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 관한 짧은 낙서

순간에 관한 짧은 낙서 | 무관심의 미덕

“큰 쪽을 주는 사람이 꼭 다정하다고는 할 수 없죠.“

2022.06.26 | 조회 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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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유튜브를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다가, 다비치가 나온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클립 하나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정확히는 15년 롱런의 비결을 묻는 유재석의 질문에 대한 멤버들의 대답이었는데요.


“서로 싫어하는 걸 안 해요.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게 아니고, 싫어하는 걸 안 해요.”

왜 이 대목이 그렇게 귀에 꽂혔을까요. 관계에서 상대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것과, 싫어하는 걸 안 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죠. 플러스 마이너스의 마진으로 보면 대충 비슷해 보일지는 모르겠는데, 달라요. 많이 달라요. 길게 보면 연탄재와 설탕만큼이나 다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라 일반화까지는 못하겠지만, 전자, 그러니까 좋아하는 걸 하는 행동에는 의도가 많이 작용합니다.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가능하다는 거죠. 반면 후자는 기본적이면서도 난이도가 높습니다. 본능과 오랜 습관에 가까우니까요. 즉, 자신이 당하기 싫은 걸 타인에게도 하지 않는 예민함에서 나오는, 일종의 배려예요.

그런데 사적이든 공적이든 이런 테이스트의 차이를 구분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보통은 그런 사람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이 차이를 모르면 펜스 룰처럼 다이아몬드를 줄로 갈아대는 듯한 짓을 하게 되는 거죠. ‘병 주고 약 준다’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같은 속담이 아주 직관적이고 적절한 교훈을 주지 않던가요. 보통 이런 종류의 바보들이 겉치레와 생색을 좋아한다는 건 만국공통이니까요.

더 골치 아픈 문제는 ‘싫어하는 걸 안 하는 것’은 눈에 잘 안 띈다는 겁니다. 티가 안 나거든요. 무신경한 사람들은 이런 행동이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한 로직으로 작동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것’에 혹하거나 속아넘어갑니다. 타무라 유미의 만화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를 보면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와요.

“반을 갈랐을 때 큰 쪽을 주는 사람이 꼭 다정하다고는 할 수 없죠. 그런 게 아무래도 좋은 사람도 있고, 죄책감에 그러는 사람도, 목적이 있어서 그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

 

물론 타인에 대해 ‘싫어하는 걸 안 하는 것‘의 태도를 유지하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겠죠. 싫어하는 것에 대한 발화점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당장 다비치 멤버들만 해도 15년 동안 서로를 겪고 많은 걸 공유하면서 맞춘 균형일 테니까요. 

그래서 아주 간단하고도 쉬운 방법을 제안할까 합니다. 타인에게 무관심해졌으면 하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관심이란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거예요. 유독 소비적이고 경쟁적인 이 땅에서, 결국 거의 모든 문제는 이런 타인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되니까요. 온라인의 꽃인 악플만 봐도 알 수 있죠. 이를테면 성별과 나이와 문화의 스테레오 타입에 사로잡히는 것, 다수의 익명성 뒤에 숨은 ‘정의로움의 과시’에 도취되는 것, 대중에게 노출된 인물의 사생활을 난도질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 등.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알려지는 21세기 버전의 지옥에서, 이런 종류의무관심 자체로 훌륭한 배려가 됩니다. 우리 타인에게 무관심해지도록 해요. 그러면 지금보다는 훨씬 쉬고 만한 세상이 겁니다. 경직된 이데올로기 따위보다 나아요. 이건 장담할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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