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1. 스페이스X는 과거 NASA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대체하며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우주 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2. 일반적인 딥테크 기업들은 자신만의 기술과 특허를 먼저 개발한 후에,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 나섭니다.
3. 이런 '해결책 기반' 접근법으로 창업한 딥테크 기업들은 제대로 된 문제를 찾는 중에 런웨이가 소진되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이와 반대로 스페이스X는 화성 이주라는 과제를 장기 비전으로 제쳐두고, '로켓 발사 비용이 비싸다'라는 구체적이면서 시장성 있는 문제를 먼저 정의했습니다.
5.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직 계열화 전략과 로켓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는 '문제 기반'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6. 또한 스페이스X는 런웨이를 늘리기 위해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MVP 형태의 로켓으로 기술 검증에 나섰고, 클라이언트인 NASA와의 소송도 피하지 않을 정도로 수주 경쟁에 대담하게 임했습니다.
스페이스X, 민간 항공 우주 산업의 문을 열다
이제, 정부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민간 항공 우주 기업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눈부시게 돋보이는 선두업체가 바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쏘아올리던 로켓을 민간 업체들이 과연 혼자 힘으로 발사할 수 있을 지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1년 현재, 스페이스X는 오히려 NASA보다 탁월하고 뛰어날 수 있음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스페이스X는 2008년 민간 기업으로선 최초로 액체 연료 로켓을 발사해 지구 궤도에 도달합니다. 2010년엔 민간 기업 최초로 우주선을 발사해 회수했고, 2013년에는 정지궤도에 인공위성을 쏘아올립니다. 2015년엔 로켓을 발사하고 남은 부스터를 다시 지상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하고, 2020년엔 민간 최초로 국제우주정거장에 우주인을 보냅니다. NASA가 70여 년에 걸쳐 수 백 조의 예산을 투입해 이뤄낸 성취를, 일개 민간 기업이 20여 년 만에 성큼성큼 뒤따라간 겁니다. 로켓을 발사하는 것에서부터 우주정거장으로 우주인과 화물을 수송하는 것까지, 스페이스X는 성공적으로 NASA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스페이스X가 딥테크 기업으로서 이룬 가장 돋보이는 성취 중 하나는, 재활용을 통해 로켓 발사비용을 혁신적으로 절감했다는 겁니다. 발사 비용이 낮아지자 더 많은 인공위성을 저렴한 가격으로 궤도에 띄울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대중에도 잘 알려진 ‘스타링크(Starlink)’라는 이름의 위성통신 사업까지 계획하게 됐습니다. 스타링크는 2020년 11월 이미 북미에서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서비스 대상 지역을 점차 넓혀가며 최종적으로는 전세계에 초고속 인터넷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 본인의 예상이긴 하지만,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 사업을 통해 연 300억 달러의 매출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시장도 이런 사업 가치를 인정해주고 있는데요. 올해 2월 스페이스X는 8억 5,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무려 82조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 밖에도 스페이스X는 우주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소행성으로 로켓을 발사해 광물을 채굴하는 우주 탐사 사업, 항공기 대신 우주선으로 승객을 먼 거리까지 빠르게 수송하는 우주 항공 사업, 달로 사람을 보내는 우주 관광 사업까지 꿈꾸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들을 기반으로, 스페이스X가 꿈꾸는 최종 목표는 인간을 다행성 종족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스페이스X는 설립된 지 불과 20년도 되지 않은 민간 기업입니다. 그런데 NASA가 70년 간 쌓아온 발자취를 빠르게 뒤따라잡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스페이스X가 지금 우주 기술 영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딥테크 기업 중 하나임에 쉽사리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스페이스X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요?
스페이스X는 NASA, 그리고 다른 딥테크 기업들과 무엇이 달랐을까요?
