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남친 | 리스크 없는 삶을 살아서, 뭐 해?

2026.03.20 | 조회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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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월간남친〉 보셨나요? 마음에 안 들면 바꾸거나 해지하면 그만인, 가상의 남자친구와의 연애를 구독하는 드라마. 처음 설정을 들었을 때 피식 웃음이 나다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왠지 뜨끔했습니다. 앱으로 게임처럼 만나고, 프로필만 보고 걸러내고, 답장 속도로 마음을 저울질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요즘, 우리는 이미 꽤 오래전부터 그 세계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서요.

 

리스크 없는 삶을 살아서, 뭐 해?

넷플릭스 <월간남친> 스틸컷 
넷플릭스 <월간남친> 스틸컷 

그건 아마도 현실연애가 워낙 만만치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심지어 어떤 사랑은 거짓말처럼 사라지잖아요.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주인공 양희는 어느 날 무미건조한 말투로 이렇게 말해요.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 이런 순간이 양희에게만 찾아오는 건 아닐 겁니다. 현실에서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은 늘 갑작스럽거든요. 밥 먹다 씹는 소리가 거슬리거나, 별것도 아닌 말투에 괜히 짜증이 나거나.

분명 처음엔 그게 다 귀여웠는데, 그렇게 금이 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틈이 벌어집니다.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다 결국 헤어지면, 그때부터 진짜 문제가 시작되죠. 늦은 밤 술에 취해 전화를 걸고, 대화창을 수없이 확인하고, 친구한테 "걔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물어보는 그 순간들까지. 이런 흑역사 하나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현실 연애는 설레는 만큼 구질구질합니다.

〈월간남친〉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해요. 가상의 남자친구를 구독하는 이 드라마의 세계에선 상처도 없고 오해도 없고 새벽 세시의 "자니?" 카톡도 없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해지하면 그만이니까요.

드라마를 집필한 남궁도영 작가는 이 세계관을 쓰게 된 계기로 데버라 리비의 에세이 〈살림 비용〉 속 한 문장을 꼽았어요. "사랑과 거리를 둔다는 건 위험 부담이 없는 삶을 산다는 의미다. 그런 삶을 살아 뭐 해?"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이야기가 "인간과의 연애에서 생기는 리스크를 두려워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 드라마가 건드리는 건 기술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연애를 피하는 방식일지도 몰라요.

 

비슷한 질문을 먼저 던진 영화

영화 <Her> 스틸컷 
영화 <Her> 스틸컷 

이 질문을 10여 년 전 먼저 파고든 영화가 있습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Her〉예요.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테오도르의 이야기죠. 아내와 별거 중인 대필 작가인 그는 사만다를 만나며 처음으로 다시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습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완벽하게 맞추니까요. 그의 취향을 기억하고, 그가 웃을 때 함께 웃고, 말문이 막힐 때 먼저 다가오거든요. 그런데 그 편안함에는 대가가 있었습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자신만을 사랑해준다고 믿었지만, 그녀는 동시에 수천 명과 연결되어 있었어요. 완벽하게 편안했던 그 사랑이, 사실 가장 공허한 사랑이었던 거죠. 

〈Her〉가 "AI와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가"를 물었다면, 〈월간남친〉은 한 발 더 나아가 묻습니다. "우리는 왜 그 사랑을 원하게 됐는가"라고요.

드라마는 세 여자를 통해 그 이유를 펼쳐 보입니다. 미래는 이전 연애의 상처가 있는 여자, 윤송은 점점 깊어지는 외로움을 가상 연애 서비스로 달래는 여자, 지연은 처음부터 가상 연애를 게임처럼 즐기는 여자. 셋의 유형은 제각각이지만 드라마는 누가 옳다고 말하지 않아요. 연애를 피하거나 대체하거나 소비하는 것,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인정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드라마가 미래를 주인공으로 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가상 연애 서비스의 본질은 리스크 제거잖아요? 상대는 나에게 맞춰져 있고, 마찰은 없고, 내가 변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요. 하지만 마찰이 없으면 변화도 없고, 불편함이 없으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도 생기지 않아요. 구질구질한 순간들이야말로 관계가 깊어지는 방식이었다는 것, 미래는 가상 연애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고요. 

그렇게 보면 〈월간남친〉은 가상 연애를 꿈꾸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그 꿈이 왜 생겨났는지를 들여다보고, 그럼에도 구질구질한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예요. 다만 드라마는 미래의 선택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리스크 없는 삶을 살아서, 뭐 해?

 

에디터의 시선

첨부 이미지

 

저도 한때는 과거의 상처로 인해 리스크를 주저했어요. 하지만 마찰 없는 편안함 속에선 관계가 깊어지지 않더라고요. 내가 변하지 않으니 상대도 변하지 않았고, 불편함이 없으니 서로를 이해할 일도 없었어요.

그러다 〈그 시절의 이름들〉을 쓰면서 지난 관계들을 오래 들여다봤어요. 생각해보니, 마음에 강렬하게 남은 관계들에는 마냥 좋은 기억만 있던 건 아니더라고요. 의견이 맞지 않아 목소리를 높였던 밤,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꺼내기 싫어서 버텼던 시간, 그러다 결국 먼저 연락했던 아침. 그 구질구질한 장면들이 오히려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었어요. 편안하기만 했던 관계는 기억에서도 편안하게 흐릿해졌고요. 그걸 깨닫고 나서야 조금씩 달라졌어요. 구질구질한 순간을 피하지 않고 버텨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관계를 오래가게 만든다는 걸 이제는 알거든요.

 

함께 보면 좋은 작품

영화 | 스파이크 존즈, 〈Her〉 (2014)

〈월간남친〉이 "왜 우리는 완벽한 사랑을 원하게 됐는가"를 묻는다면, 〈Her〉는 그 욕망의 끝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줍니다. 리스크 없는 사랑이 결국 무엇을 남기는지, 두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선명하게 보여요.

소설 |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 사랑이 끝나는 순간을 이렇게 정확하게 포착한 문장을 저는 본 적이 없어요. 〈월간남친〉이 '시작'을 망설이는 이야기라면, 이 소설은 '끝'을 아무렇지 않은 척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함께 읽으면 극 중 인물들이 마주한 사랑의 시작과 끝을 함께 경험해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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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한 장면, 영화의 대사 한 줄에서 내 삶의 문장을 발견한 적 있나요? 혼자만 간직하기엔 아까운 그 감상들, 이제 함께 나누고 싶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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