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scrap of this week'는 1️⃣ 엘츠 성 방문, 2️⃣ 동네 탐방 3️⃣ 독일의 기묘한 우편 사랑입니다.
1️⃣ 엘츠 성 방문
학교 국제팀 행사로 엘츠 성을 다녀왔습니다.
매달 독일 여기저기를 소풍처럼 가는 excursion이라는 행사를 국제팀에서 진행하는데, 늘 시기가 안맞거나 장소가 끌리지 않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처음으로 신청해서 다녀온 엘츠 성! 사실은 독일의 유명한 다른 성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인 줄 알고 신청했습니다. 디즈니 성으로 유명한 곳이라 가보고 싶었거든요.
아침 6시에 중앙역에서 모이는 일정이라 체력적으로 조금 피곤했지만, 통솔해주는 대로 움직이고, 데려가주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면 되는 거라 정신이 편했습니다. 자유 여행파지만 최근 여행 계획과 여행 중 발생하는 변수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는지, 이런 통제형 여행도 제법 만족스러웠습니다.
엘츠 성은 겉보기에는 동화에 나오는 성 같은데, 내부는 중세의 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기선 제압을 하고 시작하겠다는 것 처럼 벽에 걸어둔 창과 화포를 지나면, 칙칙하고 작은 유리창, 쥐를 피해 천장에 매달아둔 햄 등의 보존 음식, 수도 시설 없는 화장실... 21세기에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야!를 외치게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성 내부 가이드 투어를 마치고는 하이킹을 하거나 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정말 놀랍게도 대부분 하이킹을 하러 갔습니다. 유럽인들의 하이킹 사랑이란... 버스를 타는 소수의 인원 중 한식 마스터 니콜라스를 만나 음식, 음악, 게임, 독서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잔뜩 주고 받았습니다. (그는 무려 21번째 김치를 담그고, 직접 고추장을 만드는 엄청난 요리사였습니다.) 이야기가 즐거웠던 것과는 별개로 대화가 30분이 넘어가면 기빨림과 더불어 단어 레퍼토리 떨어짐 이슈가 발생하기 때문에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지...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2️⃣ 동네 탐방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인 자르브뤼켄은 정말 재미없고 할 거 없는 도시라고 생각하면서도 미술관도 안가봤고, 방문한 카페도 10곳이 넘지 않는다는 걸요. 그래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 도시를 산책하기로 마음을 먹고, 미루고 미룬 자를란트 현대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한 때 프랑스 영토였고, 지금도 여전히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 답게 작품 해설이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만 쓰여 있어, 해설도 읽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미술관을 돌아다녔습니다.
1층의 산업과 폐기물을 주제로 하는 것 같은 전시에서는 조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폐플라스틱, 작업복, 해체된 천 등이 전시된 곳에서 몇 안되는 번듯한 물건이라 더 예뻐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모던한 느낌에 원색적인 인테리어 소품은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가더군요.
2층으로 올라가니 헤드폰을 쓰고 설치된 전선 사이를 지나가면 다양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작품 안에 들어가도 되는지 몰라서 겉돌기를 하니 시큐 분이 친절하게 작품으로 들어가서 체험해보라고 알려주셨어요. 제 발걸음에 따라 소리가 바뀌고, 커지고, 섞이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전시만큼 뮤지엄 샵을 중요하게 봐요. 뮤지엄 샵 방문이 전시 동선의 가장 마지막이니, 미술관의 마지막 인상은 뮤지업 샵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디에나 팔 것 같은 물건 말고, 그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특색을 살리거나 혹은 발견의 재미가 있도록 흔하지 않은 것들이 있는 곳이 좋아요.
그런 관점에서 자를란트 미술관의 마지막 인상은 제법 흥미로웠습니다. 문장을 조합해서 신박한 욕을 만들 수 있는 문장 조합기를 팔았거든요. 그것도 '위대한 시인들처럼 욕해보세요!'라는 타이틀을 달고요. 마지막 잎새/보다도/가망이 없구나. 같은 조합으로 시적인 비꼼을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3️⃣ 독일의 기묘한 우편 사랑
디지털 월드인 한국과 달리 유럽은 여진히 아날로그가 많이 남아 있는걸 일상 곳곳에서 느끼지만, 가장 실감하는 때는 우편 시스템을 마주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기묘할 정도로 중요한 일은 우편으로 주고 받으려고 하거든요.
독일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공보험에 가입을 해야하는데, 온라인으로 가입하고, 환급 받을 영수증도 앱으로 업로드 했는데 환급 됐다는 알림은 우편으로 날아옵니다. 제가 이메일로 문의한 내용에 대한 답변도 우편으로 오고요.
