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프카와 프라하 산책"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일주일 만 입니다.
마감을 조금 힘들지만 자주 보니 좋네요.
오늘은 부다페스트 여행에 이어서
프라하에서 머문 3일 간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부다페스트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넘어가
다시 독일로 야간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일정이라
3일을 꽉 채우는 여행이었지만
프라하 성도 유명한 양조장도 가지 않았어요.
프라하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카프카의 흔적을 쫓아 그의 글을 이해하는 거 였거든요.
이 주의 'scrap of this week'는 1️⃣ 카프카의 프라하, 2️⃣ 프라하에서 발견한 책과 책방들 3️⃣ 현대 미술관 산책 입니다.
1️⃣ 카프카의 프라하
모든 건 작년 여름, 카프카 기일 카페를 다녀온 날로부터 시작합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을 축하하는 문화인 생일 카페에서 모티브를 따와 운영된 카프카 기일 카페는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맞아 문학동네에서 기획한 이벤트였습니다. 평소 카프카의 글을 좋아했던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 곳을 다녀왔고요. 거기서 Traktat의 카프카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발견했는데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카프카 티셔츠를 입고 프라하에 가야겠다! 라고요.
그렇게 계획된 프라하 여행은 '움직이는 카프카 동상 보기', '카프카 디 에센셜 읽기', '카프카 박물관 가기', '카프카가 일했던 보험 공단 보러 가기', '카프카가 자주 갔던 카페 가기' 처럼 온통 카프카로 가득했습니다. 강변에 누워 카프카의 책을 읽다가 카페에 앉아 책을 읽을 감상을 쓰고, 박물관을 다녀와 그의 책을 마저 읽는 시간을 가졌어요.
하지만 사실 도시 곳곳에 카프카와 관련된 물건을 팔아치우는 것 치고는 프라하에 카프카의 흔적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박물관은 카프카가 쓴 편지, 일기, 미완성 원고 등을 유리 보관함에 넣어둔 게 다였고, 그가 살았던 집은 잦은 이사로 남아 있지 않으며, 카프카가 일했던 보험 공단은 지금은 호텔이 들어섰거든요. 이미 어느정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어 기대치를 한껏 낮췄음에도 조금쯤 실망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입은 카프카 티셔츠 덕분에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오랫동안 읽을 책 리스트에 들어있던 카프카의 장편 소설을 하나 뚝딱 끝냈어요. 카프카를 생각하며 프라하 골목 곳곳을 걷는 과정에서 이 도시의 일상을 느낄 수도 있었고요. 카프카가 자주 갔다는 카페를 가는 길에 우연히 아주 마음에 드는 서점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2️⃣ 프라하에서 발견한 책과 책방들
부다페스트는 도서관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프라하는 책과 책방으로 요약이 가능하겠습니다.
프라하에서는 카프카와 관련된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카프카의 프라하(최유안)'는 프라하라는 도시를 카프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는 책이었습니다. 분량도 짧고 글도 쉽게 쓰여서 두 시간이면 넉넉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카프카 박물관에 적힌 내용을 풀어서 설명한 느낌이라, 이 책을 읽고 박물관에 간 저는 '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네..?' 하는 감상이 들었어요. 프라하에 왔으니 카프카가 궁금하지만 박물관 까지는 안가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며 프라하를 둘러봐도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프란츠 카프카 디 에센셜'은 카프카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 치고는 그의 소설에 소홀해서 (주로 카프카의 에세이와 편지를 좋아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장편 하나를 읽어보자 싶어 고른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실종자'라는 장편 소설과 후속 단편들, 그리고 그의 편지를 담고 있는데, 실종자에 대한 이야기만 해보려고 합니다.
실종자에는 무기력하고 순진한 그러나 잘 교육된, 그렇기에 세상에 비해 너무 번듯한 주인공이 나옵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대부분 카프카를 닮아 있습니다. 저는 늘 등장 인물에 작가의 자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소설을 싫어한다고 말해왔는데 왜 카프카는 예외 였을까요? 그건 아마 작품 보다 먼저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겠습니다. 유악하고 사랑스러운 인간의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면 어떻게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프라하에서 발견한 서점 두 곳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 곳은 카프카 뮤지엄 가는 길에 발견한 셰익스피어 서점입니다. 카프카의 도시에 셰익스피어 서점이라... 하고 들어간 곳이었는데, 평범한 서점인 1층과 달리 지하에는 잡지와 코믹스 등 매력적이고 오래된 인쇄물이 가득했습니다. 소파 좌석도 많아 잠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또 다른 곳은 카페 루브르 가는 길에 발견한 중고 서점입니다. 우연히 들어간 중고 서점이 오래된 악보와 엘피를 취급하는 곳일 때의 기쁨이란! 악보를 즐겁게 디강하다 표지의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어 인테리어 액자에 넣으려고 산 아코디언 악보와 기타를 치는 친구에게 선물할 체코 포크송 악보 두 권을 구입했습니다. 의외의 수확에 아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3️⃣ 현대 미술관 산책
정말 오랜 만에 현대 미술관을 갔습니다.
