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한 주 잘 보내셨길 바래요.
오늘은 영화 얘기를 좀 해볼까 해요. 혹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의 그루트(groot)를 아시나요?
네. 바로 춤추고 있는 이 귀여운 친구입니다.....^^ 영화나 만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루트는 "아이 엠 그루트 (I am groot)!" 라는 말밖에 하지 못해요. (그루트에 대해 처음 들어보신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영상을 첨부합니다.)
Flora colossi라는 나무 종족으로 태어난 그루트의 몸은 이끼와 나무껍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종족의 특징은 성장하면서 성대가 점점 나무처럼 딱딱해진다는 건데요. 특히 사춘기 이후로는 성대가 완전히 굳어져버려서 "아이 엠 그루트!" 처럼 같은 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리죠. ( 가디언즈 오브 갤럭스 만화책 17권참고)
그렇다면 그루트는 과연 친구들과 대화가 가능할까요? 아래 그림을 보시죠.
"아이 엠 그루트"라는 문장은 함축적입니다. 그리고 진 그레이는 그루트가 전하고 싶었던 그 문장의 숨겨진 진짜 의미를 알아차려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루트는 "아이 엠 그루트"라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번 다른 뜻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빈 디젤(Vin Diesel)도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루트의 목소리를 연기하기 정말 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세 단어로부터 캐릭터를 통째로 새롭게 만들어낼 수가 있겠어요? 진짜 감정을 담아서 말이죠.." 라구요.
그루트는 앞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될까요? 제가 그루트라면 진 그레이처럼 "아이 엠 그루트"라는 세 단어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텔레파시로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친구들 아니면 대화하기 참 답답하겠구나 싶었습니다.
만약 그루트가 제 언어치료실에 방문한다면 어떨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직은 없지만 언젠가는 열 수 있겠지요...?)
일단 사전 정보를 가지고 진단을 내려보자면,
그루트는 성대 근육의 변형과 수축으로 인해 말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따라서 마비말장애(dysarthria)의 특징을 어느 정도 보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비말장애는 말을 하는 데에 필요한 근육들을 움직이는 신경들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타나는 장애인데요.
Mayo Clinic 에서는 마비말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두고 있어요.
따라서 마비말장애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MRI 나 CT를 통해 뇌신경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고, 직접 환자의 말소리를 듣고 자음이나 모음을 부정확하게 발음하는지, 말을 할 때 반복되는 음소가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는 과정도 필요하답니다.
만약 그루트가 겪는 어려움이 마비말장애가 맞다면, 굳어진 성대근육을 다시 부드럽게 만들고 직접 말소리를 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입천장 뒤를 면봉이나 설압자로 눌러보면서 성대를 사용할 때 나는 말소리가 어떤지 환자분이 직접 들어보고 말소리내는 법을 연습하는 방법도 유용할 수 있어요.
사실 그루트는 Mayo clinic에서 제시한 모든 증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그루트는 비록 세 단어일지라도, "아이 엠 그루트"라는 문장을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빠르기로 그리고 감정을 담은 억양으로 표현하고 있거든요.
그루트가 사람이 아닌 점을 감안했을 때, 이 친구를 위한 새로운 진단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루트에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던 중 기쁜 소식이 하나 있어 가져와봤습니다. 가오갤의 네 살 배기 어린 팬이 그루트 덕분에 통합운동장애(dyspraxia, 행동곤란증)를 극복해나가게 되었다는 소식인데요. (통합운동장애 역시 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일어나는 장애로 말을 할 때 쓰는 근육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주는 장애입니다)
이 아동의 아버지에 의하면 원래 바- 정도의 말 밖에 하지 못했던 아들이 가오갤을 보고 나서부터는 그루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언어능력이 빠르게 늘어서 스피치 수업에 나갈 정도로 많이 발전했다고 해요.
아버지는 4살이었던 아이가 같은 언어 장벽을 가진 캐릭터과 공통점을 찾고,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잘 쓰여진 대본과 영화 덕분이었다며 감독에게 정말 감사드린다고 전했는데요.
사람의 관점에서 그루트는 언어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루트의 관점으로 보면 굳이 의사소통하기 위해 말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메일에서도 언어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참고:
김수진, 신지영, 『말소리장애 제2판』, 시그마프레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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