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IT)부문의 기업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CES에서 한국 기업, 그것도 벤처, 창업 기업의 성과가 눈부시다고 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자랑이라 조금은 과장도 있겠지만 객관적 지표들이 ‘역대 최다’다.
지난 주의 소셜 미디어는 CES 관람기로 넘쳐났다. 내가 여행 중에 만난 미국인도 그가 목격한 LG 전자의 투명 TV의 놀라움과 함께 한국의 기술력이 최고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서 나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CES 행사 직전 중소벤처기업부의 집계에 의하면 금년도 CES에서 우리 벤처.창업기업 116개가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는 이 박람회를 주최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주는 현신 기술과 제품에 수여하는 상이다. 금년도에 CTA가 선정한 혁신기업이 313개이고 제품 수는 379개인 중에 이중 국내기업이 42.8%인 134개이고 제품 수는 158개,로 41.6%라고 한다. 즉 우리나라의 수상 기업 중에 86.6%인 116개가 벤처.창업기업이라고 한다. 여기에 5개의 중소기업이 더 있어서 규모가 있는 국내 기업은 13개에 불과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16개의 벤처, 창업기업 중에 업력 7년 미만의 창업 기업이 97개로 역시 역대 최다 수상으로 “스타트업 코리아”의 성과를 크게 과시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CES만 보면 혁신상을 받은 한국의 스타트업은 금년 CES 혁신상 수상 전체 기업의 무려 31%에 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 스타트업체의 CES에서의 압도적 성과는 자본 시장에서의 성과지표들과는 큰 차이를 보여서 이 성과지표들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들의 일차적은 꿈은 유니콘 기업에 드는 것이다. 유니콘 기업은 자본시장에서 기업 가치를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3조원)에 이르는 유망한 기업을 뜻한다. 상장 전의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 평가가 주관적이다 보니 많은 리스트가 존재하지만 가장 널리 인용되는 것은 CBInsights 회사의 자료이다. 미국 기준으로 2024년 1월 19일 현재 1224개의 유니콘 기업이 올라 있다. 이중 한국의 스타트업체는 단 15개이다. 전체 유망 스타트업체 중에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다.
이는 CES에서 혁신 상을 받은 대기업을 포함한 전체 기업의 31%에 육박하는 압도적 비중과는 너무나 큰 격차이다. 이런 거대한 격차는 두 가지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첫번째는 CES에 한국 기업들의 다른 나라와 달리 높은 참가로 인한 대표성의 왜곡이다. 아마도 중소벤처기업부의 과도한 지원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 냈을 가능성이 크다. 두번째는 한국의 스타트업의 유망한 기술력과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혁신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CES의 성과와 유니콘 기업의 리스트와의 괴리는 아마도 이 두가지 원인이 모두 작동하고 했을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CES 혁신상 싹쓸이 현상은 과거 우리나라의 반복되는 기능올림픽 대회 우승의 역사를 연상시킨다. 혁신 기술보다는 제조 품질로 공업화를 추진하고 해외 수출의 경쟁력을 확보해 가는 후발 산업국가로서 세계 기능 올림픽 대회의 다수의 금메달의 수상은 “공업 한국”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 수출한국의 토대를 튼튼히 한 역사적 쾌거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오림픽 챔피언”과 우승 국가의 역사적 유산을 과연 최대로 활용했는가?
그 챔피언들에 독일과 유럽처럼 마이스터로 사회적으로 존경과 선망의 대접을 받고, 대기업 취업의 기회가 있고, 원하는 때에 대학 교육을 받게 제도화했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처럼 재능과 꿈과 무관하게 인문계 고등학교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려 하는 입시 지옥의 나라, 청년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획일적으로 공무원이나 되려는 나라, 소부장과 기계에 강한 유럽의 히든 챔피언 기업들이 적어서 절대 다수의 영세 하청업체와 소수의 글로벌 대기업의 고용시장의 큰 격차가 있는 노동시장의 이중화의 문제를 겪는 나라도부터 탈피했을 수도 있다.