야간 버스를 타고 부다페스트에서 넘어와서 피곤하고 기력이 모자라지만, 프라하 첫날 낮을 숙소 침대에서 보낼 순 없어 고민하던 차에 한인 민박 스텝 분이 추천해준 쿤스트할레 프라하를 다녀왔습니다. 현대 미술에는 큰 관심이 없어 옥상 층에 있다는 빈백이 있는 아늑한 다락방이 주목적이었죠. 여기서 카프카 책을 마저 읽으려 했거든요.
하지만 오랜만에 간 현대 미술관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인파로 가득한 유명 미술관과 달리 아침 시간대의 쿤스트할레는 아주 조용하고 정갈했거든요. 작품 해석이나 깊은 들여다봄 없이 산책하듯 가볍게 작품 사이를 거니는 감각도 좋았습니다. 가지런히 정돈된 사용감 있는 물감을 보고 '이건 무슨 의미일까?'가 아니라 '사용감 있는 물건이 가지런하게 모여있는 건 보기가 좋네.'하는 단순함. 스쳐 지나가는 곳 여기저기에 시선을 주는 산책처럼 가볍고 단순한 관람이 주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뮤지엄 샵에서의 발견도 저를 기쁘게 했어요. 아트북 부터 프라하의 작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판매하는 쿤스트할레는 뮤지업 샵이 특색있었는데, 여기서 타로 카드를 발견했거든요. 프라하 작가가 그린 고딕풍으로 그린 개성 있는 타로 카드였어요. 엄마가 타로 카드를 수집하셔서 선물로 딱이다 싶었습니다.
빈백에 누워서 책 읽어야하지, 하는 마음으로 간 현대 미술관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프라하에서 쓴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고등학교 친구인 진구(가명)는 프라하의 책방에서 이야기한 기타를 치는 친구입니다. 제프리와 함께 저의 게임 메이트이기도 합니다.
진구와는 졸업식에 제가 쓴 편지를 진구가 우편으로 답장을 준 걸로 시작해 코로나 시기 2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어요. 일상의 이야기와 함께 추천하는 노래, 시시콜콜한 몇가지 질문들을 담아 편지를 보냈지요.
독일로 떠나오기 직전에도 진구와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요, 그런 진구에게 쓴 짧은 편지입니다.
진구에게.
프라하 마지막 날에 편지를 써.
나는 지금 카프카가 자주 왔다는 카페 앉아 있어. 여기로 오는 길에 우연히 큰 중고 서점을 방문했는데, 빈티지 악보를 잔뜩 파는 거야. 그래서 네가 생각이 났어. 고등학생 때 좋아하는 악보집을 샀다고 말하던 네가 꽤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거든. 악보를 샀다고 말하는 사람도 그걸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도 네가 처음이었어.
그리고 우리가 편지를 주고 받았던 이 년 간, 우린 서로 편지에 다양한 노래를 추천해 줬잖아. 어느 날은 클래식 이었다가, 또 어느 날은 제이팝이고. (가장 최근에 추천해준 카푸스틴 에튀드는 마감할 때 자주 듣고 있어.) 얼마 전에 은우의 뉴스레터에서 3반 밴드가 합주를 했다는 걸 듣기도 했고.
그래서 여기서 괜찮은 악보를 디깅해서 너한테 선물해야지 하고 열심히 악보 더미를 훑다가 기타 악보집을 발견했어. 포크송이나 발라드 등 책이 발행 됐을 당시 유행하는 체코 가요를 모아둔 거래. 피아노 악보는 베토벤, 바흐, 모차르트...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 조금 더 재미있는 게 좋을 것 같았거든. 표지의 체코어와 전혀 모르는 체코 노래들이 여행 기념품으로 고르기에 참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 그런데 너 클래식 기타가 있니? 기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렉으로 이걸 연주 할 순 없을 거 같은데... 부디 방법이 있기를. 마음에 드는 곡이 있고 연주 할 수 있게 된다면 언젠가 들려주라.
여러번 말했지만 한국 가면 또 게임하고, 만화 카페 가고, 보드 게임 카페도 이번에야말로 꼭 가자! 여름 잘 보내고, 가을에 보자. 잘 지내고 있어야 해!
프라하에서 영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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