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딱 7일 전 아침, 밤새 토하다가 이러다는 정말 죽겠다 싶어 난생 처음 119를 불렀다. "저.. 걸을 수 있는데 이런 저도 구급차 불러도 되나요?" 다행이도 구급차는 나에게 토할 수 있는 택시가 되어 주었고, 나는 그 길 그대로 입원했다. 장염으로 3일 꼬박 금식한 뒤, 조금씩 먹는 걸 시작했다. 그동안 학원에서는 새로운 선생님을 뽑았고, 나는 병원복을 입은 채 줌으로 인수인계를 했다. 빠져가는 볼살, 잃어가는 식욕을 느끼면서 내 몸이 제 기능을 잃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시 0이 되었다. 어떤 소속도, 역할도, 책임도 없이 향후 스케쥴이 없는 '무'의 상태. 내 이름 '고우정'만 남은 상태.

다시 '파리우쟁' 페이지를 열었다. 언젠가 다시 쓸 일이 있겠지 하고 덮어둔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보물상자를 연 기분이다. 낭만 속에서 허우적대던 3년 전 나의 여정이, 여기 글과 사진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파리우쟁이라는 이름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유럽여행을 하고, 프랑스어를 배우고, 연애까지 했구나. 이루고 싶었던 모든 것을 다 이뤘던, 내 생에 가장 빛나던 시간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1년 반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무얼 했을까. 다이어리를 펼쳤다. '토플 네 번, 아이엘츠 세 번. 응시료 40만 원씩 내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구나.' 프랑스 공중보건 대학원도 두 번 모두 떨어졌다. 유럽으로 가기 위해 참 부던히도 애썼다. 동시에 김해에서, 일산에서 사무보조로 일했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보려고 면접도 네 번이나 봤다. 하지만 해외로 나갈 나를 뽑아줄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친구와 출판사를 차려 책도 한 권 냈고, 보습학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도 가르쳤다. 중간중간 들어오는 디자인 의뢰 덕분에 개인 사업자도 하나 만들었다.
정말 많은 일을 했는데 왜 0이 되었을까? 왜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을까? 하지만 왠지 모를 이 익숙한 두려움, 왜지? 프랑스에 떠날 때와 똑같은 상황이구나. 오히려 잘 됐다. 다시 시작이라는 뜻이다. 그때 파리에서 0으로 시작한 것처럼, 다시 원점이라는 거다. 그래서 다시 파리우쟁을 쓰게 되었다. 이번에는 무작정 달릴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호흡하면서, 천천히 길게 보려고 한다. 파리로 시작한 나의 여정은 어디로 뻗어나갈지, 궁금하다면 계속해서 파리우쟁을 구독해줘라 친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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