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scrap of this week'는 1️⃣ 한주 요약, 2️⃣ 불안과 불행 입니다.
요거트 뚜껑이 잔뜩 있어서 놀라셨나요? 요거트에 점령당해 한 주의 소식은 오른쪽 구석에 아주 작게 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직접 색도화지를 잘라 만든 토마토와 나무도 자랑하고 싶어 어떻게든 붙였어요. 제법 귀엽죠?
1️⃣ 한주 요약
피로와 날씨에 지배당했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바쁘게 뉴스레터 마감을 끝내고, 조금 시들시들했어요. 스크랩, 편지 쓰기, 뉴스레터 구성과 퇴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을 주 단위로 해내겠다고 생각한 과거의 저를 조금 원망했습니다.
독일은 이스터 연휴였어요. 이스터 전 금요일인 Good Friday와 이스터 다음 월요일까지 쉬는 날이라 원래는 벨기에를 잠깐 다녀오려고 했습니다. 여행 갈 에너지도 부족하고, 연휴라 숙박도 평소에 비해 비싸서 포기했지만요.
대신 동네 공원에서 열리는 이스터 마켓을 구경 갔습니다. 동네 곳곳에 전단지가 붙어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부스 5~6개 정도의 아주 작은 마켓이었습니다. 벨기에 와플을 아쉬워하던 참이었는데, 생크림 토핑이 된 와플을 팔길래 먹으면서 공원을 산책했습니다.
독일은 공휴일과 일요일에는 칼같이 모든 상점이 문을 닫습니다. 그래서 금요일에 마지막 남은 식량을 먹은 저는 토·일·월을 굶지 않기 위해 장을 봤습니다. 샐러드 야채, 통밀빵, 요거트... 매일 사는 것만 사던 와중에 토마토에서 변화를 주기로 했어요. 처음 보는 품종의 토마토를 사봤습니다. 줄기에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가 꼭 별 같다고 느꼈습니다.
토마토를 넣은 샐러드를 맛있게 먹고, 토요일에는 광합성도 했습니다. 해가 뜬 게 너무 기쁜 나머지 후다닥 집을 나서느라 피크닉 매트도 깜빡했지만 굴하지 않고 잔디에 누워 있었지요. 오아시스의 노래를 들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2️⃣불안과 불행
목요일에는 신청해뒀던 헬스장 OT를 놓쳤습니다.
저는 조금만 상태가 나빠지면, 시간을 맞추거나 정해진 일정을 기억하거나 수행하는 게 순식간에 어려워지는 편입니다. 그래서 목요일에 신청한 OT를 대충 오후쯤으로 기억하고 늦잠을 자고 일어났지요. 점심을 먹고 메일을 확인해보니, 안타깝게도 OT는 아침 10시였습니다. 18유로를 허공에 날렸기 때문에 조금 불행해졌습니다.
혹시 다른 날 OT를 대신 들어도 되냐고 메일을 보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불행하고, 전혀 불안하지 않다고. 이전이었다면 안 받아주면 어쩌지, 또다시 등록하라고 하면 돈을 두 배로 내고서라도 헬스장을 등록해야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불안으로 이미 머리가 터지기 직전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너무 신기했습니다.
강박과 불안은 저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할 만큼, 저는 행복할 때조차 종종 불안했거든요. 선택을 하면 남겨진 선택지가, 결정하지 않으면 미래가 불안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불안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대학 생활 몇 년간 모은 돈을 다 쓰고 돌아가는 것도, 독일 생활이 끝난 뒤의 계획이 없는 것도요.
이제 겨우 독일 한 달 차, 이 타지에서의 삶이 저를 얼마나 바꿔놓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이 주의 'Deutchland bucket list'는 최고의 요거트 찾아서 입니다.
언젠가 말했던 것 같지만, 한 번 더 말하겠습니다. 그릭 요거트가 좋습니다.
그래놀라와 과일을 곁들여도, 잼과 함께 바삭한 빵에 발라도, 샐러드에 치즈 대신 넣어도 맛있는 그릭 요거트는 저의 주요한 식량입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그릭 요거트를 시도하는 걸 좋아했던 저는, 독일에서 최고의 요거트를 찾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다양하고 맛있는 요거트가 많다고 들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도 요거트 코너는 크고 다양한 제품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이슈가 있었습니다. 바로 꾸덕하고 달지 않은 그릭 요거트만 좋아하는 저의 확고한 취향이었습니다. 독일의 요거트는 대부분 플레인에 과일이나 초콜릿 등이 첨가된 형태가 많았어요.
