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이토록 뜨겁고 화창하고 덥다고 "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제법 긴 여행을 하고 왔어요.
2주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답니다.
야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고,
생일을 타국에서 보내고,
영국까지 콘서트를 보러 가고,
막차를 놓쳐 처음 보는 사람 집에 묵기도 했어요.
이 여행들을 잘 소화하고 정리해서 하나하나 들려드릴게요.
오늘은 부다페스트에서 보낸 생일 주간 이야기입니다.
이 주의 'scrap of this week'는 1️⃣ 부다페스트 도서관 탐방, 2️⃣ 한여름의 온천 3️⃣ 언제 어디서나 피크닉 입니다.
부다페스트는 도서관과 수영을 위해 갔어요. 도서관 세 곳과 온천 두 곳이 구글 지도에 찍어둔 유일한 북마크였어요. 저는 몇 년째 이어오는 생일 루틴이 있는데요, 혼자 조용하고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작년 생일 편지를 읽고, 내년 생일을 위해 답장을 쓰는 거예요. 그래서 오전에는 온천에 들러 수영을 하고,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편지를 쓰는 여행을 했답니다.
1️⃣ 부다페스트 도서관 탐방
생일 편지를 쓸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기 위해 부다페스트 도서관 세 곳을 탐방했어요. 세 도서관 모두 각자의 특징이 뚜렷해 아주 즐거운 방문이었습니다. 저는 도서관을 가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두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첫째, 그 도서관의 고유함이 있는가.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공립 도서관은 시험 기간에 과제하러 가기에는 좋지만 여행에서 까지 찾아갈 만한 곳은 아니거든요. 둘째, 얼마나 접근 가능한가. 지역 주민에게만 개방되거나 투어를 통해 관람만 가능한 곳에는 흥미가 없어요. 앉아서 글을 쓰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서관이 좋습니다. 그리고 부다페스트의 세 도서관은 이 두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곳이었어요.
가장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부다페스트 대학 도서관이었어요. 역사적인 그림과 조각, 빈티지한 멋이 있는 가구로 채워진 대학 도서관은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었어요. 입장료는 8천원 정도였는데 오디오 가이드 비용도 포함이어서 도서관의 역사와 건물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고요. 하지만 메인홀이 너무 개방되어 있고,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에 구석자리를 좋아하고 더위를 많이 타는 제가 오래 있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메트로폴리스 도서관. 여기는 무려 세계의 아름다운 도서관 100선에 선정된 도서관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메인홀이 공사중이라 입장료를 받지 않았는데, 메인홀을 제외해도 도서관이 아주 넓고 충분히 부다페스트 도서관의 특색을 느낄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창틀과 천장까지 섬세하게 조각된 도서관은 어릴적 상상했던 아름다운 궁전의 서재나 응접실 같은 분위기였어요. 화사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도서관은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도서관입니다. 여기는 입장료 없이 사전에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면 국회의사당 입구에서 제시하고 들어갈 수 있어요.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인 국회의사당 안에 도서관이 숨겨져 있어서 정말 공부하거나 연구를 위해 자료를 찾으러 온 현지인들만 있는 곳이었어요.
이 도서관은 무려 창 밖으로 도나우 강이 보이는데요, 창가에 앉아 편지를 쓰며 반짝이는 윤슬과 강을 유유히 지나가는 유람선을 구경할 수 있어요. 그리고 따뜻하고 어둑한 느낌에 책장 사이 사이에 책상이 있어 아늑한 굴 같은 분위기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저는 이 도서관이 가장 마음에 들어 부다페스트에 머물면서 두 번 방문했고, 생일 편지도 여기서 썼어요. 여기서 쓴 생일 편지는 조만간 영상으로 가져올게요!
2️⃣ 한여름의 온천
부다페스트를 처음 가고 싶다고 결심한 건 세체니 온천 때문이었어요. 일렁이는 투명한 물과 배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건물이 수영 러버의 마음을 사로잡은거죠. 하지만 제가 부다페스트를 방문했던 날에는 이상 기온으로 거의 40도에 가까운 날씨가 이어졌어요. 저는 40도의 날씨에 40도의 온천 물에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이열치열 한여름의 온천 탐방기를 들려드립니다.
세체니 온천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놀라울 정도로 더웠지만 맑은 날씨 덕분에 햇빛을 받아 에메랄드로 빛나는 물, 햇빛에 빨갛게 익어 저마다의 싱그러움을 얻은 사람들, 물 속에서 체스를 두는 할아버지들, 느긋하게 헤드업 수영을 즐기는 모습들... 모두 너무 아름다워서 여름을 사랑한다면 두고두고 기억될 장면들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사랑은 이토록 뜨겁고 화창하고 덥구나! 하고요. 온천을 즐기다 더워지면 노곤한 몸을 선베드에 뉘였다가 몸이 마르고 좀 추워지면 다시 온천을 즐겼답니다. 아쉬웠던 점은 야외 메인 수영장이 공사중 이었다는 건데요, 수영을 기대하고 갔던 저는 온천을 한 곳 더 가기로 합니다.
사실 겔레르트 온천은 갈 생각이 없었어요. 둘 중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세체니를 갔던 거였거든요. 세체니와 겔레르트 온천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는데요. 호텔과 연결된 겔레르트 온천은 야외 수영장 한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온천과 커다란 메인 실내 수영장으로 구성되어 야외 온천과 수영장인 메인이 세체니와는 꽤 다른 느낌을 줘요. 사진을 찍기 좋기 때문에 관광객이 많은 세체니와 비교해서 겔레르트는 현지인과 호텔 이용객이 많이 와 한산하고 물도 더 깨끗하고요. 저는 겔레르트의 실내 수영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세체니 보다 겔리르트가 더 좋았는데, 세체니의 메인 수영장을 이용해보지 못해서 마음이 이쪽으로 기울었을 수도 있겠어요.