1. Problem first, 문제부터 정의하다
이제는 바이블이 돼버린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법론에 따르면,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제 정의입니다. 사업 초기에는 제일 먼저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그 문제가 고객이 돈을 내고 해결하고 싶어할 만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부터 정확히 파악하는 데 집중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 기반(Problem-oriented) 접근법과 반대로, 많은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기술 기반적(Technology-oriented)인 접근법을 취합니다. 먼저 원천 기술을 개발해 특허나 논문을 쓰고 나서, 이를 활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나가는 거죠. 그런데 딥테크 기업의 창업자들은 일단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를 시장에 적용하는 것은 아예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딥테크 기업들이 복잡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돈이 되지 않는 문제에 매달린다거나, 시장-제품간의 핏(Product-market fit)을 잘 맞추지 못해 실패하게 됩니다.
이와 달리, 스페이스X는 문제 기반(Problem-oriented) 접근법을 취합니다. 보통의 딥테크 기업들은 특허나 기술부터 개발한 다음 이걸 이용해 해결 가능한 문제를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스페이스X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부터 정의하고, 그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와 자원을 탐색했다는 건데요. 스페이스X가 처음 창립된 2002년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사실 우주 탐사의 꿈을 꾼 억만장자는 일론 머스크가 처음이 아닙니다. 스페이스X가 세워지기 직전인 1997년, 빌 은행(Beal Bank)을 세워 큰 돈을 벌어들인 앤디 빌(Andy Beal)이란 이름의 억만장자 역시, 우주 탐사를 꿈꿉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빌 에어로스페이스(Beal Aerospace)라는 회사를 창업합니다. 하지만 수 천 억의 사재를 쏟아붓고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3년여 만에 폐업했는데요. 그만큼 우주 기술은 엄청난 규모의 자본과 고난이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면서, 단기간에 수익을 낼만한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은 없는 어려운 딥테크 영역이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꿈이었던 화성 탐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페이스X의 비전은 화성 이민을 통해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었죠. 하지만 사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한들, 화성에 인류를 이민 보내는 것은 단시간 내에 이뤄지기 어려워 보입니다. 일론 자신도 이를 알았기에, 본인이 죽기 전에 화성 이민은 진행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누가 보더라도, 화성이라는 낯선 행성으로 수백 만 명의 인간을 이주시키는 것은 엔지니어나 사업가로서 풀기 어려우면서도 이윤을 내기 힘든 고난이도의 문제입니다. 차라리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몇몇 부자의 뜬구름 잡는 몽상 정도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생각될 정도죠. 만일 스페이스X가 처음부터 인류를 화성에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사업 시작부터 전재산을 ‘영끌’해서 쏟아부어 노아의 방주 같은 대규모 우주선을 만들고 초대형 로켓을 개발했다면, 지금쯤 인류가 화성에 정착할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제대로 된 로켓조차 발사하지 못한 채로 스페이스X가 10년 전에 진작에 망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스페이스X는 화성 탐사를 장기적인 비전으로 제쳐두고, 더 작은 규모의, 더 쉽게 해결 가능하며, 더 빨리 이윤을 낼 수 있는 문제를 찾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생물을 보내 실험을 할 방법을 찾던 중, 로켓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스페이스X의 비전처럼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들려면, 화성에 거주하는 인구가 적어도 1억 명은 돼야 할 겁니다. 우주선 하나에 1백 명을 태우고 간다고 하면, 1억 명을 보내기 위해선 화성을 향한 로켓을 1백만 번은 발사해야 할 텐데요. 로켓 하나를 발사하는 데 1천억 원이 든다고 하면, 1백만*1천억원입니다. 굳이 계산해볼 필요도 없이, 이것이 어떤 민간 기업이나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요. 결국, 화성에 인류를 보내기 위해 풀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로켓 발사 비용을 저렴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게 일론 머스크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스페이스X는 자신들이 풀어야할 문제로 로켓 발사 비용 절감을 선택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데 매진합니다.
발사 비용 절감을 위해 스페이스X가 취한 전략은 크게 2가지인데요.