집 계약 해지를 위해 보낸 이메일에 대한 답장도 우편함으로 날아 옵니다. 그러면서 우편에는 퇴실 점검을 위해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라고 말합니다. 그냥 이메일 답장으로 담담자 참조를 걸면 안되는 걸까요?
독일 통신사 비밀번호를 초기화하려고 했을 때는 임시 비밀번호를 무려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메시지로는 바라지도 않으니 이메일로 보내줄 수는 없는 걸까요? 심지어 라디오세는 현급을 동봉해 답장을 보낼 수 있도록 답장 종이까지 고이 넣어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어메이징 독일. 제발 이메일을 사용해주시길.
이 주의 'Deutchland bucket list'는 독일 대학 강의 리뷰입니다.
7월 중순 쯤 친 'The Gothic' 시험을 끝으로 종강했습니다. 청강으로 들은 수업이고, 학점 인정도 안 받을 예정이라 시험을 칠 필요는 없었지만, 한 학기 동안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들은 수업을 잘 마무리하고 싶어 시험을 치러 갔습니다. 이름 옆에 'I don't need credits.'이라고 적었을 때는 조금 웃음이 났습니다. 꽤 멋진 청강생이 된 기분이었거든요.
꽤나 대형 강의인데다 2학기에는 The Gothic2가 열릴 정도로 주요하게 다뤄지는 주제라 왜 하필 고딕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유럽의 일상에 스며든 고딕을 보고는 이내 납득했습니다. 고딕 문학 수업을 들으며, 유럽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고딕을 마주하는 건 이 대륙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는 본의 아니게 영문학도로 지냈습니다. 저는 미디어 본전공에 경영을 복수전공하고 있는데, 자를란트 대학교에서는 왜인지 저를 영문학과에 배정했거든요. 전공 학점이 필요하지도 영문학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 가볍게 받아들인 이 전공이 지나고 보니 꽤 커다란 터닝포인트가 되었음을 느낍니다.
저는 늘 문학이나 철학과 같은 순수 학문을 동경 하면서도, 본전공은 커녕 복수전공으로도 고르지 않을 정도로 현실주의자 였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문창과를 지망해본적 없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고전 문학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최대한으로 허구의 이야기를 쓰며 보냈습니다.
글쓰기로 부터 빙 돌아 반대쪽으로 걷다가, 글쓰기에 발을 담가 봤다가, 물 젖은 발을 다시 신발에 욱여넣고 찝찝한 채로 반대로 걷고. 그런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다 서서히 괴롭지 않게 소설 쓰기를 놓아줄 수 있게 된 게 아주 최근입니다. 어쩌면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것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내 적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게 된 사람으로서, 내면에 큰 마침표를 찍는 이 시기에 독일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유럽 곳곳에서 죽은 작가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는 게 참 사치스럽고 행복하다는 감상이 들었습니다.
위 릴스의 주인공인 체리에게 쓰는 답장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영상으로 넘어갑니다.)
체리는 중학교 친구로 저와 가장 오래, 많은 편지를 주고 받은 친구입니다. 아래의 편지는 체리로 부터 받은 두 차례의 답장을 편집했습니다.
체리라고 하면 누군지 알까? 오랜만에 약간의 여유로운 시간이야. 이런저런 시험도 끝났고 교수님과의 단체 면담도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으니, 또 다른 시험이 기다리고 있지만 합격할 점수만 만들겠다는 생각이에요.
요즘엔 정말 이것만 끝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끝나지 않아서 너무 괴로워. 연락은 디엠으로도 가능하긴 하지만 편지는 또 다른 느낌이니까,, 중학생 때 너를 만나고 체리우체국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랑 펜팔도 해보고 재밌었어. 너는 항상 편지 써주고 이것저것 만들어줬는데 나는 편지도 잘 안 썼던 것 같아서 양심이 찔리네,,
맞아 생일 편지 정말 감동이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싶고 재밌었어,, 나도 만들어줄게 약간 스크랩북이 될 수도,, 코멘트 마구 달아놓고. 나 중3때 대구 처음가봤자나,, 이월드 진짜 재밌었어, 난 정말쫄보였고 사람이 별로 없어서 줄 안 기다려서 좋았던,, 우리 도착하자마자 도시락 먹었는데 나 코피났었어 대박이지 않니, 근데 이 기억이 맞는지 의문. 여름에 해운대 가서 바다에서 놀고 진짜 야무지게 놀러다녔네,, 영상 남아있는 거 좋다. 그때 어땠는지 내가 기억 못했던 부분들 볼 수 있어서 좋아. 그래서 릴스 많이 찍어주길 바람,,
독일 정말 재미있을 거 같아! 나는 너를 만나고 전혀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어. 신기하고 특이하고 세상엔 정말 내가 모르는 게 너무너무 많고 근데 너는 내가 모르는 걸 해본 사람이었어. 그게 뭐가 됐든. 학교에서 인디안 댄스를 수강 하다니,, 성장했어,, 멋지다. 해보고 싶었던 것 들을 하나씩 꾸준히 하는 너를 보면서 반성도 가끔해.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게 맞는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래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독일에 가서도 잘 지내는 네가 신기하고 부러워. 나도 열심히 해볼게,, 진짜로 ꒰ᐢ֊⩊֊ᐢ꒱🪄⌒♡。
(체리로 부터)
체리에게
혹시 기억나? 중학교 2학년 때 *사그세 창가 자리 소파에 앉아 시험 공부를 했던 어느 날. 그때 사회 교과서에 나온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보고는 성인이 되면 이걸 타고 유럽에 가서 거기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자고 이야기 했던 거. 중학생 때는 정말 매일 같이 붙어 다녔잖아. 학교를 마치면 학원을 같이 갔고, 주말에도 같이 놀러 다녔으니 거의 매일 봤던 것 같아. 물론 그 시간의 대부분은 해야하는 일이 정해져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걸 자유롭게 하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지. 그래서 매번 나중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자, 같은 미래의 이야기를 하곤 했잖아. 어른이 되면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나봐.
