

지금 K콘텐츠가 '한'이라는 오래된 정서를 다시 꺼내 드는 건 단순한 전통 계승이 아닐 겁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감각, 그리고 누군가 대신 나서주기를 기다리는 목소리들이 세상엔 여전히 많다는 뜻이겠죠.

"Pardon 김구 선생님"이라는 가사 한 줄이 전 세계의 팬들에게 닿아 떼창으로 불리는 것을 보며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억울함을 대신 말해주고 위로하는 이 대리인의 에너지는, 어쩌면 한국을 넘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보편적인 치유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고요.

 

함께 보면 좋은 작품

드라마 | SBS, 〈모범택시〉 시리즈

<모범택시> 스틸컷
<모범택시> 스틸컷

"정의가 실종된 사회, 전화 한 통이면 오케이." 억울한 피해자들을 대신해 사적 복수를 대행해 주는 택시 회사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내 억울함을 대신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판타지와 '한'의 정서를 가장 통쾌한 액션 활극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대리인으로서 쾌감을 느끼고 싶을 때 추천합니다.

 

영화 | 장재현, 〈파묘〉 

<파묘> 스틸컷 
<파묘> 스틸컷 

 

천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오컬트 영화 역시 밑바탕에는 '한'과 '대리인'이라는 키워드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무당, 풍수사, 장의사가 묘를 이장하며 한반도 땅에 맺힌 끔찍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직접 대면하고 씻어내는(해원) 과정을 그립니다.

 

[Coming Soon] 대중문화로 나를 읽는 시간, <에디터 소서의 대중문화 클럽>

드라마 속 한 장면, 영화의 대사 한 줄에서 내 삶의 문장을 발견한 적 있나요? 혼자만 간직하기엔 아까운 그 감상들, 이제 함께 나누고 싶지 않으신가요.

함께 콘텐츠를 보고, 쓰고, 대화하며 나만의 시선을 선명하게 만드는 멤버십 클럽을 준비하고 있어요. 구체적인 일정과 커리큘럼은 조율 중이지만, 관심 있는 분들께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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