1) 수직계열화
첫번째는 수직계열화입니다. 처음 스페이스X를 설립하고 기존 항공 우주 산업의 외주 업체들을 만난 일론 머스크는 이 바닥에 심각한 비효율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많은 종류의 정부 지원 사업이 그렇듯, 부품업체들이 느린 속도로 제품을 만들면서 과다한 비용을 청구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스페이스X가 택한 방법은, 엔진부터 발사체, 우주선까지 모든 걸 직접 만드는 겁니다. 물론 작은 나사 하나까지 모든 디테일을 직접 만드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 비싸면서 성능이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부품이 있다면, 관련 전문가를 영입해서 직접 만들어 쓰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수직계열화 전략을 통해 스페이스X는 더 저렴하면서 최적화된 성능의 부품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됐고, 동일한 전략이 후일 테슬라 비즈니스에도 사용됩니다. 현재 스페이스X는 이런 내재화를 통해 소프트웨어부터 하드웨어까지 전체 부품의 무려 85% 가량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2) 로켓 재사용
두번째는 로켓 재사용입니다. 수 백, 수 천 톤의 화물을 싣고 대기권을 돌파하기 위해 우주선은 엄청난 추진력을 필요로 합니다. 나아가 지구 궤도를 넘어 화성이나 소행성까지 날아가기 위해선 시속 1-2만km로 날아갈 압도적인 에너지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요. 이렇게 어마무시한 힘에 조금이라도 더 보태기 위해, 우주선은 다 쓴 연료통과 추진체를 공중에서 단계적으로 분리해 지상으로 추락시킵니다. 추락한 추진체는 보통 바다 위로 떨어져 가라앉거나, 회수되어 폐기되는데요. 비유로 표현하자면, 여객기를 새로 취항시켜 인천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승객을 실어나르고, 그 비행기를 바로 바다에 버리는 셈입니다. 누가 봐도 엄청난 낭비로 볼 수밖에 없는데요. 때문에 로켓 발사 비용 절감의 키는 재사용 가능성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5년 스페이스X는 1단 추진체 회수에 성공하고, 이후 회수한 엔진으로 다시 로켓을 발사하는 데까지 성공합니다. 최근 2021년 5월에는, 하나의 1단 추진체를 무려 10번이나 재사용하는 데 성공하는 대기록을 세우기까지 합니다.
이런 전략들을 통해 스페이스X는 과연 비용을 얼마나 절감했을까요? 1981년까지만 해도, 우주에 1kg의 화물을 보내는 데는 무려 $85,216/kg가 들었다고 합니다. 이 비용은 1995년 $26,884/kg까지 감소합니다. 그런데 2017년 스페이스X가 팔콘9을 발사할 때는 이 비용이 $1,891/kg로 줄어들었고, 2020년에 팔콘 헤비를 발사하면서 다시 $951/kg까지 줄어들었습니다. 20여 년 전에 비해 무려 1/10, 1/20 이하로 줄어든거죠. 앞으로 로켓을 10번, 20번, 30번 더 많이 재활용할 수 있다면, 이 비용은 앞으로 더 파괴적인 속도로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볼 수 있을 겁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비행기 타듯 우주선을 탈 수 있을 정도로까지 말이죠.
2. 스마트하면서 처절한 런웨이 늘리기
이 정도까지 비용이 줄어든다면, NASA 입장에서도 굳이 안전 리스크를 감수하고 비싼 예산까지 들여가며 직접 로켓을 발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따로 계산해볼 필요도 없이, 우주로 승객/화물을 운송하고 저 멀리 소행성까지 로켓을 발사하는 일까지 모두 스페이스X에 외주를 주는 편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겠죠. 이렇게 NASA로부터 항공 우주 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것이 스페이스X가 이제까지 생존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비즈니스 모델이 됩니다.