그런데 요즘은 일 년에 한 번 보는 사이가 되다니. 네가 마지막으로 서울에 놀러 왔을 때 우리가 거의 일 년 반 만에 봤다는 게 굉장히 충격적이었어. 나도 마산에는 일년에 한 두번 내려가고, 너도 서울에 올 일이 자주 없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약속을 잡고 일정을 조율해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참 이상하다고 느꼈어. 기숙사에 살아서 외출이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한 달에 한 번은 봤던 것 같은데. 졸업이나 취업 같은 사회에서 말하는 중요한 관문을 앞두고 있는 시기라서 그런걸까? 만약 그렇다면 서른살 쯤 에는 좀 더 자주 만나고, 우리가 매일 이야기하던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난 사실 서울에서도 종종 외로웠을지도 몰라. 혼자 여기저기 잘 다녔지만 종종 전시를 보러 가거나 귀여운 카페를 가면 ‘여기 체리가 좋아할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거든. 그리고 네가 대학에서 사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간다고 할 때면 가끔 ‘우리는 언제 봐?’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어. 나도 마산에 내려갈 생각이 없고, 여기서 사귄 친구들과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걸 알아서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고 고백해봐.
너는 나를 만나고 전혀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줬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평일에는 사람이 적어 놀이기구를 마음껏 탈 수 있을테니 개교 기념일에 대구 이월드를 가자는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도, 마산에서 열리는 전시란 전시는 다 꼬박꼬박 다녔던 것도, 제주대학교에서 여름 계절 학기를 들은 것도 나 혼자 였으면 고민하다 그냥 포기했을 지도 모르는 걸. 분명 몇 개쯤은 포기했을거야. 내가 ‘오늘은 배 타고 섬에 가서 피크닉하자’라고 말하면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실행할 수 있었던 거야.
편지도 마찬가지인 걸. 기숙사 사는 친구 생일이라고 과자 박스를 동봉한 편지를 보내줬던 것도, 해리포터를 좋아한다고 거기 나오는 생일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줬던 것도, 생일 편지를 받고 싶다고 하니 생일에 맞춰 도착할 수 있게 편지를 택배로 부쳐 줬던 것도 너였는걸. 나는 우리가 우정의 저울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서로에게 충실했다고 생각해. 내가 가장 많이 편지를 주고 받은 사람도 너일 거야. 고등학생 때는 만날 때 마다 편지를 뭉치로 주고 받았잖아. 지금까지 서로에게 쓴 편지를 합치면 100통은 넘을 것 같아.
지금이 너의 삶에서 어떤 중요하고도 힘든 시기를 넘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해. 수능 이후로 정석적인 공부와는 담을 쌓은 사람으로서 끊임 없이 공부하고 시험을 치는 네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 네가 무슨 시험을 치는지, 몇 개의 시험이 남았는지 영원히 기억하지 못해서 매번 물어보지만… 응원하는 마음은 항상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길. (이 편지를 쓰는 지금도 네 시험이 다 끝난 건지 모르겠어.)
그렇게 될 것 같았지만 우리 중 네가 제일 먼저 졸업하네! 앞으로의 계획은 변함 없는지, 마지막 학기는 어떻게 보낼 건지 등등 네 삶의 업데이트가 궁금하고, 내가 유럽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잔뜩 하고 싶어. 한국에 돌아가면 오랜만에 사그세에서 만나도 좋겠다.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영원이
*영원의 고향 마산에 있는 오래된 카페 ‘사랑이 그린 세상’의 줄인 말. 모두가 사그세라고 부른다. 시그니처 파르페를 주력으로 캔모아처럼 토스트를 무한 리필 해주는 게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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