지금도 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청소년 마이스터들은 병역을 면제받으려고 취업하는 기업은 최저임금을 주는 중소기업에 국한되어 있다. 글로벌 경험이나 대형 프로젝트의 참여 기회도 거의 없고, 기업이 장기적 인재 개발의 투자도 인색한 기업들에 한해서 병역 특례의 고등학교 졸업의 기술 인력을 채용할 특혜를 정부가 제공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청년 인재들의 관점이 아니라 이들을 값싸게 고용하는 기회를 중소기업의 지원 정책으로 우선시했기에 재능 있는 청년들이 직업 교육의 학교를 회피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히든 챔피언이 드문 허리가 약한 경제를 만들어 왔다. 즉 우리는 기능 올림픽 대회의 연 이은 제패의 위업을 경제 구조 개혁과 선진화의 자산으로 활용하지 못했고 청년들의 꿈을 키워주는 교육정책으로도 연결하지 못했다.
지금 벤처 기업들이 혁신 아이디어와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이는 기술 추격의 모방국가에서 혁신 기업으로 초격차를 지향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 그리고 AI가 주도하는 디지털 혁명의 심화라는 시대적 변화를 적극 수용할 수 있는 무기들의 싹이 우리 사회에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공업 한국의 시대적 요구에 기능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호응했던 그것과 유사한다. 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열쇠와 같은 자산을 과거 기능 올림픽의 마이스터들이 기술 한국의 꿈을 버리게 만들었던 것처럼 벤처 기업의 싹이 자라기도 전에 말라 죽지 않게 않으려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첫번째는 어쩌면 역설적으로 중소벤처기업부의 폐지이어야 한다. 영국의 전 수상 보리스 죤슨 (Boris Johnson)은 ‘곤경에 처한 기업을 정부가 개입해서 구제해주는 것은 정부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중소벤처기업부의 기본 전제는 이들 영세기업을 지원해서 키워주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시장에 의해 옥석이 가려지고 좀비 기업들이 빨리 도태되어야 생산성과 혁신성을 갖춘 기업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또 이들의 인수 합병이 자본 시장의 원리하에 이루어 질 수 있어야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갖추게 된다.
CES의 한국 기업의 압도적 혁신상 비중은 아마도 우리의 기술력만큼이나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에 의한 결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과도한 시장 개입과 지원이 계속되면 싹은 틀지 모르지만 풍진 세파를 견디는 나무로 자라서 열매를 맺기는 매우 힘들다.
CES의 중소벤처 기업들의 성과를 자랑하며 “국내창업기업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우수한 기술력과 혁신 역량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해외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장관의 다짐을 내가 불안하게 보는 이유다.
지금처럼 디지털화한 세상에는 어떤 기업의 좋은 기술력과 혁신 역량을 자랑하는 데 정부의 지원이 왜 필요한가? 자기 제품을 정부 지원없이 광고하고 고객을 찾는 능력마저 없는 기업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 온 세상 벤처캐피탈과 대기업들이 혈안이 되어 이들 유망 기술과 협력사를 찾고 있다. 2000만원 연체 소상공인의 신용 불량 기록을 말소해주겠다는 자본시장의 교란행위와 함께 관치경제가 나약한 벤처 양산의 우를 계속할 것이라는 우려를 피할 수 없다. 중기벤처부가 정부 의존형 좀비 기업의 양산체제를 지속하는 한 한국의 벤처기업의 앞날은 밝지 않다. CES가 한국 행사처럼 보인 이번 성과는 거꾸로 한국의 벤처 육성 정책의 어두운 면을 노정한 것이다.
정부가 기업을 돕는 첩경은 규제를 없애서 시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직접적 지원이 아니라 시장 진입을 막고 있는 규제들을 과감하게 제거해서 아이디어가 시장 상품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기능 올림픽 연승의 기적의 유산을 우리가 어떻게 낭비했는지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자.
P.S. 드디어 구독자가 1천명이 넘어섰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글은 구독자분들께 미리 공개한 뉴스스필릿의 정기 칼럼의 원고입니다.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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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보이
좋은 글 정말로 감사합니다
자유주의 대한민국 이야기 (1.05K)
늘 격려의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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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올해도 건강하시고요 혹시, 제가 이글을 퍼나르기해도 될른지요. 공감이 가서 그렇습니다
자유주의 대한민국 이야기 (1.05K)
물론입니다. 공유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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