- 2006년 상업용 궤도 운송 서비스(COTS) 프로그램 계약 체결 ($28억 달러)
- 2008년 상업용 재보급 서비스(CRS) 계약 공동 체결 ($35억 달러)
- 2011년 통합 발사 탈출 시스템 개발 계약 체결 ($75백만 달러)
- 2014년 상업용 승객 운송 시스템 개발 계약 공동 체결 (68억 달러)
- 2016년 미 공군 GPS 발사 계약 체결 (8천만 달러)
- 2020년 미 국방부 미사일 추적 위성 건설 계약 체결 (1억 4천만 달러)
- 2021년 달 착륙선 개발 계약 체결 (29억 달러)
그동안 스페이스X가 수주해온 굵직굵직한 계약만 줄잡아도 이렇게 끝없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제서야 스타링크, 우주 운송, 소행성 광물 채굴 등의 사업으로 대중에 유명해지고 있지만, 사실 스페이스X의 주요 수입원은 정부의 우주 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외주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주하고 수행하지 못했더라면, 수많은 이름없는 우주 스타트업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이스X도 위키피디아의 한 페이지 정도로만 남고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돋보이는 것은 미국 정부의 지원 정책인데요. 민간 기업들에 기술적 마일스톤을 제시하고, 이를 스스로 달성해나가도록 풍부한 재정 지원과 함께 적극적으로 유도합니다. 우주 사업은 10억, 100억 정도의 시드 머니로는 수행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스페이스X가 그토록 많은 비용을 절감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로켓 하나 쏘는 데 수 천 억의 돈이 들 정도로 엄청난 자본집약적 산업이니까요. 아무리 일론 머스크가 페이팔을 엑싯하면서 억만장자가 됐다 한들, 자기 자본만을 가지고 사업했더라면 3년 안에 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순히 스페이스X가 미국에서 창업해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미국 시장에서도 미국 정부의 펀딩을 받을 수 있는 우주 스타트업들이 무수히 많이 출현했다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동일한 배경 안에서도 유독 스페이스X라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뒤에는 런웨이(갖고 있는 자금으로 회사를 운영 가능한 시간)를 늘리기 위한 스페이스X만의 노력이 숨어 있었습니다.
1) MVP부터 만들기
앞서 일론 머스크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식 문제 해결 방법을 우주 산업에 적용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런웨이를 늘리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도 이런 실리콘밸리식 접근법이 빛을 발합니다. 앞에서 린스타트업 이야기를 하며, 스타트업들이 창업 초기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의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었는데요. 문제를 찾았으면, 이에 대한 솔루션을 구상하고 빠르게 테스트해봐야 합니다. 과연 내 솔루션으로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지? 내 솔루션에 고객들이 돈을 지불할지? 검증해보는 거죠. 그러려면 일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프로토타입 형태의 제품이 필요하겠죠. 이를 MVP(Minimum Viable Product)라고 합니다. 사업성이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제품으로 시장성을 테스트하는 게 목적인 거죠. 스페이스X 역시 MVP를 만드는 데서 시작합니다.
