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나쁜 쪽으로 전설로 남은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을 가봤으니, 나는 한국에서 대형 페스티벌 시장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1세대를 대략 경험한 것 같다.
그때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페스티벌에 가보면 외국인들은 파티 문화가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대체로 노는 게 자연스러운 반면, 한국인들은 죽어라 하고 논다고. 놀긴 노는데 뭔가 여유가 없어 보인다고 할까. 비유가 아니라 진짜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논다고. 못 놀아서 죽은 귀신이 붙기라도 한 듯. 특히. 2002년의 그 거대한 집단적 엑스터시 이후로는 무슨 일만 있으면 나와서 노는 모습은, 흥미롭고 괴상한 동시에 무섭기도 하다.
그런데 외국인과의 비유는 그때만 해도 시답잖은 드립 삼아서 한 얘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다.
평소에 비일상과 비이성이 허용 범위 안에서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였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유추할 줄 알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였다면,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꿈의 무례함이 용인되는 사회였다면,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 거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 일반화는 못하겠다. 한국만 그런 거 아니라고 누가 지적하면 반박할 여지도 없다. 무엇보다 가정은 비참할 정도로 무의미하다.
그러니까, 지금보다는 숨 쉴 만한 구석이 있는 사회였다면, 2022년 10월 29일의 이태원은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었을까.
천 만 영화가 나올 때마다 몸서리가 쳐지곤 한다. 말이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으로 보인다. 이 좁아터진 나라에서, 아무리 좋아도 영화 한 편을 천 만 명이 본다는 게. 어떤 보이지 않는 강한 동력과 임시가 의식에 작용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록 페스티벌도 마찬가지, 즐기고 노는 것마저 강박의 헤게모니에 내몰린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니 어떤 좁으장한 지역에 그렇게 많은 불특정다수의 인파가 하룻밤 사이에 몰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비현실인 것이다. 코로나라는 커다란 변수를 감안해도,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럽다. 아, 물론 좋아서 갔겠지, 누가 목줄 잡아서 데려다놓은 것도 아닐 테고. 그렇지만, 그래도.
이 극도로 소비적이고 경쟁적인 세상에서 꽉꽉 눌려서 응어리진 음습한 감정과 에너지가 그런 식으로 비정상적으로 분출된 것이라 한들, 누굴 탓할 수 있을까.
그래서 뉴스를 보자마자 앞선 감정은 분노였다. 욕부터 목구멍에 걸렸다. 그게 너무 화가 나서. 어디다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이런 상황 자체가 너무 못 견디겠어서. 지금도 옅은 감기 같은 화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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