온천에서 읽을 책으로 민음사의 워터프루프북인 '나의 문학'도 챙겨 갔는데요, 이 책은 미네랄 스톤으로 만들어져 물에 젖어도 읽을 수 있고 다시 원상복구가 돼요. 바다 수영을 갔다가 책을 드라이기로 말려본 경험이 있는 저는 수영을 할 때는 워터프루프북을 챙깁니다. 이번에는 이 책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도 했어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 추워져 온천에 들어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책 표지를 본 헝가리 아저씨가 "그 책 한글이지?" 하고 말을 걸어서 대화가 시작됐어요. 대장금과 세종대왕을 아는 사극을 좋아하는 헝가리 아저씨였는데, 덕분에 속성 헝가리 근대사와 헝가리와 한국 문화의 유사점을 배울 수 있었어요. 책은 거의 못 읽었지만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3️⃣ 언제 어디서나 피크닉
부다페스트 마지막 날은 피크닉을 즐겼습니다. 체크아웃을 하고 야간 버스로 프라하로 넘어가기 까지 시간이 아주 많아서 헝가리 음식을 포장해서 엘리자베트 공원에 누웠어요. 저는 새로운 음식에 크게 도전적인 편이 아니고, 유럽 음식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여행에서 딱히 현지 음식을 챙겨먹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피크닉 음식이 필요한 김에 랑고스와 굴뚝빵에 도전해봤어요.
숙소에서 피크닉 가는 길에 있는 곳 중에 구글맵 후기가 괜찮은 곳으로 골랐는데요, 랑고스는 츄로스를 피자 도우로 만들어서 그 위에 치즈를 잔뜩 올린 느낌이었어요. 느끼하고 짠 게 맥주 안주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굴뚝빵은 시나몬 가루가 뿌려진 기본을 먹었는데 그냥 파삭하고 폭신한 빵이었어요. 아이스크림 올라간 버전도 팔았는데, 이것도 제법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원 가는 길에 산 랑고스와 굴뚝빵, 그리고 전날 사서 씻어둔 과일들을 챙겨 공원에 자리 잡았어요. 관람차가 있고 꽤 커다란 분수가 있는 엘리자베트 공원은 부다페스트에서 꽤 유명한 공원 중 하나 같았어요. 공원 옆에는 스케이터 장이 있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작은 음악 행사가 열렸는지 하루 종일 밴드 공연이 공원에서 이어졌어요. 덕분에 한나절 동안 공원에 있으면서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인턴을 했던 회사의 직장 동료였던 SB님께 쓴 편지를 가져왔어요. 토마토와 잼컨을 좋아하는 귀여운 SB님께 인턴 퇴사를 할 때 편지와 함께 취향 맞춤 선물들도 잔뜩 받았는데요, 그 중 헝가리에 가져간 워터프루프북 '나의 문학'도 있었답니다.
이 책을 받았을 때, 아껴두고 있다가 부다페스트에서 읽고 편지에 답장을 써야지 다짐했었어요. SB님 만큼 멋진 선물도 편지에 동봉하기로 마음 먹었죠. 그리고 마침내 이번 여행에서 답장을 쓸 수 있었는데요, 멋진 선물을 구했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조금의 슬픔입니다.
SB님께.
안녕하세요 SB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빨리 답장을 쓰고 싶었지만 선물해주신 책을 읽고 편지를 쓰고 싶어 이제서야 답장을 씁니다. 엽서를 보고 짐작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지금 부다페스트에 있어요. 프라하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날을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책도 읽고, 이렇게 편지도 쓰고 있답니다.
SB님이 선물해주신 나의 문학! 부다페스트는 온천이 유명한 도시인데요, 온천을 즐기면서 하는 독서는 재미 없을 수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따끈한 온천물에 들어가 워터프루프북을 펼쳤답니다. 그리고 이 책을 계기로 어느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한글을 아는 헝가리 아저씨와 잔뜩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책 표지에 적힌 한글을 보고 말을 걸었대요. 대장금과 사극을 좋아하는 재미있는 분이었어요.
'나의 문학'에 페어책이 있다는 거 아시나요? 사실 작년 여름 제주도에 수영을 가며 이 책의 페어책인 '나의 친구'를 읽었어요. 작년에 둘 중 뭘 살지 고민하다가 나의 친구를 골랐는데, 반 년 뒤 그 책을 SB님께 선물로 받게 된거예요. 이런 재미있는 우연까지 겹친 이 책은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중략)
00님과 같이 일하고 계신다고요! SB님의 잼얘를 들을 00님을 부러워하며... 물론 SB님의 센스와 멋진 일처리 능력도요.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마다 SB님의 인사이트에 놀랐답니다.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성실하고 멋지고 재미있는지요. 제가 인턴 생활을 좋았던 기억으로 가져갈 수 있었던 건 같이 일한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늘 말하고 다니는데, 정작 SB님께는 말한적 없는 것 같아 이번 편지를 통해 늦게나마 전해보아요.
편지는 여기서 줄여 보겠습니다. 각자의 오늘을 열심히 살고, 가능하다면 올해 겨울에 얼굴 보기를 희망하며... 늘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한 날 보내시길!
영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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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고 떠오른 소소한 일상, 추천하고 싶은 무언가, 혹은 그냥 저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좋습니다. 편지란 거창한 게 아니니까요. 저는 그걸 읽고, 기쁘게 다시 답장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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