스페이스X가 현재 보유한 로켓 중 가장 강력한 모델은 팰컨 헤비인데요. 무려 63,800kg의 화물을 저궤도까지 운반할 수 있는 높이 70M의 대형 로켓입니다. 하지만 스페이스X의 첫 시제품 팰컨 1은 이에 비하면 작디 작은 소형 로켓이었습니다. 팰컨1은 높이 21M로 팰컨 헤비의 1/3 수준에 불과했고, 운반 가능한 화물은 팰컨 헤비의 1/10 수준인 670kg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사에 세 차례 실패하면서, 발사 비용으로 인한 부담으로 스페이스X는 2008년 파산 위기에까지 몰렸다고 합니다. 첫 번째 팰컨 1은 발사 25초 만에 해상에 추락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역시 궤도 진입에 실패하고 맙니다. 만약 이 3개의 로켓이 모두 팰컨 헤비와 같은 대형 로켓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발사 비용을 줄이니 마니 하기 이전에, 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기술조차 갖추지 못한 채 스페이스X는 파산했을 겁니다. 최소한의 기능을 구현한 가장 작은 제품으로 테스트를 진행하는 사업 방식 덕에, 스페이스X는 런웨이를 극대화하고 파산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2) 소송까지 각오한 대담함
자금 확보를 위한 스페이스X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요. 혹자는 “미국 정부에서 대놓고 스페이스X를 밀어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미국 정부와 스페이스X는 우리가 상상하는 단순한 후견인-피후견인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2004년 NASA는 로켓을 우주로 쏘아올리고 그 발사 데이터를 공유하는 조건으로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Kistler Aerospace)와 2억 2,700만 달러의 수의계약을 체결합니다. 여기에 일론 머스크는 극렬하게 반발하는데요. 공개경쟁입찰이 아니라 1대1 수의계약이었기에 스페이스X가 참여할 수 없었다는 점을 들어, 정부 사업 입찰 프로세스의 불공정성을 지적한 겁니다. 결국 스페이스X는 NASA를 상대로 입찰 무효 소송까지 겁니다. 생존을 위한 자금줄이자 가장 큰 사업 파트너인 NASA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건다는 게 상상이나 가시나요? 심지어는 이슈를 공론화하기 위해 일론 머스크가 직접 미 의회 상원 위원회에 나가, 입찰 과정의 불공정성과 이로 인한 예산 낭비 사례에 대해 의원들 앞에서 강력하게 불만을 제기하기까지 합니다. 일론 머스크의 이렇게 공격적인 태도에 대해 주변인들이 말리기까지 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NASA를 강하게 비판했다고 하는데요. 결국 미국 회계감사원(GAO)까지 나서서 NASA를 압박하게 됐고, NASA는 Kistler Aerospace와의 2억 달러 규모 수의계약을 철회합니다.
정부 사업 수주는 스페이스X에 있어 단순 자금 지원이 아닌, 생존을 위한 Key였습니다. 그런 사업의 입찰 과정에 불공정함이 끼어 있었다면 당연히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이런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직접 NASA에 소송을 거는 행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이런 대담하고 적극적인 액션 덕에 정부 사업 입찰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해지면서, 스페이스X가 지금까지 생존해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스페이스X가 수주해온 정부 사업들은 단순한 밀어주기나 행운이 아니었단 겁니다.
제로 투 원,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다
이런 요건들을 충족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우주 딥테크 기업이 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페이스X와 같은 실리콘밸리식 접근법을 취했지만 어려움에 빠져 이미 도산했거나, 도산 위기에 처한 딥테크 기업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일론 머스크 역시 스페이스X의 사업을 시작하며, 망할 것을 각오하기도 했습니다. 또 지금은 그 미래가 밝아보이는 스페이스X지만, 앞으로 몇 년 안에 무슨 일이 터져 망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로켓을 쏘아올릴 수 있는 경쟁자들이 나타날 수도 있고, 스타링크의 위성 인터넷 사업이 제대로 된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고 망할 수도 있습니다.
스페이스X의 사업 역시, 화성에 인류를 이주시키겠다는 비전을 이루기엔 아직 한참 멀어 보입니다. 목표가 100이라면, 이제 겨우 0에서 1로 발걸음을 뗀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우리가 언젠가 민간기업을 통해 달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을, 소행성에서 니켈을 채굴할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을 0에서 1로 바꿨다는 점에서 스페이스X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References
- How the innovative Supply Chain approach of SpaceX contributed to success of Crew Dragon (Supplhi, 20/05/30)
- 일론 머스크, 미래의 지배자(애슐리 반스)
- SpaceX: Revolutionizing Space Travel (Harvard Business School, 15/12/9)
- Elon Musk touts low cost to insure SpaceX rockets as edge over competitors (CNBC, 20/04/16)
- Obama Budget: NASA Would Have Private Companies Launch Astronauts (ABC news, 10/02/02)
- Rocket maker loses $227M deal (Bizjournals, 04/07/04)
- California judge ends SpaceX’s lawsuit against the U.S. Air Force (Spacenews,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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