취향은 아니지만, 몇몇 개는 시도해봤습니다. 딸기나 복숭아 맛 요거트는 한국에서도 썩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고, 레몬, 패션후르츠 요거트를 먹어봤어요. 패션후르츠는 꽤 맛있었고, Froop의 레몬 요거트는 재미있었습니다. 플레인 요거트 위에 레몬잼이 올라가 있는 형태였는데, 잼이 푸딩 같은 식감이었거든요.
꾸덕한 요거트는 Gutes Land의 'Speisequark (40% Fett)'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냥 먹어도 꽤 그릭 요거트 같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신맛 없는, 목 막히는 꾸덕함은 아니었어요. 여기서도 하나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식료품에는 Nutri-Score라는 영양 등급 표시 제도가 있는데요, 같은 제품인데 지방 함량에 따라 20%는 A등급이고 40%는 C등급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방이 몸에 나쁘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궁금해서 찾아보니 채소는 플러스 점수, 지방은 마이너스 점수... 이런 식으로 획일적으로 매겨지는 등급이었습니다. 단순 참고용이지, 완벽한 영양 지침은 아닌 거죠.
40% 지방인 제품이 몸에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지만, 여전히 조금 아쉬웠어요. 제 목표는 적당한 요거트 찾기가 아니라 최고의 요거트 찾기였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커피 필터를 구입해 요거트 제조에 나서게 됩니다. 방법은 간단해요. 커피 필터에 요거트를 붓고 유청이 빠지기를 하루 정도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전날 밤에 만들어둔 유청 빠진 요거트를 한입 먹은 순간,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소하고 꾸덕하고 달지 않은 요거트. 500g 요거트를 유청을 빼면 두 번 정도 먹을 양이 됩니다. 아주 조금 번거롭지만, 500g 요거트는 1유로가 조금 안 되는 가격이니, 가격 면에서도 퀄리티 면에서도 만족스럽습니다.
'재프리'에게 쓴 편지입니다. 독서모임의 멤버이자 제 고등학교 3년 간 룸메이트였던 친구입니다. 재프리가 23년에 아일랜드로 교환을 다녀오며 쓴 편지를 다시 읽고 쓰는 답장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후회없는 한 학기를 보냈어. 이 경험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가 기대되고 또 긴장돼. 나쁘지 않은 기분인 것 같아. 네 한 학기도, 그리고 올해도 그랬으면 좋겠다.
(재프리로부터)
재프리에게.
이 뉴스레터를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은데는 당신의 지분이 가장 큽니다. 영상을 열심히 만들테니 보라고 했는데 아주 큰 실망을 하셨지요. 두 계절을 당신의 블로그를 읽으며 정말 즐거워 했으니-그리고 사실 독일로 오기 전에 또 한 번 읽었습니다- 보은 해야겠지,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뉴스레터입니다.
블로그도, 브런치도 있는데 왜 뉴스레터냐고 하면 제가 메일함으로 날아들어오는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달에는 일간 이슬아를 구독해 매일 아침 날아오는 이메일로 하루를 시작했지요. 그런 마음이 2할 정도입니다. (중략) 당신이 4할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써서 지각하지는 않는지, 게을러지지 않는지 잘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중략)
독서모임에서 씩씩하게 이야기했던 것과 달리 독일에서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인 만큼 완전히 다른 일상이나 삶이 펼쳐질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너무 관성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주 들어요. 당신의 아일랜드에서 돌아오면서 한 말이 2년의 시간을 건너 독일의 제게 와닿습니다. 저도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살고 또 뭔가 번뜩이는 걸 여기서 발견해 갈 수 있겠죠?
가을의 어느 날, 한국에서 다시 봅시다.
'답장하기' 폼으로, 인스타그램 DM으로, 혹은 댓글로 전해주시는 마음과 편지 잘 받고 있습니다. 밀린 편지가 많다는 건 아주 설레고, 조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답장에는 최적의 타이밍이 있다고 믿어요.
너무 서두르지 않고 차곡차곡 답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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